(기자의눈)'세계최초'가 '시장선도'로 이어지길 바라며
2013-06-18 14:04:50 2013-06-18 14:07:55
[뉴스토마토 양지윤기자] 최근 '만년 2등' LG의 반란이 거셉니다.
 
지난해 8월 세계 최초로 84인치 울트라HD(UHD) TV를 출시한 데 이어 새해 벽두에는 '꿈의 TV'로 불리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를 또 다시 세계 최초로 선보이면서 이전과는 다른 면모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연이어 거머쥐게 된 것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지난 4월에는 OLED TV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한 곡면(Curved) OLED TV를 선보이기까지 이르렀습니다.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전초 단계까지 완성된 기술력을 대내외에 공표한 것입니다.
 
불과 9개월 만에 TV 부문에서만 업계 1위 삼성전자를 제치고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세 개나 선점했습니다. LG 하면 떠오르던 만년 2등이라는 꼬리표가 적어도 TV에서만큼은 사라지게 되는 전환점을 마련한 것입니다. 더욱이 가전의 꽃인 TV를 놓고 CES, IFA 등 세계 최대 규모의 가전박람회에서 겨뤘던 삼성전자와의 자웅이 일단락된 터라 그 기쁨은 남다를 듯 합니다.
 
반란의 원동력은 구본무 회장의 경영철학인 '시장 선도'에 있었습니다. 구 회장은 지난해 9월 임원세미나에서 "시장 선도를 위해 일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며 시장선도를 처음으로 언급한 뒤 이제 틈날 때마다 '시장 선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시장 선도를 위해 일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라는 주문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LG가 만년 2등의 불명예 타이틀을 벗고 진정한 1위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내부부터 살얼음판 같은 긴장감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한마디로 느슨했던 조직을 긴장시키며 독한 경영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얘기입니다.
 
구 회장이 이처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시장 선도를 외치는 이유는 그룹 내 맏형 격인 LG전자가 '스마트폰 초기대응 실패'라는 뼈아픈 경험을 한 탓이 큽니다. LG전자는 2009년 하반기부터 급성장한 스마트폰 시장의 흐름을 외면하고, 당시 시장의 주류였던 피처폰에 집중해 상당한 타격을 입은 전력이 있습니다. 휴대전화 사업부문에서만 3년 내리 적자를 기록하며 LG전자 전체 실적의 발목을 잡기도 했습니다. 미운 오리새끼로 전락한 것이죠.
 
실적도 문제였지만 바닥에 떨어진 사기는 조직 전체의 위기로 이어졌습니다. 물론 LG전자도 뒤늦게나마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긴 했습니다. 그러나 시장은 이미 애플과 삼성전자, 양강 체제로 굳어진 이후였습니다. 내놓는 전략 스마트폰마다 완성도에 결함을 보이며 시장의 외면을 받자 조직 전체에 패배주의가 만연하기도 했습니다. 
 
한때 피처폰 시대를 이끌던 영예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조급함마저 더해졌습니다. 아무리 실기를 만회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여도 일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습니다. 자칫 시장의 낙오자로 뒤쳐질 수 있는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휴대폰의 왕좌였던 노키아의 추락이 남의 일만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 기간 숙명의 라이벌인 삼성전자가 시장 흐름을 적기에 파악, 발빠르게 대응하면서 양사의 체급은 급격하게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연간 영업이익이 삼성전자의 분기별 영업이익 8분의 1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이쯤되자 LG전자 내부에서도 경고금이 곳곳에서 흘러 나왔습니다. 구 회장이 지난해부터 대대적으로 시장선도를 내세운 것은 이러한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는 분석입니다.
 
시장선도는 "1등 도약"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구성원들에게 "더 이상 만년 2등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구 회장의 무언의 경고인 셈이죠. 흔히 2등이 1등보다 매너리즘에 더 빠지기 쉽다고들 합니다. 1등은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을 갖게 마련이고, 3등은 2등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지만, 2등은 왠지 모를 안심에 놓인다는 심리학적 이론이죠.
 
특히 국내 가전업계에서는 3위 기업의 존재가 유명무실하다보니 LG전자가 안정성을 추구하는 경영전략을 구사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때문인지 업계 안팎에선 최근 2등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LG의 변신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주류를 이룹니다. LG전자가 명가로서의 재기에 성공해야만 1등 삼성전자에도 긍정적 영향이 미칠 것이란 얘기입니다. 이는 산업계 전체, 나아가 국가경제에 활력으로 작용합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LG가 앞세우는 시장선도가 업계 1위인 삼성전자를 따돌리는 '도그마'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시장을 선도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최초의 타이틀을 지니는 것과 동시에 새롭게 시장을 창출해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애플이 스마트폰 시대를 열어젖히면서 혁신과 선도의 이미지를 동시에 부여받은 것을 떠올리면 간단합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LG전자는 세계 최초의 단어를 선점한 것 외에 시장에서 이렇다 할 결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는 실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TV가 속한 HE사업본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3분기 연속 영업이익률이 0%대에 머무르고 있고, 증권가에서는 올해 역시 HE사업본부에 대해 회의적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올 2분기 HE사업본부의 영업이익률은 전 분기 대비 0.9%포인트 개선된 1%대로 전망됩니다. 연간 기준으로는 2% 이내일 것으로 시장은 내다보고 있습니다. LG전자가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손에 쥐고도 실익이 전혀 없는 '절반의 성공', '미완의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가 쏟아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런 지적이 끊이질 않자 LG전자는 다소 조급함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울트라HD TV 대응 전략이 늦었던 삼성전자와 일본 소니가 55·65인치 제품을 출시, 반격에 나서자 LG전자 측은 "선점 주도권을 잃은 경쟁사의 대응에 불과하다"며 애써 태연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예약판매에 돌입한다고 발표한 지 사흘 만에 LG전자도 출시 계획을 내놓았습니다. 결국 경쟁사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 셈입니다. 이는 역으로 세계 최초 타이틀은 손에 쥐었지만 시장 선도자로서의 입지는 불안정하다는 방증과 같습니다.
 
동시에 결국 삼성전자만 의식한 결과물 아니냐는 반론도 제기됩니다. 여전히 삼성전자를 한 축에 놓고 가열차게 신경전을 벌이는 것이 과연 시장 선도와 무슨 상관관계냐는 주장입니다. 오직 '삼성만 이기면 된다'는 경쟁의식이 경쟁을 넘어 LG전자의 철학이 되지 않았느냐는 지적입니다. 진정한 챔프 벨트를 허리에 두르기에는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이는 이유입니다.
 
일각에서는 LG전자가 시장 선도에 몰두하는 것도 좋지만, 가시적인 성과로 귀결되지 못한 원인을 냉철하게 뒤돌아보고 진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획득한 것과 무관하게 스스로 시장을 창출하는 면모는 지금껏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LG그룹은 지난 4일부터 한 달간의 일정으로 전 계열사를 대상으로 중장기 사업을 논의하는 '전략 보고회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보고회의 역시 구본무 회장이 강조했던 시장 선도가 핵심 키워드입니다. 특히 지난해와 올해 LG가 공격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안팎의 기대가 높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시장선도를 내건 LG가 그만큼 더 긴장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시장선도 전략의 성패 여부를 판단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반론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장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이번 전략 보고회의가 시장선도 전략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철저한 자기반성을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렇게 LG전자가 진정한 선도자로서 시장에 자리매김 하기를 응원합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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