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개인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법원에 출석해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심사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원 전 원장은 국정원장 취임 첫해인 2009년부터 황보건설 전 대표 황모씨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각종 공사수주 청탁과 함께 1억6000여만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청탁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2010년 7월 한국남부발전에서 발주한 삼척그린파워발전소 제2공구 토목공사 수주를 황보건설이 따내는 과정에 원 전 원장이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2009~2011년 홈플러스가 인천 무의도에 연수원을 건립할 때 인·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황 대표의 청탁을 받아 원 전 원장이 산림청에 외압을 넣은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산림청은 산림훼손 등을 이유로 인·허가를 거부했으나 황보건설이 공사를 따 낸 후 인·허가가 났다. 검찰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달 17일 산림청을 압수수색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지난 4월30일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 검찰 소환조사를 마치고 귀가하고 있다.(사진=뉴스토마토 DB)
검찰은 당초 황 대표를 거액의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조사를 시작했으나 이미 수사 초기부터 원 전 원장과의 뒷거래를 캐고 있었다.
하지만 검찰은 최근까지 원 전 원장을 사법처리할 구체적인 진술이나 결정적인 물증을 잡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황 대표의 옛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원 전 원장에게 전달했다는 선물리스트가 발견됐지만 원 전 원장에게만 모두 전달됐다고 볼 수 없거나 청탁성 뇌물로 보기에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적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구속된 황 대표로부터 "원 전 원장에게 1억원이 넘는 돈을 현금으로 줬다"는 진술을 받아내면서 검찰 수사는 급속도로 진전했다. 황 대표의 진술이 있은 직후 검찰은 원 전 원장을 소환한 데 이어 그가 조사를 마치고 귀가한 당일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이다. 결국 황 대표의 진술이 이번 사법처리를 결정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구속영장 청구 전 검찰이 가진 고민은 또 있었다. 직무관련 대가성을 어떻게 입증할지 여부다.
여러 혐의점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원 전 원장이 청탁을 받고 그의 직무범위에 직접 해당하는 이권사업에 개입했다거나 최소한 국정원장이라는 지위를 직접 이용해 다른 공무원들에게 부정한 청탁이나 압력을 넣었다는 증거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검찰은 '제삼자뇌물제공죄'나 '알선수뢰' 등의 혐의가 아닌 '알선수재'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알선수재는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의 알선에 관하여 금품이나 이익을 수수·요구 또는 약속한 때' 성립한다. 알선하는 업무가 자신의 직무에 국한되지 않고 지위를 이용할 것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5일 오전 1시30분쯤 검찰 소환조사를 받은 뒤 귀가하기 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뉴스토마토DB)
알선수재 혐의가 적용된다는 결론까지 내린 검찰은 원 전 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전격 청구했다. 황보건설 황 모 대표를 구속한 지 꼭 한달 만이다.
원 전 원장은 지난 4일 검찰 소환조사에서 청탁이나 기업에 대한 압력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러면서서 황 대표와의 친분은 인정했다.
그는 "오래부터 알고지낸 친구 같은 사이로 서로 선물을 주고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검찰이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한 선물리스트의 증거능력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돈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다. 10일 법원의 영장실질심사 전에도 원 전 원장은 "선물을 받은 적은 있지만 돈을 받은 적은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법원이 영장발부를 심사하는 과정에서 치열하게 다퉈질 쟁점은 이 부분에 집중되어 있다.
원 전 원장은 선물 정도는 받았지만 그것은 친분에 의한 것이고 돈을 받지는 않았기 때문에 알선수재죄상의 '금품'을 받았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할 것으로 관측된다. 아울러 각종 외압 혐의에 대해서도 전면 부인할 것으로 보인다. 한발 물러나 선물을 금품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청탁에 따른 알선은 하지 않았다고 버틸 것으로 전망된다.
대법원은 알선수재죄에서 피고인이 금품 등을 수수한 사실을 인정하지만 범의를 부인할 경우 '범의와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을 증명하도록 하고 있다. 결국, 증거 싸움으로 검찰이 이 부분에 대한 준비가 안 되었다면 영장기각 확률이 높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견해다.
또 하나의 쟁점은 원 전 원장의 혐의와 현재 사정이 형사소송법상 구속사유에 해당할 것인지의 문제다. 우리 형사소송법은 구속사유로 ▲주거부정 ▲증거인멸 ▲도망 우려 등을 정하면서 범죄의 중대성 등을 반드시 고려하도록 하고 있다. 법원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집중적인 심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특가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된 뒤 10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지방법원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사진=뉴스토마토DB)
이 외에도 법조계에서는 '방어권 보장'의 주장도 가능하다고 해석하는 견해가 없지 않다. 또 다른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구속을 시킨다면 방어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논리다.
원 전 원장은 '공직선거법 및 국정원원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상태로 최근 1차 공판준비기일이 열렸다.
원 전 원장의 입장에서는 범죄의 소명과 구속사유의 충족여부가 치열하가 다퉈지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으로 판단해 구속할 경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재판에 대한 방어권이 심각하게 위축될 수 있어 부당하다"고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재판을 받고 있는 만큼 최소한 주거부정 또는 도망의 우려는 없지 않느냐"는 논리도 내세울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이 같은 견해에 반박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검찰 수사단계에서의 사건을 많이 맡아 처리해 온 한 중견 변호사는 "자기가 죄를 지어 재판을 받고 있으니 구속시키지 말아달라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고 일축했다. 구속상황에서도 변호인을 접견하면서 얼마든지 방어권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그는 또 도망의 우려가 없다는 논리에 대해서도 "재판받고 있는 상황에서 또 하나의 중한 범죄로 구속되고 추가 기소될 상황이라면 도망도 생각해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도 말했다.
영장전담판사 경력이 있는 판사출신의 한 중견 변호사는 "형사재판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또 하나의 죄로 구속영장이 청구될 경우 법원은 먼저 기소된 재판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며 "별건으로 영장이 청구된 당해 사건만을 보고 원칙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영장실질심사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