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기성기자] 서청원 전 의원이 또 다시 정치의 중심에 서려하고 있다. 복귀 무대는 내달 30일 치러지는 경기 화성갑 국회의원 보궐선거다. 현 여권 기류를 감안하면 그의 출격은 기정사실로 보인다. 동시에 정치는 조롱거리로 전락하게 됐다. 올드보이의 노욕으로 치부하기엔 그의 복귀가 의미하는 바가 너무도 크다.
그는 18대 총선을 앞두고 ‘친박연대’라는 한국 정당사에서 가장 기이한 이름의 정당을 출범시켰다. 박근혜의, 박근혜에 의한, 박근혜를 위한 사실상의 맹목적 충성 집단이었다. 당의 근간인 이념도, 정책도, 오직 ‘박근혜’였다.
여권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 일각에서는 “북한도 이러진 않는다”는 자조 섞인 농담마저 나돌았다. 친이계의 공천학살 앞에 당시 박근혜 의원은 “살아서 돌아오라”는 특명을 측근들에게 내렸고, 이는 14석이라는 예상치 못한 놀라운 결과로 이어졌다. 희극이었다.
친박연대를 이끌던 그는 이후 당과 함께 몰락하는 듯 보였다. 홍사덕 등 지역구 의원들이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옮기면서 무명의 비례대표 의원들만 남았다. 여기에다 특별당비를 받은 혐의로 그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6개월의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명박 정권의 정치보복이라 주장하며 단식투쟁까지 벌였으나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주군인 박근혜 의원만이 조용히 병실을 찾아 그를 위로했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친박연대 당명을 버리고 미래희망연대로 간판을 바꿔 달아야만 했다. 친이계에 맞서 한나라당을 야금야금 접수해 가던 박 의원과 친박계가 친박연대 당명을 부담스러워 했기 때문이다. 박 의원과의 당명 개정 약속도 있었다. 앞서 그는 공천헌금 사건이 터지자 다각도로 정권 실세였던 이상득 전 의원 측과 접촉을 시도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는 2004년에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유죄를 선고 받았다. 당시 정가를 뒤흔들었던 썬앤문 사태에 그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서 전 의원은 2002년 대선 당시 한화와 썬앤문으로부터 각각 10억원과 2억원의 불법정치자금을 건네받은 혐의로 재판부로부터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추징금 12억원을 선고 받았다.
그는 썬앤문으로부터 단 한 푼이라도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한 사실이 인정되면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선언했으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는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다. 그 직후 한나라당에게는 ‘차떼기’라는 오명이 주어졌으며, 이는 공교롭게도 박근혜 체제로 상징되는 천막당사의 길을 제공했다.
과거 기준으로만 보면 그로선 자랑스런 ‘별’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암암리에 막대한 대선자금을 챙겨야 했고, 누군가는 박근혜의 정치적 기반을 마련해야만 했다. 똥물을 뒤집어 쓴 대가로 그는 70대 고령에 7선 고지를 바라볼 수 있게 됐다. 한발 더 나아가 김무성을 위협하는 차기 당권주자로 단숨에 부상했으며, 이는 최경환(원내대표)-홍문종(사무총장)을 잇는 당내 친박 라인업의 정점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아직 원내 입성이 이뤄지지 않은 터라 그의 행보는 극히 조심스럽다. 김무성 의원을 만나 당 대표에 관심이 없음을 전했고, 한때 적군의 수장이었던 이재오 의원과도 화해를 모색하고 있다. 다만 세는 예전 친박연대를 이끌며 박근혜의 외부 세력으로 평가 절하되던 그때의 서청원이 아니다. 그는 누구도 원하지 않았건만 이번 출마를 “마지막 봉사”로 의미 부여했다.
그를 두고 갖은 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그의 측근은 최근 정치부 기자들에게 그의 직함을 한나라당 전 대표로 표기해 줄 것을 요청했다. 친박연대 대표라는 전 직책이 스스로도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등 노익장을 과시하는 옛 벗들도 박 대통령 지근에 포진하며 정국을 이끌고 있는 터라 그의 진입은 손쉬워 보인다. 다들 한자리씩 하는데 나라고 빠질 수 있겠느냐고 몸소 외치는 듯하다.
권력이 이들에게 집중되는 사이 구태정치 근절을 선언했던 박 대통령의 원칙과 소신, 대국민 약속은 한낱 물거품이 돼 가고 있다. 강조하던 법의 잣대도 유야무야될 처지다. 올드보이들로 인의 장막이 처지면서 박 대통령의 시야는 좁혀졌고, 외눈박이 너머로 이 땅의 민주주의가, 민생이 가라앉고 있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말이 최근 새누리당을 감싸 돌고 있다. 역시 정치는 ‘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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