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사진=뉴스토마토 DB)
[뉴스토마토 김미애기자] 지난해 총선을 앞둔 당내 경선과정에서 대리투표 등을 한 혐의(업무방해)로 기소된 통합진보당원들에게 전원 무죄가 선고됐다.
이번 판결은 정당의 공직선거 후보자 추천을 위한 당내경선에 헌법과 법률에서 규정한 공직선거의 4대원칙이 적용되는지 여부에 대해 기준을 제시한 법원의 첫 판단이다.
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재판장 송경근)는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최모씨 등 통진당원 등 45명에 대해 "공직선거법상 평등·직접·보통·비밀의 4대 원칙이 정당 경선에도 적용돼야 한다는 검찰의 전제는 잘못된 것"이라며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에 무죄 판결을 받은 피고인들 중에는 최근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된 조양원 CNP그룹 대표와 김재연 통진당 의원 비서 유모씨도 포함됐다.
재판부는 "당내경선이 실질적으로 당선자를 결정하는 효과를 갖고 있는 점을 부인할 순 없지만 우리 헌법과 법률은 공직선거와 그 후보자 추천을 위한 정당의 당내경선을 명백히 구분하고 있고, 당내 경선의 방식에 대해 각 정당의 당헌에서 규정하도록 함으로써 정당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다"며 "정당의 공직선거와 당내경선의 양명선을 고려할 때 공직선거의 4대 원칙이 당내경선에서도 그대로 준수돼야 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통진당 당내견선에서 사용된 전자투표 방식은 선거권자의 위임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없고, 제 3자에게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와 인증번호를 알려주면 얼마든지 대리투표가 가능하다"며 "통진당은 대리투표 가능성을 알고도 가급적 많은 당원을 참여시켜 투표 결과에 반영할 목적으로 이 방식을 채택했다. 따라서 선거제도의 본질을 침해하지 않는한 도입 목적에 따라 통진당이 스스로 선택해 결정하도록 하는게 맞다"고 봤다.
또 통진당이 실시한 전자투표 방식이 '반드시 직접 투표를 해야 하고 대리투표를 해선 안된다'는 원칙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통진당은 대리투표의 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투표율 제고의 필요성, 당원들의 여러 사정에 따른 제약, 기술적 한계 등을 감안해 선거권자의 의사를 왜곡하는 상당한 규모의 조직적 대리투표가 아닌 '가족·친척·동료' 등 일정한 신뢰관계가 있는 사이에서 위임하는 통상적인 수준의 대리투표는 감수할 의사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따라서 "투표율을 높이는 것에만 집착할 뿐 대리투표를 최대한 통제할 수 있는 기술적 조치를 스스로 포기한 채 전자투표를 실시한 당직자 및 선거관리업무 담당자들에게 중대한 책임이 있을 뿐, 스스로 알아서 직접 투표라는 최선의 행동을 취하지 않은 일반 당원들에 대해 도덕적 비난은 별론으로 해도 형사책임을 물을 순 없다"고 판시했다.
즉, 이들 당원들에게 통진당 경선 업무 담당자에게 직접 투표를 한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하거나 대리투표 사실을 알지 못하도록 했다는 업무방해죄가 적용될 수 없다는 결론이다.
재판부는 다만 "일부 피고인들의 경우 위임받은 적이 없는데도 위임받은 것처럼 속여서 투표하거나 위임받은 내용과 달리 투표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 등이 있는데,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의 성립 여부가 문제될 여지는 있지만, 당내 경선의 성격, 정당의 자율성 등을 반영해 검사가 공소장을 변경해야 판단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한 "적어도 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하거나, 선거권자의 의사를 왜곡시키는 선거제도의 본질적 기능을 침해하는 방식의 투표는 허용될 수 없고, 허용되서도 안된다"면서 정당의 공직선거 후보자 추천을 위한 당내경선에서의 대리투표 행위가 제한 없이 허용된다거나 언제나 업무방해죄가 될 수 없다는 취지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재판부는 아울러 "정당들은 공직선거 후보자 추천을 위한 당내 경선이 단순한 당내 내부선거와는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감안, 당헌·당규 등을 통해 당내경선에서의 투표 원칙과 방법·절차를 명확히 규정하고 이를 통제할 장치를 갖춰 정당의 자율성과 공직선거 후보자 추천행위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당내 비례대표 경선 온라인 투표 과정에서 당원으로 등록돼 선거권이 있는 지인의 휴대전화로 전송된 인증번호를 받아 대리 투표한 혐의로 최씨 등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 과정에서 이석기 의원이 운영한 선거대행업체 CN커뮤니케이션즈(CNC) 직원 등이 이 의원에게 표를 몰아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앞서 검찰은 지난 9월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의 비서로 활동하는 유모씨(32)에게 징역 1년을 구형하는 등 벌금 200만원~징역 1년을 각각 구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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