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동훈기자] "배추 농사짓기가 변호사되기보다 어렵습니다."
윤모 씨(66세)는 지난해 2월
삼성전자(005930)에서 퇴직한 이후 서울시 인생이모작지원센터를 통해 교육을 받고 240평가량의 땅에서 40~50명과 함께 배추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이렇게 만든 배추 700kg을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과 나눴다. 그는 "잡풀이 무성한 토지에서 배추가 크는 걸 보면서 '농업이 내가 살 길'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발목을 잡은 건 엉뚱한 곳에 있었다. 여생을 뒷받침해줄 농업 지도사가 되는 게 너무 어려웠다. 윤 씨는 "서울농업기술센터 등을 통해 관련 프로그램을 인터넷으로 신청하는 데 손이 느려 신청하지 못했다"며 "게다가 농업지도사를 1년에 50~100명밖에 뽑지 않는다니 변호사 되기보다 어려운 것 아니냐"며 하소연했다.
서울시가 10일 '베이비 부머(1955년~1963년생), 우리는 말한다'를 주제로 개최한 청책 토론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이처럼 자신이 처한 다양한 이야기를 쏟아내면서 정책 변화를 요구했다.
40여 년 공무원을 한 조모 씨는 남성 베이비부머를 위한 정책을 촉구했다. 그는 "남성 요리 교실에 참가했더니 집에서 밥을 세끼 먹는 삼식이가 아닌 사랑받는 남편이 됐다"며 "은퇴한 분이나 독거 노인이 요리를 배우면 건강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곽모 씨는 "남편을 보니 은퇴를 앞둔 직장인은 기업에서 노후 준비나 은퇴 관련한 교육을 하지 않아 고3이나 중3 학생이 상급학교 진학을 앞두고 교실에서 방치돼 엉망진창으로 있는 것과 같다"며 기업 차원의 지원도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베이비 부머의 사회 공헌과 관련한 지적도 쏟아졌다.
양모 씨는 "시니어가 중고교 학생을 대상으로 인성 교육에 나서면 좋은 일도 하고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다"면서 "하지만 관련 자격증을 따는 데 필요한 시간이 100시간에 달하고 비용도 100만원이 넘는다"고 꼬집었다. 정모 씨는 "은퇴 준비가 된 베이비 부머들이 준비되지 않은 사람을 돕는 방안도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제시했다.
분산된 정책을 체계적으로 관리해달라는 주문도 나왔다.
최모 씨는 "가계부채가 급증했고 신용불량자도 많은데 이들을 돕는 기관이 나뉘어 있고 프로그램도 달라 서민들이 쉽게 다가갈 수 없다"며 "각 구청이나 주민 센터에 전문 요원을 배치해달라"고 요청했다. 하모 씨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개인적으로 획득했는데 인생 이모작지원센터에 갔더니 또 바리스타 교육을 받았다"며 "정책을 전체적인 시스템으로 모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의 설명도 잇따랐다.
윤민석 서울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서울시의 일자리 정책은 여성과 청년, 노인 등으로 분산돼 시너지 효과가 없는 한계가 있다"며 "다만, 공무원 조직의 특성이나 정부 예산 배분 절차 등을 고려했을 때 빠르게 바뀌기는 쉽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유한킴벌리 관계자는 "베이비부머는 교육을 많이 받고 전문가로 활동하던 분이 많다"며 "이런 분들을 소기업이나 청년 창업을 도와주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 일자리 창출과 지식 전달은 물론 시니어 산업 비중이 전체의 5%에 불과한 한국 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오늘 나온 이야기 등을 총정리해서 베이비 부머를 위한 종합 정책을 만들 것"이라고 다짐했다.
◇서울시가 10일 '베이비 부머, 우리는 말한다'를 주제로 청책 토론회를 열었다.(사진=김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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