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지난해 나라살림에서 세수부족보다 더 심각한 결과는 초유의 '세계잉여금' 마이너스 행진이다.
세계(歲計)잉여금은 세입에서 세출을 차감한 잔액으로 쉽게 말해 쓰고 남은 돈이다.
지난해 정부가 거둔 총세입은 292조9000억원이고 사용한 총세출은 286조4000억원으로 결산상 6조5000억원의 잉여금이 생겼지만, 계속사업비 등 올해로 이월된 세출예산이 7조2000억원으로, 이를 뺀 세계잉여금은 약 8000억원이 적자였다.
쓰고 남기는 커녕 마이너스로 2014년을 시작한 것이다.
세계잉여금이 적자를 기록한 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2012년이 사상 처음이었고, 2013년이 두번째다. 2년 연속 세계잉여금 적자 역시 사상 처음인 셈.
주목할 것은 이마저도 정부의 비정상적인 '꼼수'가 동원된 결과라는 점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조원 가량 발생한 세수구멍을 메우기 위해 '불용예산'을 극대화했다.
벌어들인 돈이 적으니 덜 써서 세입과 세출의 균형을 맞춘 것인데, 문제는 통상 불가피하게 발생해왔던 '불용'을 세수구멍을 메우기 위해 '고의'로 발생시켰다는데 있다.
불용은 예산 편성때 계획했던 사업이 무산됐거나 예산보다 적은 돈으로 사업을 마무리 한 경우 어쩔수 없이 남아서 사용하지 않은 돈이지만, 정부가 일부러 계획된 사업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불용을 양산한 것이다.
실제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세수부족 상황이 심각했던 지난해 8월말 불용예산 전용계획을 세웠고, 다음달 각 부처 재정관리담당자 워크숍을 개최해 부처별 불용목표액을 전달, 부처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줄일 수 있는 사업리스트를 제출했다.
그 결과 지난해 재정불용액은 사상최고인 18조1000억원을 기록했다. 재정집행률도 역대 최저인 91.9%를 나타냈다. 국민들과 국회에 쓰겠다고 약속한 돈의 8.9%는 쓰지 않고 세수 구멍을 메우는데 활용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11조원의 세수구멍은 해결했지만, 나라살림을 약속대로 이행하지 않는 금기(禁忌)를 행한 셈이다.
(자료=최재성 의원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최재성 민주당 의원은 "현오석 부총리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불용액을 5조~6조원으로 관리하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18조1000억원의 사상 초유의 재정불용을 발생시켰다"면서 "경기를 부양하겠다며 17조원의 추경을 편성했으면서 그보다도 많은 예산을 쓰지 않았다는 것은 국회와 국민을 기만한 중차대한 범죄"라고 질타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정부 내에서도 비판이 제기된다.
정부 한 고위관계자는 "세입때문에 불용을 맞춘 것은 역사에 남을 '나쁜 예'"라면서 "예산을 편성할때 꼭 필요한 사업, 최소한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을 위주로 편성했는데, 세입이 모자란 이유로 사업을 접은 것"이라고 털어놨다.
국회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예산을 쓰지 않고 일부러 불용시킨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예산을 짤 때 반드시 필요한 부분에 써야 한다고 요구해서 짠 것인데, 이것을 임의로 줄였다는 것은 꼭 써야하는데 못쓰게 했거나 원래 필요없는 곳에 예산을 배정했다는 말밖에 안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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