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애신기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마하 경영'이 마하 속도의 합병으로 이어지고 있다. 비슷한 사업군을 한 데 묶어 합병에 따른 효율과 시너지를 꾀하는 동시에 후계구도를 위한 계열사 단순화에도 착수했다.
삼성은 지난달 31일 삼성SDI와 제일모직 합병을 전격 발표한 지 이틀 만에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의 합병을 대외에 공지했다. 재계에서는 지난해부터 꾸준히 합병 가능성이 거론된 삼성물산과 삼성엔지니어링이 다음 순서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삼성, 지난해부터 사업구조 개편 착수
이 회장은 올 초부터 '마하 경영'을 강조해왔다. 마하경영은 제트기가 음속을 뛰어넘는 마하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기술부터 부품까지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는 논리를 경영과 접목시킨 일종의 혁신론이다.
계열사 간 겹치는 사업을 정리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작업에 속도를 내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는 게 삼성 측의 설명이다. 또 전자를 제외한 나머지 계열사들이 경영난에 봉착, 활로를 찾지 못한 상황에서 돌파구를 마련해 주기 위함으로도 보인다. 채찍 효과도 숨어져 있다.
◇삼성SDIⓒNews1
삼성 고위 관계자 등에 따르면 이 같은 사업구조 개편은 미래전략실 전략팀과 지주사 격인 삼성에버랜드 내 TF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에버랜드의 급식 및 식자재 사업 분할은 호텔신라에 양도하기 위한 사전 절차로 풀이된다. 비슷한 사업군을 묶어 한 곳에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다.
올해 들어서도 사업 재편은 진행형이다. 지난달 31일
삼성SDI(006400)는 제일모직과의 흡수 합병을 결의했다. 디스플레이 사업·2차전지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삼성SDI에 전자소재·케미칼 사업이 추가돼 사업기반이 강화되는 것.
이번 합병으로 인해 삼성SDI는 연 매출 10조원, 자산 15조원 규모의 공룡으로 거듭난다. 제일모직은 삼성물산과 함께 현 삼성그룹의 모태로, 제일모직을 역사 속에 사라지게 할 만큼 고단위 결단이었다.
이로써 삼성은 '삼성SDI-제일모직-삼성전기-
삼성테크윈(012450)-
삼성전자(005930)' 등 전자 계열사의 수직 계열화를 완료했다. 전자를 중심으로 부품사업군을 포진했고, 이는 곧 후계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통제력 강화를 의미한다.
삼성은 아울러 지난 2일 화학 계열사의 통폐합을 결정했다. 삼성종합화학은 이사회를 열고 삼성석유화학과의 합병을 결의했다. 합병회사의 명칭은 '삼성종합화학'이다.
지난해 화학 계열사들은 공급 과잉과 대외경제 우려로 직격탄을 맞았다. 삼성석유화학은 지난해 42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따라서 화학 부문 지주회사인 삼성종합화학 중심으로 합쳐 경쟁력을 회복한다는 전략이다.
삼성 관계자는 이 같은 일련의 사업구조 재편에 대해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사전포석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짙은데, 이는 전적으로 효율성을 목적으로 한 사업 간의 정리"라며 "비슷한 사업을 따로 영위하는 것보다 한 데 묶어 체질을 강화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건설..삼성물산·삼성엔지니어링 합병 초읽기
시선은 '다음'으로 쏠렸다. 지난해부터 건설 부문에 대한 구조조정 가능성이 언급된 만큼, 삼성물산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 가능성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특히 최근 실적 부진까지 겹치며 급물살을 타고 있다. 사실상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다.
◇(왼쪽부터)삼성물산과 삼성엔지니어링(사진=각사)
현재 삼성물산은 도급 기준으로 건설업계 2위다. 1위인
현대건설(000720)과 매출이 비슷하지만 영업이익은 절반에도 못 미칠 정도로 수익성이 낮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전년 대비 적자 전환했다.
삼성물산은 건축·토목, 삼성엔지니어링은 석유화학·정유·가스 등 화공 플랜트 중심으로 사업 영억이 구분돼 있다. 따라서 합병을 하면 시너지 창출이 가능할 것이라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삼성물산과 삼성엔지니어링 내부적으로 합병을 위한 구조조정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며 "오래 전부터 나온 이야기인 만큼 이번에는 구체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고 말했다.
◇3세 사업구도, 삼각편대 '공고히'
계열사 간 합병이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삼성가(家) 3세의 사업구도에도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삼성은 사업구도 재편과 경영 승계와의 직접적인 연관을 부인하고 있지만 재계와 시장에서는 이중포석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의 합병은 경영권 승계를 위한 지배구조 변환 차원의 사전 정지 작업으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사장.(사진=삼성그룹)
회사별로 나뉜 사업들을 큰 줄기로 나누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전자·금융을 맡고, 이부진
호텔신라(008770) 사장은 호텔과 건설·중화학을,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사장은 패션과 미디어를 맡는 삼각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삼성SDI와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이재용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전자 계열의 수직 계열화는 완성됐다는 평가다.
반면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의 합병을 두고 일각에서는 이부진 사장이 화학 부문에서의 영향력이 줄어든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내놓고 있다. 삼성석유화학의 최대주주는 이부진 사장이다. 현재 33.2%의 지분을 보유를 보유하고 있지만 합병으로 4.91%까지 지분율이 급격히 낮아지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지분만 보면 영향력이 낮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화학 계열사 재편 한 가운데 이부진 사장이 있는 것으로 해석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부진 사장은 합병 후 삼성석유화학의 개인 최대주주다.
이훈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삼성 계열사 합병은 산업 계열사의 금융계열사 지분 정리 등 금산분리, 전자 계열과 비전자 산업계열사 간 사업·지분 정리, 지주회사 편입 우려 완화 등으로 요약된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시장에서는 계열 분리를 3세 경영의 전제조건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며 "의외로 원(one) 삼성이 진행될 수도 있다. 더 이상 쪼개지 않고 그룹 안에서 함께 경영에 나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귀띔했다.
경영에 나서는 주력사업은 나눌 수 있지만 그룹 분리는 없다는 말로, 이는 삼성에버랜드 내에 세 남매를 포진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재용 부회장을 정점으로 이부진, 이서현 남매가 동등한 지분을 들고 상호보완과 견제의 역할을 하는 현 구도가 삼성의 미래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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