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욱기자] 문화체육관광부 저작권산업과의 저작권료 분배 규정 개정을 두고 음악계가 시끄럽다. 지난 20일 서울 영등포구 63스퀘어에서는 신중현, 김희갑, 윤형주, 최백호 등 100여명의 음악인들이 모인 가운데 문화체육관광부의 규정 개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들은 "이번 규정 개정이 음악계 전반을 흔들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저작권료 분배 규정 개정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한 음악인들. (사진=뉴스1)
◇일반음악과 배경음악, 같은 가치로 볼 수 있을까
지난 4월 개정된 문화체육관광부 저작권산업과의 저작권료 분배 규정은 일반음악과 배경음악의 방송 사용료를 같은 기준에 따라 분배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규정 개정 전 일반음악과 배경음악에 대한 방송 사용료는 10대 1의 기준으로 차등 분배됐다. 하지만 개정된 규정에 따르면 두 종류의 음악은 동일한 가치를 가진 것으로 취급된다.
음악인들은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3분 39초 길이의 일반음악인 빅뱅의 '루저'와 10초 가량의 배경음악을 직접 들려주며 주장을 펼쳤다.
박학기는 "일반음악은 작사, 작곡, 편곡, 연주, 뮤직비디오 제작에 비용을 투자해야 하고, 어마어마한 마케팅비도 들어간다. 여기에 가수들의 활동을 위한 헤어, 메이크업 등과 관련해 상상을 초월하는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며 "그러면서도 시대에 맞고 대중들의 호응을 얻어야 히트곡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짧은 시간에 함축적인 것을 전달하는 배경음악이 절대 나쁜 음악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기준에 따라 일반음악과 배경음악에 대한 분배 규정을 정해야 할 것"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또 윤종신은 "음악의 가치 차별은 당연히 없어야 한다"고 전제한 뒤 "방송 사용료는 국민이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선호도에 따른 액수라고 생각한다. 1대 1 분배는 국민의 선호도와는 관계가 없는 분배 방식이 아닌가. 현실 상황에 맞는 차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음악인 신중현이 저작권료 분배 규정 개정 규탄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문화체육관광부 밀실 행정, 음악 수입업자에게 특혜"
음악인들이 분노한 또 다른 이유는 문화체육관광부가 규정을 개정하기 전 음악인들과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없었다는 점이다. 규정 개정으로 인해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음악인들에게 한 마디 의논도 없이 '밀실 행정'을 통해 규정을 바꿔버렸다는 주장이다.
윤일상은 "대중들은 음악계의 화려한 면만 보지만 음악인의 현실은 많이 다르다"며 "해외보다 턱없이 낮은 음원 가격 때문에 아티스트들의 공연, 행사 수입 의존도가 비정상적으로 높다. 그야말로 처참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부가 음악인들을 무시한 채 음악의 가치에 대해 마음대로 값을 매겼다. 음악인들의 창작 의지가 꺾이면 우리 음악은 죽어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음악인들은 이번 규정 개정으로 몇몇 음악 수입업체들만 특혜를 누리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들은 "국내에서 사용되는 배경음악의 47%가 해외 음악이고, 이를 소수의 수입업체가 들여오고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김형석은 "국내 창작자들에 대한 권리 보호가 참담한 수준"이라며 "K팝이 다양해져야 생명력이 길어질텐데 정부가 도와주지 않고 있다. 이번 규정 개정으로 인해 일반음악을 만드는 창작자의 몫이 결국 해외 수입 유통업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박학기(왼쪽)와 윤종신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음저협-함저협 대립? 우리 권리 찾을 수 있는 단체 지지"
문화체육관광부의 저작권료 분배 규정 개정을 둘러싼 논란은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음저협)과 함께하는음악저작인협회(함저협)의 대립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음저협은 국내 유일의 음악저작권 신탁 단체였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복수의 신탁 단체를 허용하기로 하면서 함저협이 새롭게 출범했다.
개정된 저작권료 분배 규정은 함저협의 내부 규정이다. 함저협이 개정안을 냈고, 이를 문화체육관광부가 승인했다.
이에 대해 함저협 측은 "이번 분배 규정은 함저협 회원들에게만 적용되는 규정이기 때문에 이사회 등 정해진 절차를 통해 승인되었고, 음저협 회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내부 규정"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문제화시켜 정책을 잘 모르는 저작권자들을 선동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기존 규정이 가지고 있던 불공정한 점을 개선한 것이 이번 개정안이며, 배경음악용 작품을 창작하는 국내 개인 저작자의 수도 적지 않기 때문에 개정안을 통해 국내 배경음악 분야의 육성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함저협 측의 이야기다.
현재 국내 대다수의 음악인들은 음저협 소속이다. 이번 기자회견 역시 음저협의 주최로 열렸다.
하지만 음악인들은 이번 논란을 음저협과 함저협 사이의 갈등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 선을 그었다. 음저협이냐 함저협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음악인에 대한 권리 보호 자체가 우선시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음악인들은 또 "함저협의 내부 규정 개정이 음악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학기는 "우리는 음저협 편도 함저협 편도 아니다"며 "창작자들이 좀 더 올바른 권리를 찾을 수 있는 단체를 지지하고 선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음저협을 우리의 종이라고 생각한다"는 다소 과격한 표현을 쓰기도 했다. 대다수의 음악인들이 음저협과 저작권 신탁 계약을 맺은 상태지만, 음저협에 저작권과 관련된 업무를 위탁했을 뿐 음저협에 소속돼 음저협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는 "이번 규정 개정으로 인해 업계가 엄청난 피해를 입고 그 반사이익은 몇몇 수입업체에게 돌아간다"며 "음악 수입업자들만 로또를 맞은 격이다. 문화체육관광부를 향해 배신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규정 개정의 원천 무효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정해욱 기자 amorr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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