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서대문형무소 자리 건너편에 '옥바라지 여관 골목'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 민주화 운동으로 투옥된 사람들의 옥바라지를 하던 이들이 기거하던 동네다. 한양성곽 인왕산 아랫마을인 무악동과 현저동의 일대로 3호선 독립문역 3번 출구로 나오면 왼편으로 낡은 상가들이 늘어서 있고, 그 뒷골목으로 여관건물들이 하나둘 보인다. 약 50여미터의 허름한 골목길에는 40년쯤 된 이발소와 세탁소, 양복점과 작은 식당들이 골목을 따라 이어진다. 사글세로 장기투숙객들이 머무는 여인숙도 몇 개 남아 있다. 대개의 건물들은 칠이 벗겨져 나갔다. 그나마 얼마 전까지 영업을 하던 가게에도 재개발에 따른 이전 경고장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미 짐을 꾸리고 나간 빈집들도 여러 채 눈에 띈다.
◇옛 서대문형무소 건너편에 위치한 옥바라지 여관골목(사진=이강)
약 30년 전만 해도 이 여관골목의 건너편에는 서대문구치소가 있었다. 때문에 구치소로 면회하러 온 사람들, 옥바라지하러 올라온 식구들로 북적였다. 이곳이 옥바라지 골목이 된 것은 1907년, 일제의 조선통감부가 이곳 서대문에 형무소를 지었을 때부터다. 일제 강점기 때에는 독립운동가와 애국지사, 해방 이후에는 군사독재정권과 싸워온 민주열사들이 이곳에 수감되고 목숨을 잃기도 하였다. 죄수들이 대개 남자였던 만큼 아내와 어머니 등 여인네가 많이 머물렀다. 하루에 한 번 있는 면회시간을 기다리던 여인네들의 삶은 고단했다. 이들은 옥바라지를 하며 형무소 서쪽 안산 중턱의 새절(봉원사)에서 형무소를 향해 절을 하고, 멀리서 형무소 경내를 보며 기도를 올렸다고 전해진다.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씨 등 독립운동가의 어머니들도 이 골목의 여관에서 자식들을 옥바라지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옥바라지 여관 골목'도 재개발의 바람을 비껴가지 못하고 있다. 일제시대부터 100년 동안 일제와 독재정권에 의해 핍박 받아온 이들이 간절한 마음을 기대던 곳. 한 번 사라지면 되돌릴 수 없는 역사문화의 공간이 지금 훼손될 위기에 처해 있다. 골목길 낡은 담장에 '서대문형무소 옥바라지 아낙들의 임시기거 100년 여관골목'이라고 써 있는 표지판이 무색할 따름이다. 서대문형무소 외에 길 건너편 옥바라지 골목, 인왕산까지가 모두 우리가 지켜야 할 역사의 유산이다.
이강 여행작가, 뉴스토마토 여행문화전문위원 gh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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