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천원
오늘 부는 바람은
2015-09-24 18:36:06 2015-09-24 18:36:06
자정이 가까워져 그는 편의점 밖으로 나선다. 밝게 높이 뜬 달을 쳐다본다. 그는 고향에 가지 못했다. 야간 수당은 없지만, 학교 가까이서 최저임금 5,580원보다 더 많은 시급인 6천원을 쳐서 주는 곳은 좀처럼 없다. 사장은 입만 열면 또래 알바생들의 ‘주인의식’ 부족을 성토한다. 추석을 쇠겠다고 빠질 수 있는지 물어본다면, 아마 계속 쉬어도 된다고 시큰둥하게 대꾸할 것이다. 차라리 가지 않는 게 속은 편하다. 오가는 차비에, 기껏 도착한 그를 기다리는 건 친척 어른들의 점잖은 잔소리다.
 
식구는 ‘한집에서 살며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또는 사이)’을 뜻한다. 한때 부모님과 식구였다. 스무 살에 서울로 온 뒤로는 식구가 아니다. 명절이 아닌 방학 때 모처럼 집으로 가도 한 상에 모여 앉기는 어렵다. 밤에는 아버지가 일할 수도, 어머니 일이 늦게 마칠 수 있다. 간신히 아침밥이나 함께 할 수 있다. 어쩌면 명절은 세 사람이 한때 ‘식구’였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지만 올해는 그마저도 틀렸다.
 
어머니가 보고 싶다. 그가 대학을 가던 해, 생활기록부에서 10년이 넘도록 주부였던 어머니는 대형 할인점에 출근했다. 어머니는 하루에 여덟 시간을 서서 일한다. 무심하게 지나는 사람들에게 새로 나온 세제를 설명하고, 만두를 구워내고, 커피를 탔다.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 등의 기념일과 그에 맞는 선물이 뭔지 어머니가 배운 건 할인점에서 일하면서부터, 좀 더 정확히는 그 선물들을 팔면서부터다. 서울여성가족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유통업 판매직 여성 노동자 중 56.4%가 질병에 걸렸던 경험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근골격계 질환(85.4%), 무지외반증과 같은 발 질환(80.7%), 정신스트레스 질환(76.4%)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어머니는 주휴수당·야간수당을 셈해서 받는다. 비록 그게 최저임금 기준일지라도.
 
아버지를 생각한다. 아버지는 건설 현장에서 일한다. 아버지는 주말도 없이, 비가 오지 않으면 항상 일을 나갔다. 그렇게 번 돈으로 그는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첫 방학에 그는 조선소로, 조선소에서 어떤 아저씨가 떨어져 다치는 걸 보고 보름 만에 도망쳐 나와서 건설 현장으로 갔다. 많은 누군가의 아버지들과 부대끼며 일했다. 최저임금보다 조금 더 받았다. 첫 월급에 감격했다. 옆에 있던 아저씨가 말했다. “학생한테는 큰돈이지만, 우리한테는 아냐.” 비가 오면 쉬고, 몸이 아프면 쉬고, 이도 저도 아니지만 일이 없을 때가 많다. 수입은 불안정하고 안전은 불안하다. 지난해 서울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일용직 노동자의 시간당 평균임금은 7,081원으로 상용직 노동자 15,063원의 절반 수준이었다. 안전보건공단의 지난해 조사에서 건설업 재해자는 23,600명, 사망자는 435명으로 전체 산업재해 사망자 993명의 거의 절반에 이르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보름달. 사진/바람아시아
 
오는 사람이 뜸하다. 편의점에 있는 CCTV는 ‘손놈’뿐만 아니라 알바생도 겨눈다. 들어가야 한다. 전화기를 열어 본다. 읽지 않은 소식이 한가득. 그동안 알게 된 사람들과 함께하는 단체 대화에 추석 인사가 쌓여있다. 읽으면 뭐라도 인사를 보태야 하는데 그럴 기분은 아니다. ‘문학개론 팀플’이란 방이 눈에 들어온다. 추석 때 집에서 쉬며 <달과 6펜스>를 읽고 감상문을 써서 내라는 문학개론 과제에 생각이 미쳤다.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갑자기 ‘예술’을 찾아 떠돌다 타히티 섬으로 간다. ‘나도 6펜스를 버리고 달을 쫓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지만 이내 부정한다. 6천원에 붙들려 타히티는커녕 집에도 못 가지 않았던가. 다시 달을 쳐다본다. 보름달이 몇 번 더 뜨고 지면 최저임금은 6,030원으로 450원 오른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시급도 그만큼 더 오르겠지. 내년 최저임금이 6,030원으로 결정되던 최저임금위원회에서 한 사용자위원은 “방학에 한두 달 일하는 학생들은 생계 목적이 아니다. 핸드폰을 바꾸거나 여행을 가고 싶어서 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재 기자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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