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의 흐름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과거의 국제협력이나 공동번영 추구는 옛말이 돼가고 있다. 우리 경제정책 역시 종래와 같은 재정금융 정책이나 적자재정 등 부채경영을 통한 고통완화는 더 이상 효력을 상실해가는 중이다.
우리 경제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지금의 저성장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참으로 걱정스런 형국이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서강대 석좌교수)의 문제제기와 김동원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의 답변 형식으로 진행된 대담을 통해 그 해법을 찾아본다.[편집자주]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 이하 김 원장)우선 우리 경제가 너무 오랫동안 고통을 겪고 있다. 어떤 상황인가?
(김동원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이하 김 교수)경기를 알아보는 하나의 지표로 우리 경제의 총체적인 상태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동행지수순환변동치’다. 이는 도소매 판매액·생산·출하 등으로 구성되는 동행지표에서 추세치를 제거해 경기의 순환만을 보는 것으로 현재의 경기가 어느 국면에 있는가를 비교적 정확하게 알려준다.
그런데 이 수치가 2011년 8월을 정점으로 지금 48개월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특히 지난 3개월간 정상 기준선인 100을 뚫고 내려갔는데, 이는 경기가 본격적인 침체국면에 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 원장)정부에서는 ‘세계적으로 우리만 그러는 것도 아니고 또 특별히 잘못한 것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지 않느냐’, ‘이정도의 성장률이면 괜찮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김 교수)세계 경제가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7년째 본격적인 성장 국면에 들지 못하고 있어 어떤 의미로는 ‘각국의 각자도생 시대’라고도 할 수 있다. 즉 선진국과 후진국이 연합해 세계경제를 이끌어가는 그런 모습이 아니고, 각국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선택해 가는 것이다. 최근의 환율 문제도 그 차원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우리 경제가 작년에 3.3% 성장을 했고 올해 2.7~2.8%를 성장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보면 그렇게 나쁜 성적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난 2년 반 동안의 경기흐름을 보면 앞으로의 2년 반 동안의 경기 흐름이 더 나아질 것 같지 않고 오히려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 원장)최근 해외 신용평가사들은 우리나라의 신용상태를 괜찮게 평가했는데 어떻게 봐야하나?
(김 교수)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은 떨어졌고 우리는 올라갔다. 그래서 환율도 10원 넘게 원화가치가 오르는 일이 있었다. 이는 우리가 대외적인 쇼크가 일어나더라도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인 성장흐름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김 원장)외국 사람들에게 빚 갚을 능력이 있어 보인다는 이야기인데 우리 경제의 심층 흐름은 그와 별도로 위험하다는 소리인가.
(김 교수)보수적인 한국은행의 자료를 보면 작년에 올해 성장률을 4.2%로 예측했었다. 그걸 3.9%로 낮추더니 지난 8월 달에는 2.8%까지 낮췄다. 한은은 내년 성장률을 3.4%~3.3%로 예측을 했는데, 내년에도 올해처럼 성장률을 계속 낮춰 잡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무디스가 우리나라 성장률을 2.5%로 이야기했고, 골드만삭스나 모건스탠리와 같은 다른 외국투자은행들 대부분이 우리의 금년 성장률을 2.3% 또는 2.2%까지 낮춰보고 있다. 내년 성장률도 금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2.5% 내외로 전망되고 있다.
(김 원장)경제가 어렵다고 해도 다들 그럭저럭 버티는 것 같다. 대기업이나 어느 정도 재산이 있는 분들은 기본체력이 있으니 이해가되는데 그 외 중소기업이나 영세기업 그리고 일반 서민들이 버티고 있는 요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김 교수)두 가지를 들 수 있다. 경기가 4년간 하강세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잘 견뎌낸 이유는 첫째 경기가 아주 완만하게 내려왔을 뿐 본격적으로 침체국면에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성장률이 낮아져 조금씩, 조금씩 무너지기는 했지만 계속 고용이 늘고 가계소득도 늘면서 그래도 우리가 아까 언급한 100을 넘는 정상수준의 경기를 끌어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두 번째는 경기침체가 장기화 돼가면서 가계가 아주 빨리 조정을 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가계가 소비를 아주 빠르게 줄여 오히려 적자가구의 비율이 줄어들었다.
(김 원장)즉 갑자기 충격적으로 경기가 나빠졌다면 거기에 우리가 대응을 했을 텐데 조금씩 악화됐고, 그 결과 경제 내부적으로는 골병이 계속 들어간 것인가.
(김 교수)소위 ‘냄비 속에 개구리 삶는다’는 이야기다. 개구리를 물이 끓고 있는 냄비에 집어넣으면 뛰쳐나오지만 냄비에 넣고 서서히 가열하면 그대로 삶아지게 된다.
또 경기가 이렇게 나쁜데도 국민의 삶에 상처가 나지 않았던 큰 이유는 바로 ‘금융’에 있다. 경기가 하강하기 시작한 2011년 9월과 올해 7월의 전반적인 금리 수준을 비교해보면 대략 약 40%가 떨어졌다. 그만큼 절약이 되었다는 이야기로, 금리를 낮춰주고 대출을 늘려 생존의 부담을 굉장히 줄여주었던 것이다.
이는 양면성이 있다. 정부가 그렇게 해주었기 때문에 민생고통을 줄여주었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다른 한 편에서 보면 이게 공짜가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대출을 늘려준 만큼 가계부채가 쌓이고, 또 경기진작을 위한 정부의 재정부담이 발생하고, 금리를 낮춰주는 만큼 금융기관의 수익이 훼손되는 등 그런 ‘비용의 부담’이 발생한 것이다.
(김 원장)우리가 아파서 약을 먹었지만 그 약을 계속 먹으니 효과가 약화돼 점점 더 센 약이 필요한 그런 상황인건가. 그렇다면 이 약은 언제까지 먹을 수 있고 효과는 언제까지 갈지 의문이다. 지금까지 금리를 낮췄는데 계속 낮출 수 있을까. 특히 미국의 금리인상이 전망되는데, 우리가 지금의 금리를 유지할 수 있을까. 만약 변화가 생기면 가계도 그렇고 기업도 그렇고 모두가 큰 부담을 안게 될 것 같은데 어떻게 보나.
(김 교수)경기가 48개월을 내려왔기 때문에 이제 피로도가 쌓여가기 시작한다. 문제는 지금까지 내려온 길보다 앞으로 갈 길이 더 걱정스럽다는 사실이다.
우선 실물경제 부분을 보면 지난 8월 16일부터 26일 사이, 불과 두 주 사이에 중국 주가가 26% 폭락해 전 세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이것은 내년 중국 경제가 올해처럼 6% 성장을 지속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중국이 세계경제를 끌어가는 시대가 끝났다고 하는 그런 시장의 판단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8월 중국을 비롯한 세계증시 대폭락이 주는 메시지라 할 수 있다.
즉 중국의 ‘차이나 쇼크’가 이제 본격화되고 있는데 우리나라 GDP의 절반은 수출이고, 그 수출의 4분의 1을 중국에 한다. 그런데 중국의 수입이 12.4%가 줄면, 우리나라의 GDP의 1%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날아가게 되는 셈이다.
여기에 미국 금리인상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금리를 매년 1%를 올리는 것이 자기들이 생각하는 ‘노멀라이즈’(정상화)라고 말하고 있다. 즉 지난 7년 동안 금리를 거의 실효금리로 따지면 제로 퍼센트로 해왔던 것을 이제는 올릴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지난 4년 동안 우리 정부는 금리를 40% 가까이 낮춰 국민민생을 지원해왔지만, 그게 국제금리 상승과 이제는 서로 충돌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한은이 과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김 원장)저금리 정책이 더는 지속될 수 없다는 얘기인가? 그런 면에서 지금 우리가 부채를 얼마나 지고 있느냐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국가부채와 가계부채가 크게 늘었다는 평가인데 실상은 어떠한가.
(김 교수)박근혜 정부의 성장정책을 어떤 측면에서 정의를 해본다면 일종의 ‘부채주도 성장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까지 박근혜 정부 3년간 국가부채는 기획재정부의 추계에 따르면 152조원 늘어났다. 이명박 정부 5년의 144조원 보다 많다.
가계부채도 금년 6월 말까지 2년 반 동안 165조원이 늘어났다. 아무리 적게 평가하더라도 금년 말까지 200조원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본다.
(김 원장)가계부채는 이명박 정부 기간에도 늘어났지 않았나?
(김 교수)5년 동안 276조원 늘었다. 박근혜 정부 3년간 가계부채는 200조원이고 정부부채증가는 152조원, 합치면 352조가 늘어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5년 간 420조원과 비교해 3년 동안에 그 85%를 쏟아 부은 것이다.
(김 원장)이대로라면 임기 중에 500조원을 훨씬 넘어가겠다.
(김 교수)앞으로 계속 정부가 ‘부채주도 성장정책’을 유지한다면 아마도 2017년 말에는 국가부채와 가계부채를 합쳐 대략 550조가 늘어나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김 원장)그렇게 되면 국가부채에 대한 이자부담만 해도 1년에 20조원 이상 넘어가고, 가계부채도 큰 부담이다. 국제금융시장에서 미국의 금리가 오른다면 우리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지 않겠나?
(김 교수)그렇다. 정부의 내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에 국가부채가 GDP의 40%를 돌파하게 된다. 가계부채는 GDP의 거의 80% 수준을 넘어서고 있는 상황이기에 미국 금리인상은 큰 충격을 줄 우려가 있고, 국내민생 안정을 위한 저금리 기조와도 충돌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부채주도 성장’을 끌어가고 싶어도 굉장히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요약하자면 지난 2년 반 보다 앞으로의 2년 반 기간 동안 훨씬 대외경제 여건은 나빠지고 대내적으로는 정부가 민생을 지원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정책의 선택 폭은 굉장히 좁아질 것이다.
(김 원장)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김 교수)지금까지 해 온 정책을 이대로 끌고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정부 후반기는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하지 말고, 정말 ‘십년대계’를 내다보는 그런 구조개혁을 하는 데에 훨씬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김 원장)구조개혁은 당장의 경기진작 효과는 없지만 국가경제의 체질을 강화시키기 때문에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보면 그게 더 좋은 약이라는 이야기인가.
(김 교수)이젠 우리가 정말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3포 세대’가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기본적인 경제의 틀을 바꾸는 데에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 원장)경제의 틀을 바꾸어가는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고통을 분담해주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런 고통 분담을 누가 호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내년에 총선도 있고 많은 정치인들은 인기에 연연한다. 그렇다면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집단이나 정치 세력이 있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김 교수)그것은 정치인이든 언론이든 학계든 간에 지금의 기성세대가 안고 있는 ‘책임’이다. 기성세대나 계층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는다면, 우리는 3포 세대에게 희망을 줄 수 없다.
(김 원장)오랫동안 민생경제가 고통을 겪어왔고 정부는 가지고 있는 재정과 금융 정책수단으로 대응했다. 경기부양을 위한 확장재정을 통해 정부는 더 많은 빚을 졌고, 금리를 낮춰 가계가 조금 더 빚을 많이 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면서 고통을 완화시켜 주었다.
그러나 세계 경제의 흐름은 더 이상 이런 방법으로 우리 경제를 버텨내기 어렵게 바뀌어가고 있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솔직하게 모든 것을 드러내놓고 국민모두가 IMF 외환위기 시절 ‘금을 모았던 정신’으로 ‘고통을 분담하는’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
특히 정치집단이 앞장서야 될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 미래에 밝은 희망이 있기가 어렵고, 우리의 ‘3포 세대’들은 더욱 더 어려운 상황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국가미래연구원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우)과 김동원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초빙교수(좌)가 팟캐스트 방송 ‘김광두의 돋보기’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국가미래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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