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오른쪽을 봐주세요, 오른쪽에 있는 강, 바로 ‘압록강’입니다. 강 뒤로 보이는 산 있는 곳이 북한입니다.”
사진/바람아시아
관광가이드가 오랜 차량이동으로 지친 중국여행 버스 안의 적막을 깼다. 가이드의 한 마디에 차량 속 여행객들은 일제히 잠을 깬다. 차창의 커튼을 친다. 햇살에 반짝이는 압록강을 경계로 북한과 중국을 구분하는 것이 민둥산임을 확연히 느끼자 나지막한 탄식과 감탄 사이의 ‘와…….’가 들린다. 볼 거 없는 민둥산인데도 조금이라도 잘 보려고 사람들은 일제히 오른쪽 차창으로 고개를 이리저리 뻗는다. 조용하다 못해 숙연히 북한을 바라본다.
압록강변을 따라 15km를 달리면 ‘호산장성’이 나온다. 압록강과 애하가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호산. 호랑이가 누워있는 형상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입구에서 만리장성의 동쪽 끝을 알리는 ‘만리장성 동단기점’의 대형 현판이 눈에 띈다.
“이곳은 만리장성의 동단기점, 호산장성입니다.”
(좌) 새로 지은 관문 (우) 호산장성. 사진/바람아시아
중국은 1990년대 초반부터 압록강변 호산에 만리장성을 복원하기 시작했다. 호산에서 만리장성의 석축을 발견했고 그 위에 새롭게 성을 쌓았다고 주장한다. 학술적 증거는 없다. 제대로 된 보고서 하나 없이 서둘러 장성 신축 공사를 착수했다.
역사스페셜 35회. 캡처/바람아시아
2009년 9월 25일. 국가문물국 '명 장성 연장' 선포에서 중국 정부는 만리장성의 길이가 2551.8km가 늘어나 8851.8km가 되었음을 발표한다. 새롭게 선포한 만리장성의 동단 기점, 압록강번의 동산시 호산성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명대 만리장성은 압록강까지 이르게 된다. 만리장성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인류 최대의 토목공사라고 불리며 20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이미 역사가 만리장성의 길이는 숫자에 불과함을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기존의 동단기점이 ‘신해관’이 아니라 ‘호산장성’임을 주장하는 것은 단순히 길이 늘리기의 수법으로 보이지 않는다. 2012년 6월, 중국 정부는 만리장성의 길이에 대한 발표를 한다. 2만 1196.18km. 동쪽으로 늘어난 만리장성에 중국의 성이 아닌 고구려와 발해의 성이 포함되어 있다. 늘어난 만리장성의 의도가 보인다.
가는 곳마다 호산장성은 ‘만리장성 동단기점’을 강조한다. 한글로도 표시되어 있다. ‘만리장성의 시작’이라는 ‘자부심’을 보여주기 위해서일까, 아님 한국에게 가리고 싶은 ‘진실’이 있어서 일까. 중국이 신축한 성벽 아래에는 또 하나의 고구려식 석축, 진실이 깔려있다.
(좌) 박작성의 옛터 (우) 고구려양식 쐐기돌. 역사스페셜 35회. 캡처/바람아시아
깔려있는 진실, 고구려의 박작성(泊灼城).
당나라군이 압록강을 거슬러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고구려가 쌓은 성이다. 중국 정부는 성터만 남아 있던 이곳을 1990년대 정비하고 새롭게 성을 쌓아 호산장성이라 부른 것이다. 이곳 박물관에는 고구려와 관계없는 한나라 시대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호산장성의 힘찬 필체의 현판이 요란히도 ‘만리장성 동단기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앞은 볼록, 뒤는 뾰족한 전형적인 고구려양식의 쐐기돌이 선명한 현판 아래 잃어버린 고구려의 역사를 묵묵히 증언한다.
1991년 호산 일대를 발굴한 중국 조사단은 쐐기돌로 쌓은 석축과 대형 우물을 발견했다고 기록하고 이곳에 고구려의 대형 성벽터가 있었다는 발굴 결과를 정리하였다. 1994년, 전 요령성박물관장 왕면후가 집필한 <고구려 고성연구>에서는, 고구려의 ‘박작성’은 단동의 호산산성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고구려의 ‘박작성’은 요동반도에서 평양성으로 이어지는 교통로를 방어하는 성의 하나이다. 이 성에 관한 문헌기록은 고구려와 당과의 전쟁 기사에서 처음 나타난다. 645년(보장왕 4)에 당태종의 대규모 고구려 침략이 실패한 지 3년 후인 648년에 태종은 설만철로 하여금 3만여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의 박작성을 공격케 하였다. 설만철이 압록강을 거슬러 박작성 남쪽 40여리 지점에 진영을 갖추자, 당시 박작성 성주 소부손이 1만 여 명의 군대로 대항하여 성을 지켰으며, 고구려 장군 고문이 오골성과 안시성의 군대 3만 여 기를 거느리고 구원하였다는 기사가 있다. 중국은 이 모든 역사의 증언을 묵과하고 있다.
사진/바람아시아
왼쪽 북한의 압록강, 오른쪽 중국의 애하. 극명한 대비를 볼 수 있다.
능선을 따라 쌓은 호산장성은 꽤 가파르다. 정상에 도달할 즈음 마주한 계단 한 칸이 두 세 칸 정도 된다. 사진촬영을 핑계 삼아 가파른 능선 가운데 가쁜 숨을 고른다. 그리고 마주한 정상. 압록강과 애하가 흐르고 있다. 두 강을 기준으로 북한과 중국의 확연한 대비에 다시 한 번 시선을 빼앗긴다. 1500년 전 고구려의 ‘호산’에서 내려다보이는 압록강과 애하가 그랬듯이 2015년 중국 ‘호산’에서 보이는 두 강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역사도 함께 흐르고 있다. 압록강과 애하, 이 두 강은 증언을 하지 못하지만 이 호산의 고난을 누구보다도 생생히 지켜보고 있다.
화려한 압록강의 야경 빛 그리고 짙은 그림자
사진/바람아시아
호산장성에서 내려와 저녁을 먹고, 압록강변을 다시 찾았다. 북한 신의주와 맞닿은 중국의 국경지역, 단동의 압록강변은 밤이면 더 화려하다. 호산장성을 보러갔던 길에 봤던 북한은 보이지 않는다. 북한의 어둠은 압록강 단교의 부산한 불빛마저 삼켜버린다.
사진/바람아시아
중국 최대의 변경도시이면서 최북단의 연해도시로써 단동은 한국인을 비롯한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다. 오랜 역사가 지닌 문화유적들이 있다. 동시에 호산장성을 비롯한 중국의 ‘동북공정’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관광객들로 부산한 단동시의 압록강변 화려한 밤거리. 강 건너 북한 쪽 칠흑 같은 어둠보다 더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다.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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