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미래연구원]“애매모호한 배임죄 구성요건, 개선돼야 한다”
예견가능성 결여로 죄형법정주의 정신 반하는 면 강해
기업활동 심각한 위축, 국가 경제성장과 발전 저해 우려
일본과 같이 신뢰가능한 객관적·제도적 기준 마련해야
2015-10-26 18:14:44 2015-10-26 18:15:53
기업 경영자가 법적처벌을 받을 때 배임죄를 적용받는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하지 않음으로써 회사나 개인에게 손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배임죄의 구성요건이 애매모호해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미래연구원(원장 김광두)은 지난 10월 21일 “배임죄,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한만수 법무법인 호산 대표변호사가 주제발표를 맡았고, 전문가 토론에는 박동영 법무법인 두우 대표변호사, 나승철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신석훈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팀장, 오영근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이 참여했다. 다음은 이날 나온 배임죄 개선방안에 대한 의견을 간추린 것이다.[편집자주]
 
한만수 변호사의 주제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형법 제355조 제2항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배임죄를 규정하고 있다. 
 
배임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를 한다’는 인식과 ‘자신이나 제3자가 이득을 보고 그로 인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2가지 주관적 구성요건 모두 그 개념이 불분명하다.
 
우선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를 한다’는 것은 충실의무를 저버린다(breach of fiduciary duty)는 뜻인데, 관련 법령이나 법인의 정관 또는 수임인이 본인과 체결한 계약상 지켜야 할 의무가 뚜렷하고, 그것에 위반해 어떤 행위를 하였다면 해당 행위는 충실의무를 위반한 행위, 즉 임무에 위배된 행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의무가 명시적으로 서술되어 있지 않은 경우엔 어떤 행위가 충실의무에 위반되는지, 허용된 권한의 행사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그로 인해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다는 인식’(불법이득 의사)이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 또한 애매모호한 경우가 많다. 불법이득의사를 갖고 어떤 행위를 하였다고 하기 위해서는 해당 행위가 원인이 돼 본인에게 손해가 발생할 수 있음이 행위시점에 분명해야 할 것인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매우 많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물건을 팔아달라는 위임을 받았을 때 ‘가격’ 결정의 주관성 때문에 매매가격이 적정한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매매가격이 시가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경우가 아니면 그 적정성 여부는 신(神)만 알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같은 배임죄 구성요건의 애매성은 단순히 피의자나 피고인의 지위에 서게 된 국민들의 신체의 자유나 재산권과 같은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적용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주로 각종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기업의 경영인들이라는 점에서 기업 활동을 심각하게 위축하게된다.
 
그 결과 국가 경제의 성장과 발전을 심각히 저해하는 문제도 야기하고 있다. 기업의 주요한 재산의 매매, 자본의 투자행위 또는 기업구조재편 행위 등을 할 때마다 배임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는 우려에 소극적 판단을 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배임죄는 예견가능성의 결여로 죄형법정주의의 정신에 반하는 면이 강하고, 기업경영과 국가 경제의 면에서는 본의 아니게 보신주의 현상을 초래하고 있어 하루 빨리 개선할 필요가 있다.
 
물론 권한을 위임받은 자가 자신이나 자신과 관련이 있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할 의도에서 그 충실의무를 저버리고 권한을 위임한 자에게 손해를 가하는 행위는 분명히 권한을 위임한 이의 재산권을 근거 없이 침해한다는 점에서 절도나 횡령과 같은 정도의 불법성을 가진 범죄로 처벌대상이 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주관적인 면에서 충실의무에 위반한다거나 불법이득을 얻는다는 인식을 하지 않은 채 진정으로 경영판단을 하였을 뿐인데, 객관적 징표 면에서 양자가 분명히 구분되지 않음으로 인하여 배임죄로 처벌받는 것이 용인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각종 수임행위를 하는 국민들로 하여금 신뢰할 객관적 기준을 마련해 주는 것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다른 나라의 제도 사례에 비추어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배임죄 구성요건이 지나치게 불확정적임을 알 수 있다.
 
그 개선의 방향으로는 일본과 같이 ‘수임인이 어떤 행위를 함으로써 자기 스스로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고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다는 인식을 하였음을 넘어서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 또는 본인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으로’ 어떤 행위를 한 경우에만 처벌하는 목적범으로 변경해야 한다.
 
나아가 주관적 요소로서의 ‘목적’의 존재여부판단 기준이 역시 애매한 점을 고려해 ‘어떤 행위의 충실의무 위반여부에 관하여 객관적 확인 절차를 거친 경우에는 경영판단 행위로 본다’는 취지의 안전장치 규정을 동시에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국가미래연구원
 
국가미래연구원(원장 김광두)은 10월 21일 “배임죄,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제 6회 정책세미나를 주최했다. 사진/국가미래연구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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