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좀 좌시했으면
오늘 부는 바람은
2015-10-29 18:10:56 2015-10-29 18:10:56
27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는 시종일관 당당했다. 연설문을 읽는 말투에서는 강한 확신이 느껴졌다. 특히,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대해 언급하며 “왜곡과 혼란이 없어야 한다.”, “비정상의 정상화”, “좌시하지 않겠다.” 등의 말을 내뱉을 때에는 호흡을 가다듬고 좌중을 쏘아보는 듯한 눈을 했다. 그동안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는 40분에 걸친 연설을 마치고 의원들과 악수를 나누며 회의장을 나섰다. 환하게 웃는 얼굴이었다.
 
본인의 개운함과는 별개로, 박 대통령의 연설은 갈피를 못 잡았다. “집필되지도 않은 교과서를 두고 왜곡과 혼란이 없어야 한다”고 했으나, 문제는 집필될 교과서의 내용이 아니다. 교과서 집필을 정부가 독점하겠다는 발상부터가 문제다. 역사 서술에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다. 역사 서술의 정설이란 ‘바른 서술’이 아니라 다수에 의해 합의된 서술일 뿐이다. 따라서 “올바른 교과서”, “자랑스러운 역사” 운운하며 획일화를 주장하는 것은 오만이고 몰상식이다.
 
올바른 교육을 위해 교과서를 통일하겠다는 것은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획일화에는 강력한 배제의 논리가 숨어있다. 하나의 서사를 위해 역사를 재단하게 되면, 그 서사 밖의 역사는 희미해진다. 역사 교육은 열린 해석의 가능성을 가르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래야만 하나의 사건을 복합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다원적 가치관을 수용하려는 시도가 배움의 본질이다. ‘올바른’ 역사 교육을 이루겠다는 염원과는 별개로, ‘국정화 드라이브’는 비민주적 요소를 너무나 많이 내포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역사 왜곡, 미화에 대해 언급하며 그런 교과서가 나오면 본인부터 “좌시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교과서 집필 문제에 있어 그가 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좌시”다. 가만히 앉아서 지켜봐야 한다. 국가가 나서서 ‘올바름’과 ‘올바르지 않음’을 가르는 순간, 전체주의 논리가 작동한다. 다양성과 갈등은 민주주의의 기본중의 기본이다. 갈등의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과정을 손보아서는 안 된다. 서로 충돌하고 타협하며 합의점을 찾아나가는 ‘과정’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요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교과서 집필에 주어진 시간은 불과 1년뿐이다. 필진을 구성하고 예산을 확보하는 시간까지 빼면 채 10개월이 안 되는 시간 안에 교과서를 집필해내겠다는 것이다. 각 주요대학 대부분의 역사학 교수들이 집필을 거부한 가운데, 시간에 쫓겨 써낼 교과서가 얼마나 ‘올바른’ 교과서일지 의문이다. 박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무모한 계획을 멈추고, 역사교과서 문제에 대해 완전히 손을 떼고 “좌시”하기 바란다. 물러서서 기다리는 것이야 말로, 대통령이 역사 교과서 집필에 기여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다.
 
 
 
자료/바람아시아
 
 
조응형 기자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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