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잉글랜드 리버풀 팬들 약 1만명이 지난달 7일(한국시간) 홈구장 안필드에서 열린 선덜랜드와 경기 도중 후반 32분에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전반 45분에 후반 32분을 더하면 77분이 되는데 구단이 다음 시즌 티켓 최고가를 59파운드(약 9만7000원)에서 77파운드(약 12만7000원)으로 올리겠다고 하자 이에 항의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팬들이 떠나자 리버풀은 2-0으로 이기고 있던 경기에서 2골을 허용하며 무승부에 그쳤다. 구단은 곧장 홈페이지를 통해 사과하고 입장권 가격을 동결하겠다고 약속했다.
티켓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독일에서도 이러한 일이 발생했다. 도르트문트 팬들은 지난달 10일 도르트문트와 슈투트가르트와의 경기 도중 관중석에서 일어나 운동장을 향해 테니스공을 던졌다. 주심은 경기를 잠시 중단했으며 선수들은 직접 테니스공을 줍는 이례적인 모습을 보였다. 구단이 2배 이상의 티켓 가격 인상을 예고하자 팬들이 단체로 "축구가 언제부터 귀족 스포츠였냐"라며 항의를 한 것이다.
지난 22일 고척 스카이돔을 홈으로 사용하는 넥센 히어로즈의 티켓 가격 소식을 접하며 이러한 사례가 떠올랐다. 물론 유럽과 국내 상황을 직접 비교할 수 없으며 축구와 야구라는 종목의 차이와 '돔구장'이라는 특성도 고려할 만하다. 히어로즈가 기업구단이 아닌 스폰서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주말 최고가액이 9만원에 달하며 평일에도 내야에서 보려면 3만원 이상의 가격이 든다니 결코 만만한 수준이 아니다. 프로스포츠의 기능 중 국민의 여가 활동 증진이라는 기능을 무시할 수 없는데 이러한 높은 가격이 과연 합당한가에 대해선 의문이 든다.
최근 국내 영화계가 좌석별 가격을 달리 책정하며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데 사실 가격 차등은 스포츠에서는 예전부터 있었던 일이다. 더 좋은 가격을 지불할 수 있을 경우 더 좋은 장면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야구장을 예로 들면 포수 뒤와 외야 좌석은 가격부터 혜택까지 천지 차이다. 축구장에선 1층과 2층의 가격과 보이는 장면이 다르다. 국내뿐만 아니라 이른바 '스포츠 선진국'으로 불리는 곳에서도 경기장 내 티켓과 좌석에 따른 차이는 확연하다. 특히 프로스포츠 종류가 많아 스포츠 천국이라 불리는 미국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 여전히 그들의 경기장에서 VIP석을 비롯해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건 다수의 백인 중산층이다.
그러나 경기장 밖에서의 환경은 그들과 국내의 모습이 판이하다. 프로스포츠 문화가 발달한 국가는 스포츠를 누구나 접할 수 있는 '공공재'로 인식한다. '보는 스포츠'에 앞서 '하는 스포츠'에 구단과 사회가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이 국내와 다르다. 선수들은 비시즌만 되면 지역 사회 봉사활동에 적극적이며 사회는 주민들의 생활 체육활동 장려를 위한 환경 조성에 앞장선다. 이런 문화는 흔히 말하는 '엘리트 스포츠' 일변도에서 일찌감치 탈피한 데 따른 결과물이다. 스포츠의 참맛이 결코 비싼 티켓을 끊고 경기장에 들어가는 것만이 아니라는 걸 일깨운다.
하지만 국내 상황은 보는 스포츠와 하는 스포츠의 불균형이 깨진 지 오래다. 프로야구나 프로축구가 매년 몇백만명 관중 돌파를 한다는데 이상하게 프로스포츠 이외의 스포츠는 마치 없는 듯이 보인다. 주말에 체육시설 한 번 이용하려면 몇 달 전부터 예약해야 하는 게 필수다. 초·중·고 체육 시간은 계속해 줄고 있으며 심지어 모 대학에서는 체육시설이 사라지기도 한다. 스포츠를 보는 사람은 많은데 직접 해본 사람의 수는 빈약한 게 우리의 현실이다.
구단과 사회가 티켓 가격을 올리는 것 외에도 힘써야 하는 일이 있다. 바로 스포츠가 공공재로 인식되도록 힘쓰는 일이다. 소수의 구매력 높은 관중을 위한 마케팅까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긴 힘들다. 구단의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는 산업적 차원의 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단이 다수의 평범한 관중을 향한 눈길을 거둬선 안 되는 이유도 분명히 존재한다. 대중의 스포츠 관람은 누구나 운동할 수 있는 신체를 가지고 있다는 보편성, 운동을 할 때 차별받지 않는다는 공정성을 바탕으로 해 성립된 것이기 때문이다. 관중이 '하는 스포츠'에서 배제돼선 안되는 이유다.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를 합치는 체육단체 통합이 올해 스포츠계 최대 이슈인 이유도 여기서 나온다. '보는 스포츠'에서 구매력에 따른 차등을 두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최소한 '하는 스포츠'에 대한 참맛을 팬들에게 돌려줄 의무도 구단과 스포츠 정책 주도층에 있다.
임정혁 기자 komsy@etomato.com
◇지난해 11월4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한국 야구대표팀과 쿠바 야구대표팀의 '2015 서울슈퍼시리즈' 경기를 찾은 관중들이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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