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2004년부터 시행된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성매매처벌법)'의 핵심조항인 21조 1항은 합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31일 성매매 종사자 A씨(45·여)가 "성매매처벌법 21조 1항은 생계형 성매매여성들의 생존권과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이라며 낸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받아들여 법원이 제기한 위헌법률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6대 3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이번 결정은 성매매를 형사처벌하는 성매매처벌법 21조 1항에 대한 첫 결정이다.
이번 사건의 핵심쟁점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도 처벌하는 것이 정당한지 여부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비범죄화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효과적인 대안을 제시해 풀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외부표출 성행위 법적 규제 받아야"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심판대상 조항은 성매매당사자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성판매자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비록 개인의 성행위 그 자체는 사생활의 내밀영역에 속하고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의 보호대상에 속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외부에 표출되어 사회의 건전한 성풍속을 해칠 때에는 마땅히 법률의 규제를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또 "외관상 강요되지 않은 자발적인 성매매행위도 인간의 성을 상품화함으로써 성판매자의 인격적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으며, 성매매산업이 번창할수록 자금과 노동력의 정상적인 흐름을 왜곡하여 산업구조를 기형화시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매우 유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성매매는 그 자체로 폭력적, 착취적 성격을 가진 것으로 경제적 약자인 성판매자의 신체와 인격을 지배하는 형태를 띠므로 대등한 당사자 사이의 자유로운 거래행위로 볼 수 없다"며 "성매매는 성을 상품화하고 성범죄가 발생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 국민생활의 건전한 성풍속과 성도덕을 허물어뜨리기 때문에 이를 차단하기 위한 해당조항의 입법목적은 정당하고, 수단의 적합성도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비범죄화 한다면 성매매 고착"
재판부는 "또 성판매행위를 비범죄화한다면 성을 상품화하는 현상이 만연한 현실을 감안할 때, 성판매 여성의 인권향상은 커녕 오히려 탈(脫)성매매를 어렵게 만들어 성매매에 고착시킬 우려도 있어 성매매는 근절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성판매자도 형사처벌의 대상에 포함시킬 필요성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차별적 노동시장이나 빈곤 등 사회구조적 요인에 의해 불가피하게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이 있을 수 있지만, 성판매자의 자율적 판단이 완전히 박탈될 정도가 아닌 이상 이들에게 비난 가능성이나 책임이 부정된다고 볼 수 없다"며 "다양한 유형의 성판매자 중에서 생계형 성판매자를 구별해 내는 것 또한 매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성매매 여성에 대한 차별과 낙인, 기본적 생활보장, 인권침해의 문제는 성매매를 ‘노동’으로 인정하거나 성판매를 비범죄화를 통하여 해결할 것이 아니라, 성을 판매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가 효과적인 대안을 제시하면서 보다 많은 투자를 하고, 우리 사회의 문화적 구조와 의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이수·강일원 재판관은 "성판매자에 대한 형사처벌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는 과도한 형벌권 행사"라며 일부위헌 의견을 냈다.
"성판매자까지 처벌은 위헌"
김 재판관 등은 "여성 성판매자는 기본적으로 형사처벌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보호와 선도를 받아야 할 사람이며, 이들이 성매매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절박한 생존 문제 때문이고 이는 사회구조적인 것으로 개인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며 "이들에 대한 형사처벌은 여성의 성이 억압되고 착취되는 상황을 악화시키고, 성매매 시장을 음성화해 오히려 성매매 근절에 장해가 되므로 수단의 적합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건전한 성풍속 내지 성도덕의 확립이라는 공익은 추상적이고 막연한 반면, 성판매자들이 받게 되는 기본권 침해의 정도는 중대하고 절박해 성판매자들에 대한 형사처벌은 법익균형성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다만, 이것이 성매매 자체를 국가가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다거나, 성매매의 사회적 유해성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며 "잘못된 성 인식을 바로잡고, 양성평등 의식을 높이며 강제 성매매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성구매자에 대한 형사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조용호 재판관은 전부위헌 의견을 냈다. 조 재판관은 "건전한 성풍속 및 성도덕이라는 개념 자체가 추상적·관념적이고, 내밀한 성생활의 영역에 국가가 개입해 형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입법자가 특정한 도덕관을 확인하고 강제하는 것"이라며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 보호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진 조항이 오히려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큰 인권유린의 결과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입법자의 도덕관 강제 부당"
또 "국가가 특정 내용의 도덕관념을 잣대로 그에 위반되는 성행위를 형사처벌한다면, 지체장애인, 홀로 된 노인, 독거남 등 성적 소외자의 경우는 심판대상조항 때문에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성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조 재판관은 이어 "특정인을 상대로 하든 불특정인을 상대로 하든 본질적으로 동일한 성매매임에도 불구하고, 불특정인을 상대로 한 경우에만 처벌하는 것은 합리적인 이유가 없으므로 심판대상조항은 평등원칙에도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A씨는 2012년 7월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에서 이모(23)씨로부터 13만원을 받고 성매매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벌금 50만원으로 약식기소됐으나 정식재판을 신청해 재판을 받았다. A씨는 재판과정에서 "성매매처벌법 21조 1항은 생계형 성매매여성들의 생존권과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이라며 재판부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고 서울북부지법은 이를 받아들여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한편, 이날 한국여성변호사회(회장 이은경)는 성명을 내고 "성매매행위는 재산적 이익을 대가로 한다는 점에서 내밀한 성적 영역으로만 파악할 수 없고 사생활의 비밀과 보호의 대상이 아니다. 또한 성매매의 개인적, 사회적 위험성에 비추어 직업의 자유로서 보호할 대상으로 볼 수도 없다"며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을 환영했다.
정리;최기철 기자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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