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실제 인간의 뇌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전력 사용량'이다. 지난달 이세돌 9단과 바둑대결에서 승리했던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는 1202개의 CPU와 176개의 GPU를 사용하며 약 170㎾의 전력을 썼다. 사람의 뇌는 약 20W의 전력이면 구동되는데 알파고는 이보다 8500배나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 것이다. 인공지능이 발전하더라도 전력소비량을 줄이지 못한다면 비효율적인 기술로 남을 수밖에 없다. 최근 학계와 업계를 중심으로 인공지능에 사용되는 전력 소비량을 줄이기 위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저전력으로 클라우드 컴퓨팅 없이 구동되는 인공지능이 상용화된다면 산업 전반에 걸쳐 큰 변화가 나타날 전망이다.
[뉴스토마토 원수경기자] 인공지능의 발전을 가능케 한 머신러닝(기계학습)은 '전력 먹는 하마'다. 가장 진화된 머신러닝으로 꼽히는 딥러닝은 인간의 뇌 속 신경세포를 모방해 만들어졌는데 수십에서 수백층 깊이의 인공신경망을 통해 기계가 스스로 학습할 수 있도록 했다. 알파고에는 모두 48층의 인공신경망이 사용됐는데 이는 클라우드 컴퓨팅으로 구동됐다. 페이스북의 사진 태그 기능과 구글의 음성검색, 구글 포토 등 우리에게 익숙한 기능들도 모두 클라우드 컴퓨팅 기반 인공지능 서비스다. 이같은 인공지능 기술이 확대되면서 지난 2013년 전 세계에서 클라우드 컴퓨팅 인프라가 소모한 전력량은 6940억㎾에 달했다. 서울시 전체의 연간 전력 소비량의 15배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다.
클라우드 컴퓨팅이 필요 없는 인공지능도 있지만 지금까지는 스마트폰 잠금 해제를 위한 사용자 얼굴인식이나 "오케이 구글(OK, Google)"이라는 음성을 인식하는 수준에 그쳐왔다. 현재 스마트폰에 들어있는 반도체 칩이나 배터리의 전력만으로는 보다 복잡한 수준의 인공지능을 구동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저전력·고사양 반도체 칩과 소규모 인공신경망을 활용한 기술 등이 새로 개발되면서 인공지능 시장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딜로이트는 최근 '모바일로 가는 머신러닝'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클라우드 컴퓨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인공지능이 앞으로 2년 안에 여러 산업에 걸쳐 큰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MIT·퀄컴, 저전력 반도체 잇따라 개발
최근 학계와 업계를 중심으로 오프라인 상에서도 머신러닝을 실행할 수 있는 저전력 반도체 칩이 개발되고 있다. 메사추세츠공대(MIT)는 지난 2월 기존 모바일 GPU 대비 성능이 10배 이상 개선된 신경망 칩인 '아이리스(Eyeriss)'를 공개했다. 인간의 뇌를 시뮬레이션한 신경망 기술을 채택한 칩으로 인간 뇌의 '뉴런'과 같은 기능을 하는 코어가 168개 갖춰져 있다. 기존 GPU는 하나의 대형 메모리를 활용해 데이터 전송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했지만 아이리스는 코어마다 메모리를 배치해 에너지 소비를 크게 줄였다. 또 인터넷에 연결하지 않아도 기기 내에서 학습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마트폰에 아이리스 칩을 심을 경우 인터넷에 연결하지 않아도 이미지 인식 등 딥러닝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연구팀은 아이리스의 딥러닝이 물체인식이나 음성, 얼굴 인식 등을 위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에 유용하게 활용될 것으로 전망했다. 비비엔느 쉐 MIT 전기공학 조교수는 "개개인이 사용하는 스마트폰 같은 기기를 통해 와이파이(Wi-Fi) 연결 없이도 인공지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며 "네트워크에 연결하지 않아도 돼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으며 백그라운드에서 실행되는 네트워크 전송이 없기 때문에 구동 속도도 훨씬 빨라진다"고 설명했다.
퀄컴은 지난해 말 클라우드 연결 없이도 이미지를 자동으로 분석해 카테고리별로 분류하는 딥러닝 기능을 갖춘 칩인 스냅드래곤 820을 공개했다. 그래픽처리장치 생산업체 엔디비아(NDIVIA)도 지난해 11월 딥러닝 알고리즘이나 이미저치리 기능 등을 수행하면서도 전력 소비량은 기존 제품의 10분의 1에 불과한 제품을 선보였다. 자율주행차나 드론 등에 삽입할 수 있는 시각 모듈로 해당 제품을 사용하면 디바이스가 인공지능을 이용해 주변 장애물을 파악해 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드론·스마트폰에서도 '인공지능' 구현
IT 기업들은 새로 개발되는 저전력 칩을 활용해 스마트 기기나 드론, 자율주행차 등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딜로이트는 "스마트폰과 드론, 자동차 등에 전력을 90% 이상 절약하면서도 인공신경망을 가동시킬 수 있는 칩이 들어가기 시작했다"며 "과거 클라우드 컴퓨팅을 필요로 했던 시각 및 음성인식 등을 오프라인에서도 매끄럽게 처리할 수 있는 기기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최대 드론 생산업체인 중국의 DJI는 지난달 인공지능을 탑재한 드론인 '팬텀4'를 선보였다. 첨단 컴퓨터 비전(advanced computer vision), 센서감지 기술과 함께 스스로 데이터 오류를 점검할 수 있는 머신러닝 기능 등이 탑재돼 장애물을 피하면서 자동적으로 목표물을 쫓아 비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세계 최대 드론 생산업체 DJI는 지난달 머신러닝 기능을 포함한 팬텀4를 선보였다. 사진/뉴시스·AP
레노버는 올 초 구글과 함께 프로젝트 탱고가 탑재된 스마트폰을 선보였다. 구글의 프로젝트 탱고는 기기에 탑재된 센서와 카메라를 통해 실제 사물을 인식하고 3D로 변환해 증강현실(AR)을 구현하는 기술이다. 스마트 기기가 사람처럼 세상을 인식하도록 하는 것으로 첨단 컴퓨터 비전과 심도 감지 기능, 모션 트랙킹 기능 등을 이용한다. 탱고를 이용하면 게임개발자들은 집이나 사무실을 스캔해 게임 환경으로 바꿀 수 있으며 대형 쇼핑몰 등에서는 실내 공간과 움직임을 탐지해 내비게이션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부피가 큰 가구를 살 때에도 카메라와 센서로 사이즈를 잴 수 있어 편리하다. 특히 레노버가 공개한 이번 프로젝트 탱고 폰은 오프라인 상에서도 구동이 가능해 적용범위가 한층 넓어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DJI나 레노버처럼 고성능 칩을 이용해 인공지능을 기기에 심는 경우도 있지만 머신 러닝이 사용하는 인공신경망 시스템의 크기를 줄여 네트워크 없이도 구동되도록 하는 사례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구글의 번역 애플리케이션이다. 구글은 지난해 7월 스마트폰에서 오프라인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실시간 번역 앱을 선보였다. 텍스트로 입력한 문장을 번역하는 것뿐만 아니라 카메라로 찍은 메뉴판 속 글자나 음성인식을 통해 입력된 내용도 모두 번역할 수 있는 기술로 소규모 인공신경망을 활용했다.
구글은 소규모 인공신경망을 활용해 오프라인에서도 실시간으로 구동할 수 있는 번역 앱을 선보인 바 있다. 사진/구글 자료영상 캡처
구글은 "(클라우드 컴퓨팅을 활용해) 데이터센터 서버를 이용했다면 어렵지 않은 일이었겠지만 많은 사용자들이 느리거나 제한된 인터넷 환경 혹은 전력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며 소규모 인공신경망을 도입한 배경을 설명했다. 보급형 스마트폰의 경우 고성능 노트북에 비해 50배정도 느리고, 고성능 노트북이라 하더라도 그 속도는 데이터센터보다 훨씬 느리기 때문에 클라우드 컴퓨팅을 이용할 경우 보급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인공지능 적용범위 크게 확장될 것"
오프라인에서도 이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이 늘어날 경우 인공지능이 활용될 수 있는 분야도 크게 확장될 전망이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필요가 있는 분야에도 인공지능을 적용할 수 있게 된다. 딜로이트는 "모바일 센서부터 스마트폰, 태블릿 PC, 드론, 자율주행차를 비롯해 아직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디바이스에까지 상당한 기회를 만들며 인공지능 적용 범위를 크게 넓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데이터를 인식하고 분석하는 기술은 헬스케어 분야에서 진단 애플리케이션의 발전을 이끌 수 있다. 굳이 사진을 온라인으로 전송하지 않더라도 오프라인으로 피부상태를 진단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등을 상상할 수 있다. 또 빠른 속도로 실내 공간에 대한 3D 모델을 만들어내는 건축 및 디자인용 애플리케이션이 나올 수도 있다.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는 일반 스마트폰을 이용해서도 현실감 넘치는 가상현실 및 증강현실 게임을 구현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머신러닝이 가능한 초저전력 프로세서를 통해 인터넷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음성인식 기능의 웨어러블 디바이스나 가정용 애플리케이션 등도 가능해질 수 있다.
내비게이션이나 모션 컨트롤 기능이 향상되면서 드론 등의 무인항공기나 자율주행차의 기능도 한층 발전할 것으로 예상됐다. 미술관이나 기차역, 공항, 쇼핑몰 등에 적용할 수 있는 실내용 내비게이션이 상용화될 수 있으며 비콘 등 다른 기술과 연결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광고가 생겨날 수도 있다.
딜로이트는 저전력·고성능 오프라인 머신러닝이 기업의 고객 서비스 방식을 완전히 바꿀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보고서는 "머신러닝과 향상된 인지 컴퓨팅이 장착된 모바일 디바이스는 향후 18~24개월 안에 광범위한 제품과 애플리케이션, 사업영역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기업들은 지금부터 모바일 머신러닝과 인지 컴퓨팅에 대한 선제적인 대응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수경 기자 sugy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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