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 이유
2016-06-14 11:03:47 2016-06-14 11:27:59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 경유값 인상은 일단 없던 일이 됐지만, 그런 발상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솔직히 백지화도 안 믿는다. 여론에 밀려 잠시 유보했을 가능성이 높다. 어차피 군불을 지폈으니 언제든지 경유값 인상 논란은 재점화될 것이다.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 첫 번째 이유는 속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언제는 ‘클린(clean) 디젤’이라고 호들갑을 떨더니 이제는 ‘더티(dirty) 디젤’이라며 마녀사냥이 한창이다. 갑자기 미세먼지의 심각성을 운운할 때부터 불안했다. 결국 들고나온 대책이 경유 값 인상이었다. 느닷없이 경유차는 미세먼지의 주범, 경유차 운전자는 공범으로 몰렸다. 
 
시계를 7년 전으로 돌려보자. 국회에서 ‘클린디젤자동차포럼’이 열렸다. 포럼의 목표는 분명했다. 국내 클린 디젤차 지원을 위해 각종 법률 개정 작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지식경제부, 현대·기아·쌍용 자동차, 보쉬, 대한석유협회 등 당시 포럼을 후원했던 기관과 업체의 면면을 보면 목표는 더욱 뚜렷하다. 게다가 이 포럼을 주도한 사람은 이상득 전 한나라당 의원이었다. 클린 디젤에 대한 찬사가 포럼 내내 이어졌다.  
 
이같은 분위기를 등에 없고 국내 자동차 제조사는 경유차 생산을 늘리고 경쟁적으로 신차를 출시했다. 정유회사는 경유를 팔아 재미를 봤다. 자동차 제조사와 정유사는 연일 경유의 높은 연비와 적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강조했다. DRF(매연저감장치), EGR(배기가스 재순환장치), SCR(선택적 환원촉매장치) 등을 통해 친환경적 요소를 갖췄다고 자랑했다. 일부 정부출연연구기관은 관련 기술개발 성과를 발표하면서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조금 찜찜했지만,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주 5일 근무제가 정착되면서 그렇지 않아도 SUV나 RV에 관심이 높았던 소비자들은 경유차로 몰렸다. ‘5년 이상 타면 기름값 뽑는다’는 자동차 영업사원의 말에 귀가 솔깃했다. 차값은 상대적으로 비싸지만, 기름값 싸고 성능 좋은 경유차를 타고 다닌다는 게 퍽 만족스러웠다. 심지어 차 외부에 녹이 스는 불량이 발생해도 그러려니 했다. 휘발유에 비해 낮은 경유값은 그 정도 불량과 불만을 상쇄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지금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모든 게 거짓말이었다. 깨끗하게 속은 것이다.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그 책임을 왜 소비자에게 전가하느냐는 것이다. 경유차가 미세먼지의 주범이라면 당연히 경유차 제조사에도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유회사는 책임이 없는지 살펴야 한다. 한때 클린 디젤이라고 경유차 생산과 소비를 부추겼던 정치인, 정부 관계자에게도 최소한 왜 그랬느냐고 한 번은 따져야 한다. 
 
자동차 제조사가 경유차 팔아 남긴 이익으로 우리나라의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는 데 썼다면 그나마 덜 억울할 것 같다. 그런데 기껏해야 들리는 소식은 국내 최대 부동산 재벌로 등극했다는 종류의 뉴스뿐이다. 경유값을 올려 정말 미세먼지 없는 깨끗한 환경을 만드는 데 쓴다고 해도 기꺼이 지불할 용의가 있다. 그런데 12조 원을 투입하기로 한 이번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대책처럼 내가 낸 세금을 부실기업 살리는 데 쓰고, 지난 정부의 토목공사 때문에 빈 곳간을 채우는 데 사용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세 번째 이유는 앞으로도 속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다음에 바꾸게 될 차로 전기차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테슬라가 ‘모델 3’보다 더 저렴하고 혁신적인 전기차를 조만간 선보인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정부도 전기차 보급을 늘린다고 하지 않나. 그런데 실제 전기차를 사려면 많은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기술적 완성도를 의심해서가 아니다. 또 어떤 규제가 불쑥 등장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신나게 전기차를 몰고 다니고 있을 때쯤 이런 발표가 나올지도 모른다. “최근 국내 전자기파 급증의 원인이 전기차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전기차에 대한 세금과 전기 충전료 등을 대폭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끝으로 고백한다. 사람이 미욱하여 아직도 담배를 피운다. 기름값이라도 조금 아껴보자고 경유차를 몬다. 별다른 잘못을 저지른 것 같지 않은데 이상하게 갈수록 죄인이 되는 기분이다. 차 뒷유리에 이런 문구라도 붙이고 다녀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경유차 몰고 다녀 죄송합니다. 게다가 담배까지 펴요.”   

김형석<과학칼럼니스트·SCOOP 대표>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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