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우성문기자] 이미 낮은 성장률로 고심하고 있는 일본 경제가 또다시 엔고의 저주와 불확실성에 갇히게 됐다.
같은 섬나라로 닮은 점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일본이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브렉시트’의 최대 피해국으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엔고로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의 제조업 경기마저 더욱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일본 제조업의 중심축인 자동차 산업이 영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만큼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브렉시트에 자동차 산업 직격탄…깊어지는 제조업 부진
2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브렉시트가 일본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특히 자동차 산업과 관련해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영국에 진출해 있는 1380여개의 일본 회사 중 50개는 자동차 제조업체들로, 특히 닛산, 도요타, 혼다 등 일본을 대표하는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매년 절반에 가까운 자동차를 영국에서 생산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중 절반은 EU 국가들로 수출이 되는 만큼 브렉시트가 결정되면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닛산의 경우 영국에 총 37억유로를 투자한 상황으로 지난해 47만6589대의 자동차를 생산했다. 이는 재규어 랜드로버 다음으로 영국 내에서 많은 양의 자동차를 생산한 것이다.
브렉시트 결과가 나온 후 입장을 밝히지 않았으나 투표 전 닛산은 영국이 EU에 잔류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혀 왔다.
도요타 역시 22억유로를 투자했고 19만161대의 자동차를 생산했으며, 혼다도 11만9414대의 자동차를 생산했다.
그러나 브렉시트 이후 영국이 다른 EU 국가들로 자동차를 수출할 때 관세가 더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이 회사들은 다른 유럽 국가로 공장을 옮길 가능성도 제시되고 있다.
따라서 노무라 증권은 일본 자동차 제조업체들의 실적 전망 하향 조정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마사타카 구노기모토 노무라증권 전략가는 2018년 3월까지 일본의 7개 주요 자동차업체들의 순이익 전망치를 5조700억엔에서 4조1500억엔으로 하향 조정했다.
또한 자동차 업체들의 부진은 일본 제조업 경기 부진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제시되고 있다.
앞서 23일 공개된 일본의 6월 제조업 구매관리자(PMI) 지수 잠정치는 47.8을 기록해 4개월 연속 위축과 확장을 가늠하는 50 이하에 머무르는 등 부진한 가운데, 제조업 경기 위축이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감이다.
풀리지 않는 엔고의 저주…부양책에도 회의론 깊어져
또한 브렉시트에 따른 엔화 강세 역시 일본 경제를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글로벌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엔화에 매수세가 몰리는데 브렉시트 이후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2년 5개월 만에 최고치까지 치솟았다.
이에 따라 사실상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 정책인 '아베노믹스'가 통제력을 상실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핵심은 엔저로 인한 수출 활성화로,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에 힘입어 1달러당 125엔까지 엔화 가치가 30% 이상 떨어졌었다. 따라서 수출 업체들의 실적도 개선되는 듯했으나 내수 부진과 글로벌 경기 부진, 여기에 브렉시트까지 겹쳐 엔화 가치는 고공행진하고 있다. 브렉시트 이후 엔화 가치는 달러당 100엔선이 붕괴됐고 현재도 높은 수준인 102엔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아베노믹스가 최악의 위기에 직면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일본 경영인 단체인 게이단렌과 일본경제단체연합회 대표 등은 정책당국자들에게 대응에 나설 것을 촉구했고 일본정부와 일본은행(BOJ)은 즉각 응답에 나섰다.
앞서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는 금융 시장 안정을 위해 나설 준비가 됐다고 밝혔으며 이날 긴급경제재정자문회의를 연 아베 총리는 2차 추경까지 편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소 다로 재무상 역시 환율 시장을 자세히 지켜보고 있고 대응에 나설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골드만삭스는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에도 "엔화 강세를 막기엔 역부족"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지난 5월 주요 7개국(G7) 회의에서 일본의 환율 개입에 대한 비판이 나온 만큼 일본이 이를 모두 무시하고 과감히 행동에 나서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현재 시장의 불확실성과 우려감이 너무 큰 상태인 만큼 일본 정부가 대응에 나서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캐시 마수이 골드만삭스 일본 전략가는 "일본 당국이 개입에 나서기 쉽지 않은 상황이고 개입에 나선다고 해도 그 효과는 1~2일이면 모두 날아갈 것"이라면서 "현재 상황에서 엄청난 부양책을 기대하고 있다면 큰 실망을 하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타쿠지 오쿠보 재팬매크로어드바이저스 수석 전략가 역시 "현재 상황에서 BOJ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불행히도 BOJ는 쓸 수 있는 카드를 모두 쓴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이어 오쿠보 전략가는 "엔화 강세는 앞으로 얼마나 더 길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우성문 기자 suw14@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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