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용민기자] 지난달 28일 헌법재판소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이 법에 대한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공직사회는 물론 사립학교와 언론사들도 어떤 유형이 법에 저촉되는지 따지기에 바쁘다. 유형별로 일어날 수 있는 사례들을 거론하며 설명하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오는 9월28일 시행되는 김영란법으로 인해 우리 경제가 투명해질 것으로 기대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농축수산업계 관계자들은 당장 물건이 팔리지 않을 수도 있다고 걱정하고, 요식업계도 매출 하락을 우려하고 있다. 이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지는 실제 법 시행 후에나 확인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정무위원회 야당 간사로 활동하며 김영란법 심사를 주도했던 김기식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런 논란이 일어나는데 대해 안타까워했다. 이 법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가 문제가 터지니 안절부절 하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김 전 의원은 무엇보다 포괄입법을 개별입법으로 빨리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무원이나 기타 공공기관, 사립학교나 언론인 등 각각 대상을 나누고 부정청탁이나 금품수수 사례별로 처벌 강도를 달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빠진 이해충돌방지 조항도 원안이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에 합리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의원은 특히 사립학교 교사와 언론인이 포함되어 일어나는 논란, 부정청탁 금지 대상에 국회의원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주장 등 여전한 쟁점들은 법이 잘못 알려져 있거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전 의원을 지난 1일 그의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났다.
-헌법재판소의 김영란법 합헌 결정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당연한 결론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국회에서 김영란법을 심사하고 제정할 때부터 위헌 논란이 있을 것으로 보고 위헌의 소지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입법했다. 정부 원안대로 했다면 위헌 판결이 났을 가능성이 높았다. 부정청탁과 관련해서도 정부 원안의 추상적인 개념을 15가지 유형과 7가지 예외조항으로 구체화해 명확히 했기 때문에 헌재가 합헌 결정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포괄입법에서 개별입법 형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이유는?
세계적으로 이런 입법 사례가 없다. 전체적으로 포괄입법을 한 예도 없다. 처음에 이 법이 국회로 넘어 왔을 때 전직 대법관 출신의 국민권익위원장(김영란)이 제출한 법안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공무원과 공공기관 종사자들을 구분해 대상자별로 금지 유형과 처벌의 강도를 달리하는 것이 맞다.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 받는 공무원은 훨씬 더 강하고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된다. 부정청탁이나 금품수수, 이해충돌법안도 각각 고유한 영역이기 때문에 특성에 맞게 입법을 해야 한다. 권익위원회가 입법에 과욕을 부렸다고 생각했다. 이 법이 처음 국회로 넘어왔을 때는 나 혼자 '이 법은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언론이나 대통령이나 당 지도부가 원안대로 통과시켜야 한다고 난리를 쳐서 그나마 위헌 소지를 없애는 형태로 입법을 하게 된 것이다.
-법 시행 후 농축수산업 등 피해가 전혀 없을 것으로 보는가? 농축수산물을 제외하자는 법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가늠할 수는 없지만 일시적으로, 일부에 타격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투명해지면서 생겨나는 반대급부적인 이득과 비교해야 한다. 사회와 경제가 투명해지면 경제 성장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것은 입증된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피해 규모가 11조라고 말하지만, 그 연구보고서를 작성한 사람들의 양식이 의심스럽다. 농축수산물 등 특정 제품을 제외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다만 식사나 선물 가액을 현재 기준보다는 상향 조정해 제도가 연착륙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5만원, 10만원으로 시작해 나중에 액수를 줄이면 된다.
-정치권에서는 부정청탁 금지 대상에 국회의원이 포함되지 않아 미흡한 법이라고 주장하는 의원들도 있다.
부정청탁 대상에서 국회의원을 배제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국회의원들을 마치 화풀이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 같다. 부정청탁으로 정한 15개 유형에 국회의원도 결코 예외가 되지 않는다. 인사 청탁, 민원 청탁, 인허가 청탁 등을 하면 국회의원도 부정청탁으로 처벌 받는다. 예외 조항으로 만든 '공익적 목적의 고충 민원'이라고 하는 것도 아무 것이나 고충 민원이 되는 것이 아니다. 권익위법에 있는 고충 민원의 개념을 준용하는 것이다. 행정부는 민원실을 운영하면서 처리를 한다. 국회도 당연히 그렇게 해야 된다.
-지역구 민원을 위한 국회의원들의 쪽지예산도 부정청탁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국회의원의 쪽지예산과 부정청탁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로 예산을 증액하고 감액하는 문제는 부정청탁과 완전 별개의 문제다. 쪽지예산이 정치적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있으나 김영란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다. 정치적으로 비난받을 일이고, 나도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이 법으로 규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해충돌방지 조항이 빠져 부실한 법이라는 지적이 있다. 안철수 의원은 이를 포함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냈는데.
안철수 의원의 법안 발의 내용은 거의 무책임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이 법에 대한 이해도 전혀 없고, 지난 19대 국회 정무위에서 왜 이것이 입법화하지 못했는지 전혀 검토하지 않았다. 당초 정부가 제출한 원안으로는 입법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안철수 의원의 개정안은 정부 원안을 거의 베껴서 법안을 낸 것이다. 입법적인 검토 없이 그냥 내가 이 법안을 제출했다는 정치적 효과만을 보기 위한 매우 정치적인 행위이고 무책임한 행동이다. 실제로 법안을 이해하고 있다면 정부가 제출한 원안은 입법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이해충돌방지 조항이 빠진 이유를 설명해 달라.
김영란 전 대법관이 자신의 경험만을 가지고 이해충돌방지 법안을 만들어서 엄청난 오류를 범했다. 판사와 검사처럼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건을 다루는 공직자는 '제척회피'가 쉽다. 예를 들어 그 사건의 원고·피고가 친인척 관계에 있으면 형사2부로 넘기면 된다. 그러나 행정영역이나 입법영역은, 특히 고위직으로 갈수록 포괄적 직무 범위를 갖는다. 금융위원장이나 정책국장이 정책을 어떻게 내느냐에 따라 금융기관 임직원들의 성과 연봉이 달라질 수도 있고, 이익이 달라질 수 있다. 이 법안에 따르면 금융위원장이나 정책국장의 친인척은 은행이나 보험사, 증권사, 자산운용사, 카드사 등 금융권 어느 곳에도 취직하면 안된다. 경제 전반에 대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공직자는 ‘제척회피 제도’ 운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낸 대안이, 신고하게 하자는 것이다. 자기 직무 범위와 관련돼 있는 곳에 친인척이 재직 중이면 이를 기관장에게 사전 신고해 스스로 경계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아울러 사후적으로 이 사람의 업무 집행이 공정했는지 평가하는 방식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다.
-김영란법에 대한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불만이 큰 것으로 알고 있다.
언론의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다. 이 법이 국회에 처음 제출되고 1년 가까이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단 한 줄도 보도하거나 주목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원안 통과만을 요구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 법안이 마치 경제를 망치는 법안이라고 보도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유는 하나다. 적용되는 언론사의 범위가 확대됐기 때문이다. 본인들이 당사자가 됐다고 갑자기 표변하는 태도는 매우 당혹스럽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현재 논란에서 가장 중요한 점을 꼽는다면?
기본적으로 이 법에 대한 이해 없이 법을 제정했다고 생각했다. 사립학교 교사, 언론인, 국회의원 등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본질적인 문제도 아니고 사실도 왜곡돼 있다. 문제는 세계적으로 사례가 없는 무리한 포괄입법 체제를 계속 유지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 다만 법이 한번 만들어졌으면 시행해본 후에 고쳐야지 시행하기 전에 고치는 것은 안 된다. 저는 개별입법 형태로 전환해야 한다는 소신은 확고하지만, 그리고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 받는 공무원과 다른 사람들을 구분해야 된다는 입장도 분명하지만, 현재는 이대로 갈 수밖에 없다.
-김 전 의원의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
한국 사회의 미래에 대해, 특히 경제 문제와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정책적 대안을 만드는 것에 주력하려고 한다. 다만 국회에서 입법적으로 정책적으로 주요하게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과 관련해 특히 논의가 왜곡되거나 그런다면 지속적으로 내 소신을 밝힐 생각이다. 당과 계속 협의도 하고 있다.
19대 국회 정무위 야당 간사를 맡았던 김기식 전 의원이 지난 1일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최용민 기자 yongmin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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