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보라기자] 태아를 잉태하면 '태명' 을 짓는다. 부모들의 희망이 내포된다. 아기가 태어난 후에는 이름을 지어준다. 평생을 이름처럼 살기 바라며 고민에 고민을 더한다. 의약품도 마찬가지다. 프로젝트명과 브랜드명에 회사의 꿈과 희망을 담는다. 구체적으로, 개발되기 전에 성분에 대한 이름(성분명)을 만들고, 시판 전에 브랜드명을 만들어 허가를 받은 후 본격적인 판매를 한다. 신약 개발 과정부터 탄생 후 제품의 이름을 짓는 BI(Brand Institute)는 현재 전세계 제약작명시장의 70% 가량을 점유하는 글로벌 1위 기업이다. 사노피의 항혈전복합제 '플라빅스', 화이자의 고지혈증약 '리피토', 아스트라제네카의 위궤양치료제 '넥시움' 등을 작명했다. BI코리아의 유구상 대표를 만나 단일 글로벌브랜드 전략의 필요성과 국내 제약업계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들어봤다.
BI는 무슨 일을 하는 회사인가.
BI는 제약전문 작명회사다. 전세계 22개의 글로벌 지사를 운영하고 있다. 아시아권에는 한국과 일본 두곳에 지사를 두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산하의 INN(International Nonproprietary Names)과 미국의 USAN(United States Adopted Name)이 신약의 성분명에 대한 허가를 내리는 기관인데, 이름에 대한 검토와 허가가 매우 까다롭다. BI는 신약개발에 있어서 이러한 일종의 '허들'을 넘을 수 있도록 각 문화 언어, 상표권등을 검토해 이름을 지어주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제약회사와 의료기기, 임상시험명도 작명한다.
제품명과 성분명, 무엇이 다른가.
화이자의 발기부전치료제 '비아그라'를 예를 들자면 비아그라는 제품명이고, 비아그라의 성분명은 '실데나필'이다. 제품명은 대중에게 알려져있지만 성분명은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모든 의약품은 제품명과 성분명이 있다. 의약품의 이름(제품명)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성분명이 적혀있는데, 이것은 일종의 규칙이라고 보면된다. 제약사가 성분명을 취득한다는 것은 개발사의 신약개발 능력과 신뢰도, 공신력이 생긴다는 뜻이다. 제품명은 소유권이 인정되지만 성분명은 소유할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 구체적이고 정교한 성분명 및 제품명 가이드라인을 통해 약물투약오류 사고도 방지할 수 있다.
신약을 개발한 제약사가 자체적으로 성분명을 만들 수 있는것 아닌가. BI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INN과 USAN은 연평균 각각 60%, 65% 정도 의약품 불허 결정을 내린다. INN과 USAN이 성분명 허가를 내리는데 걸리는 시간은 각각 1년6개월과 6개월 정도다. 허가에 대한 장벽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신약개발은 시간 싸움이라해도 과언이 아닌데, 신청과정에서 차질이 생기면 짧게는 1년에서 5년까지 딜레이(지연)될 수 있다. 경쟁사가 치고 올라오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외부 전문가집단을 통해 체계적인 과정을 통해 성분명 및 제품명을 작명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국내 제약사들이 신약 개발을 통해 해외에 진출하는 가운데 각 나라의 문화와 언어, 역사, 글로벌 상표법 등에 맞게 검토한 후 성분명과 브랜드명의 작명을 통해 향후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임상명에 대한 작명을 진행하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신약을 개발할때 대체로 임상1상부터 3상을 거치는데 보통 숫자 등으로 이뤄진 코드명으로 진행된다. 식별하고, 기억하기도 어렵다. 최근에는 이러한 임상명에 대한 이름을 지어 어떠한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외부에 알려 미리 마케팅하는 것이 또 다른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비록 임상단계에서 개발이 좌초되는 경우도 있지만 임상단계부터 작명을 해 성공하게 되면 막대한 마케팅 효과를 누릴 수 있다.
2014년에 BI코리아를 설립했을 때 국내 상황과 지금의 차이가 있다면?
설립 당시 국내 제약사들은 INN, USAN에 대해 생소해했다. 성분명은 이미 주어진 이름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 제약사들이 지금까지 신약개발보다는 내수시장을 타깃으로 복제약을 중심으로 한 영업을 해왔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예전에는 글로벌 진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불과 2~3년만에 한국 제약사들은 달라지고 있다. 예를 들어 회사 내부에서 신약개발을 위한 모든 과정을 진행했는데, 각종 과정을 외주를 주는 방식의 기법을 쓰는 신약개발사들이 생겨나고 있다. 또 다양한 종류의 신약과 약물들이 개발되고 있다. 무엇보다 정부가 글로벌 제약사를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지원에 나서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정부를 비롯해 대기업과 벤처캐피털까지 앞장서서 투자를 하고 성과를 내고 있다. 정부와 각 업계에서 나서서 제약업계를 밀어주고 있는데 글로벌 시장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성분명을 국내 제약사 이름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신약기술을 개발한 국내 제약사 이름으로 성분명을 등록한 후 수출하게 되면 어떠한 이점이 있나?
파트너사들에게 성분명 개발 및 등록권한을 넘기지 말고 제품탄생부터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성분명을 허가 받아 수출하면 '오리지널리티' 를 남길 수 있다. 또 파트너사가 신약성분명 허가에 필요한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 판매가치도 높일 수 있다. 판매는 다국적제약사가 하지만, 원래 성분명은한국의 제약사가 개발한 것이라는 기록을 남기자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해당 제약사에 대한 개발능력과 신뢰도가 제고되면서 제2의, 제3의 수출도 원할하게 진행할 수 있을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신약기술을 세계에 수출하더라도 뿌리채 팔지 말고 '뿌리'는 남겨두자는 얘기다. 한국 제약업계와 나아가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막대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국내 제약사가 글로벌 수준으로 도약하기 위해 장기적으로 취해야 할 전략은?
단일브랜드전략이 절실하다. 단일브랜드전략은 글로벌 마케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중장기적으로 마케팅과 브랜드에 대한 투자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제품은 하나인데 다수의 브랜를 갖고 있으면 브랜딩 전략 자체가 틀어지게 돼 집중된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기가 어렵게 된다. 예를 들어 아시아와 미주, 유럽에서의 제품명이 다르게 되면 각각의 브랜드별로 마케팅비용과 광고를 포함한 유지 및 관리 비용이 계속 투입된다.
대한민국은 아직 단일브랜드전략이 없다. 유명한 다국적 제약사는 단일브랜드 전략을 구사한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하나의 이름으로 찾을 수 있도록 말이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이름을 쓰고 원 글로벌 브랜드 전략을 통해 우리나라 제약 기술이 세계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다.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이 일을 할때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
시간 싸움이 관건인 신약 개발 과정에서 시간과 비용을 절감해주는 브랜딩 작업이라는 서비스 내용 자체가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관여했던 신약이 새로운 이름을 가지고 학회나 온라인 등에서 광고되고 널리 알려지며 전세계로 뻗어나가는 것을 볼때 가장 뿌듯하고 보람된다. 임상실험을 통해 신약을 개발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작명 작업은 3~6개월 간의 작업을 거쳐 결과물이 도출된다. 매우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UN과 셀트리온 등을 거친 것으로 알고 있다. 제약업에 종사하게 된 계기가 있나.
유엔아시아태평양 정보통신 교육원에서 저개발국가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ICT발전을 위해 어떤 인프라를 준비해야하는지에 대한 교육을 담당했다. 그 당시 담당국가가 동티모르였다. 성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피임기구가 부족해 수많은 여성이 임신하게 되고 각종 약물과 비타민 등이 영양제가 부족해 기형아를 출산하는 것을 자주 봤다. 세계 곳곳에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약물이 제공돼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제약시장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셀트리온(068270)에서 5년간 글로벌 마케팅 전략을 담당했고, BI코리아 지사가 설립되며 자리를 옮기게 됐다. 앞으로 좋은 신약과 의약품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가교역할을 하는 것이다. 국내 및 아시아권 유수의 신약 개발사들의 미주 및 유럽 시장의 진출을 돕는데 전력을 다할 계획이다.
◇전세계 제약작명시장의 70% 가량을 점유하는 글로벌 1위 기업으로 사노피의 항혈전복합제 '플라빅스', 화이자의 고지혈증약 '리피토', 아스트라제네카의 위궤양치료제 '넥시움' 등을 작명했다.자료제공=BI코리아.
이보라 기자 bora1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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