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기자] 삼성이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내부적으로 확정지었지만 넘어야 할 산도 만만치 않다. 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 도입 여부에 따라 금융계열사 지분 정리가 필요하고, 삼성전자 인적분할 과정에서 외부 지분이 침투돼 그룹 지배력이 약화될 우려도 있다. 주주 동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에서 지난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논란이 불거진 점도 부담이다.
따라서 특검 수사 등 삼성에 대해 불거진 의혹의 향방을 지켜보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헤지펀드 엘리엇이 주주가치 제고라는 명분을 제공했지만, 주주들에게 지주회사 전환이 승계 목적이 아니라 투명한 지배구조 확립의 취지라는 점을 보다 설득할 필요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그룹을 총괄하면서도 책임과 권한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한 미래전략실 해체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사내이사에 올라 친정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선대회장 비서실에서부터 맥을 이어 온 미전실은 청산 대상으로 지목된다. 국정조사 청문회에서의 ‘미전실 폐지’ 발언도 의도된 것이란 추측이 나온다. 이를 통해 화제 전환에도 성공했다.
경제민주화 압박에 '시간이 없다'
지주회사 체제 전환은 주주총회 특별결의 사항이다. 상법상 주주 의결권의 3분의2 이상 찬성과 동시에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1 이상 찬성이 요구된다. 외국인 등 외부 주주의 동의 없이는 통과 요건을 충족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삼성물산 합병 논란은 짐이다. 국민연금공단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에서 합병 찬성표는 의혹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삼성전자 인적분할 후 삼성전자홀딩스(가칭)와 사업회사 간 총수일가 등의 지분 스왑 시 외부 지분 침투가 이뤄질 수도 있다. 삼성전자에 대한 삼성물산과 총수일가 지분가치가 5~6조원 정도로 추산되는데, 그 이상의 자본이 있다면 경영권을 가져갈 수 있다는 얘기다.
삼성이 지주회사 전환을 서두르게 된 주된 배경은 경제민주화법이 첫째로 꼽힌다. 인적분할 후 자사주에 대한 의결권 부활을 제한하는 관련 규제법안이 발의돼 국회 통과 시 삼성전자가 보유한 13% 자사주는 무용지물이 된다. 탄핵안 가결로 조기 대선국면에 진입하면서 변수는 더욱 커졌다. 지주회사 설립 발표 후 완료되기까지 이사회, 주주총회, 주식교환 및 신주상장 등의 과정에 평균 8개월이 소요되는데, 내년 조기 대선 이후 정권이 교체되는 상황까지 고려해야 한다.
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 도입도 불투명하다. 삼성은 그간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자사주 매입 등 금융계열사의 지분 재편 작업을 통해 체제 전환을 준비해왔다. 하지만 제도 도입이 없으면 헛수고가 된다. 지주회사 체제 전환이 투명한 지배구조 확립에 도움이 된다는 명분에서 체제 전환을 저해하는 금산분리 규제를 개선하자고 정부여당이 설득 중이지만, 야권은 특정기업 특혜라며 반대하고 있다. 순환출자 규제로 지배구조 리스크에 놓인 현대차, 롯데 등 다른 그룹들도 제도 도입이 절실하다. 여당이 야당 측의 법인세 인상카드와 맞바꿀 것이란 관측도 있다. 중간금융지주회사 전환을 위해 삼성생명은 상장 자회사 지분 30% 충족 요건을 채워야 하는데 삼성화재의 지분율이 현재 15%인 상황에서 보험업법상 총자산의 3% 이내, 자기자본의 60% 이내로 투자한도가 제한돼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간금융지주 제도 없이 지주회사 전환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금산분리 규제에 따라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 19.34%를 2년 내에 매각하면 된다. 하지만 지분을 외부에 팔면 경영권이 위태로울 수 있고, 내부에서 흡수하면 4조원 이상의 인수 대금이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 이재용 부회장이 매입할 가능성이 높지만 재원 마련이 쉽지 않아 보인다.
미래전략실 해체는 이재용의 의지
경영체제도 대변혁을 예고하고 있다. 정부가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권장·유도하는 것은 지주회사의 이사회가 그룹 의사결정을 하고, 그에 따른 법적 책임을 지며, 각 계열사별 독립·자율경영 체제를 확립해 지배구조 투명성을 제고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일찍이 지주회사로 전환한 SK, LG 등이 전문경영인 체제를 강조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런데 지금까지 삼성 총수일가가 그룹 경영을 총괄하도록 핵심 역할을 수행해온 미래전략실은 지주회사 체제 전환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 부회장도 지주회사 전환을 검토하며 미전실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이 그룹 컨트롤타워를 장악해 승계 문제를 종결짓는 데도 미전실 해체는 필수 과제로 인식된다. 이 부회장은 국조위원들의 집중 질문공세를 받은 청문회장에서 회피성 발언으로 여론의 눈총을 샀지만, 미전실 폐지 발언으로 이슈를 전환하는데 성공했다. 삼성 고위관계자는 "미전실 문제는 12월 예정돼 있었다"며 "새로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삼성은 청문회를 앞두고 법무, 전략, 홍보 등이 참여한 TF를 조직했으며 이인용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 팀장(사장)이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일각에서는 미래전략실장으로 있는 최지성 부회장 라인의 청산 얘기도 나온다. 일종의 세대교체다. 경영권 승계가 완료될 때까지 미전실의 필요성도 거론됐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모든 계획이 수정됐다.
한편, 지주회사 전환 등 일련의 과정에서 가장 큰 난관은 최순실 게이트 연루 의혹이다. 삼성은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 외에도 최씨 모녀 승마 및 동계스포츠 센터 지원 등 뇌물죄 의혹을 사고 있다. 이번 일로 불거진 ‘반삼성’ 여론도 부담이다. 그룹 내부에서는 대외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장충기 미전실 차장(사장)에 대한 책임론도 제기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삼성은 이와 함께 현재 12월 계열사별 인사와 내년 2월 미전실을 포함한 대규모 조직 개편을 놓고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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