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헌법재판소와 국민주권주의
정주호 숭실대 법학과 초빙교수
2017-02-23 08:00:00 2017-02-23 08:00:00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변론일이 확정되면서 지금 온 국민의 관심이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선고에 집중되고 있다. 탄핵에 대한 찬반여부를 떠나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할 역사적 재판 앞에 나라 전체가 혼돈 속에 멈춰버린 느낌이다.
 
정주호 숭실대 법학과 초빙교수
 
사상초유의 국정농단 앞에서 헌법재판소의 고민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엄중하고 깊어 보인다. 대통령 중심제하에서 권력의 정점에 서있는 대통령을 파면시킨다는 것은 국가적 변혁을 가져오는 일대 사건이자 정치의 흐름을 바꾸는 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1948년 7월 제헌헌법상의 헌법위원회제도로 시작하여 9차 개정헌법을 통해 현재의 헌법재판소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헌법 수호기관으로서 헌법재판소 심판의 종류에는 법률의 헌법위반여부를 따지는 위헌법률심판, 위헌정당을 해산시키는 정당해산심판, 국가기관의 분쟁을 처리하는 권한쟁의심판, 대통령 등 헌법 65조에 규정된 공무원을 파면하는 탄핵심판, 국민 기본권 침해를 심판하는 헌법소원심판 등이 있다. 심판 내용을 보면 그 결과에 따라 국가 운영과 국민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결정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헌법재판소의 위헌법률심판에 따라 동성동본 금혼, 과외금지, 호주제, 군가산점제도, 간통죄 등 국민생활이 밀접한 관계를 가진 법제도들이 헌법 불합치 또는 위헌으로 모두 폐지되었다. 반면 사형제도, 친일파 재산환수법, 성매매특별법, 김영란법 등의 경우 합헌결정으로 법제도가 유지되기도 하였다.
 
특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정치적으로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14년 통합진보당 정당해산결정이다. 헌법재판소의 해산 결정에 따라 통합진보당은 정당 활동의 전면 금지, 정당소유재산 국고 귀속, 유사한 강령의 새로운 정당 창당금지, 명칭 영구사용금지 등으로 정당자체가 완전히 사라졌다.
 
헌법재판소는 최고 규범인 헌법을 수호하는 기관으로서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거나 극심한 대립점을 가지고 있는 법제도들을 심판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그 결정에 대해 많은 비판이 따르기도 한다.
 
앞서 말한 헌법 불합치, 위헌, 합헌 결정도 마찬가지다. 전통의 가치가 무너진다는 반대 속에 이루어진 동성동본 금혼, 호주제 등에 대한 헌법불합치결정이나 병역 의무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를 박탈했다는 비판 속에 이루어진 군 가산점제도 위헌 결정, 생명의 존엄성을 파괴한다는 비판 속에 이루어진 사형제도 합헌 결정 등이 이러한 예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심판의 경우 비판을 넘어 의혹제기나 조롱까지 등장하기도 한다.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의 경우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해산 결정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으며, 2004년 신행정수도건설 특별법 위헌결정의 경우 관습헌법의 법리를 조롱하는 패러디가 난무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끼치는 사회적 의미와 파장이 결코 적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앞서 말한 수많은 사회적 논란과 의견대립에도 불구하고 이를 조정할 수 있는 헌법재판소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 다시 말해 대통령과 고위 공무원들을 탄핵시킬 수 있고, 법제도를 폐지하거나 유지시킬 수 있으며, 국가기관의 분쟁을 조정하고 정당을 해산시킬 수 있는 힘의 근본을 따져 보면 너무나 당연하지만 바로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힘이다.
 
따라서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상 국민주권주의를 바탕으로 국민이 부여한 권한에 따라 심판하고 결정해야 한다.
 
최근 헌법학계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앞두고 헌법재판소가 정리한 5개 탄핵 소추사유 유형 중 탄핵인용가능성이 높은 유형으로 ‘인치주의에 따른 국민주권주의 위반’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한마디로 대통령이 국민을 무시하고 비선조직을 이용해 국가를 마음대로 운영했다면 이보다 더 중대한 탄핵사유는 없다는 것이다.
 
며칠 전 대통령 대리인단 변호사가 탄핵심판 도중 재판관에게 “왜 재판을 함부로 진행하느냐”라며 재판부를 무시하는 돌발 발언으로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형국이다. 이제 대한민국을 흔든 국정농단의 악몽을 끝내야 한다. 현직 대통령 탄핵 여부를 결정하는 운명의 결정 앞에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주권주의가 바로 세워지는 헌법재판소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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