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이향 기자] "노인분들과 함께 사는 게 저는 좋아요. 3년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집주인과 가끔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할머니 생각도 나고 정겨워요. 단지 집에서 덜 자유로울 뿐이죠."(30대 남성 강 모씨)
혼자 사는 것이 외로운 노년층을 위한 주거방식의 하나로 '셰어하우스'가 주목받고 있다. 셰어하우스란, 노년층이 자녀들의 출가로 비어 있는 방을 청년들에게 저렴한 임대료로 제공하며 함께 사는 주거형태를 말한다.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셰어하우스 임대인과 임차인을 만나 실제 얘기를 들어봤다.
30대 사회 초년생인 강 모씨는 관악구 대학동에 위치한 셰어하우스에 입주한 지 8개월째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거주 형태"라며 입을 열었다. 보증금 30만원, 월세 25만원의 저렴한 임대료 때문이다. 강씨가 입주하기 전에 살던 사람은 3년 동안 이 곳에서 돈을 모아 아파트를 사서 나갔다고 한다.
3층짜리 주택 2층에 위치한 이 쉐어하우스는 방 4개와 공동구역인 화장실, 부엌, 거실로 이뤄져 있다. 집주인 할머니가 안방을 쓰고 작은 방 두 개를 직장인 두 명에게 임대한 상태다. 집주인은 세탁기, 냉장고, TV 등 모든 물건을 함께 쓸 수 있도록 배려했다.
강 씨는 "돌아가신 집주인 할아버지 제삿날에는 온 가족이 모여 제사를 지내고 새벽까지 술을 드셔서 불편했지만 이제는 방문 너머로 들리는 이야기 소리가 정겹게 느껴진다"며 "다음 날 집주인이 미안한 마음에 먹을거리를 들고 문을 두드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일부 불편했던 부분이 따뜻한 '정'으로 바뀌었다는 설명이다.
오히려 그는 "앞마당에 큰 앵두나무가 있는데 할머니가 높이 열린 앵두는 맛보라고 남겨뒀다고 하셔서 나무를 타고 앵두를 따서 할머니와 나눠먹은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오히려 즐거운 추억들을 소개했다.
그렇다면 나이든 집주인과 젊은 세입자는 얼마나 많은 대화를 할까. 강 씨는 "생활 패턴이 달라 대화 나눌 기회가 많지 않다"며 "대화하는 게 불편하지는 않지만 딱히 할 이야기가 없다"고 털어놨다. 주로 자식과 손자들 이야기를 하는 집주인의 말을 들어주는 식이다.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셰어하우스를 5년째 운영하는 60대 장 모씨는 젊은 사람들과 교류가 생각보다 부족한 데 대한 서운함을 토로했다. 그는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괜히 휴대폰을 들고 가서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쉽지 않다"면서 "그래도 남편 사별하고 우울증이 왔는데 혼자 사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4층짜리 빌라 2층에 위치한 이 셰어하우스의 임대료는 보증금 100만원, 월세 30만원으로 주변 시세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방 3개와 공동구역인 화장실, 거실이 있으며, 주방은 장씨 혼자 사용하고 있었다. 세입자에게 간단한 라면 정도는 끓여 먹는 것은 허락했지만 주방 만큼은 본인만의 공간으로 사용하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다.
장 씨는 셰어하우스 생활의 애로점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주방을 쓰다보면 쌀 씻는 소리, 그릇 부딪히는 소리 등의 소음이 날 수 밖에 없다"며 "젊은 사람들이 그 소리에 깨는 바람에 잠을 못 잔다고 항의를 받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일요일 아침에는 밥을 같이 먹었으면 좋겠는데 아가씨가 늦잠을 자서 깨우기도 미안하다. 평일 저녁에도 가끔 삼겹살을 사와서 같이 먹으려고 하는데 밖에서 먹고 들어왔다고 할 때가 많다"며 아쉬움도 표했다.
그러나 그는 "여기 들어왔던 아가씨들은 2년 이상 살면서 결혼한다고 나갔다. 내 딸이 결혼하는 것만큼이나 기뻤다"며 "월세를 받아 아기 낳고 고생하는 막내딸에게 용돈 줄 때 행복하다"는 보람도 함께 전했다.
김이향 기자 lookyh88@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