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한영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3·1절을 맞아 독도·위안부 문제를 놓고 작심한 듯 수위 높은 발언을 쏟아냈다. 평소 소신과 원칙에 입각한 것이지만, 일본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문 대통령은 1일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 99주년 3·1절 기념사에서 “불행한 역사일수록 그 역사를 기억하고 그 역사로부터 배우는 것만이 진정한 해결”이라며 일본의 각성을 촉구했다. 특히 독도를 놓고 문 대통령은 “우리 고유의 영토”라며 “일본이 그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반성을 거부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지난 1월 일본 도쿄 히비야공원 한복판에 독도가 일본 영토임을 주장하는 ‘영토·주권전시관’이 개관한 가운데 맞대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현재 진행형인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한 것도 향후 양국관계가 녹록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이와 관련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유엔 인권이사회 기조연설에서 “80~90세의 할머니들인 위안부 피해자·생존자들은 지금까지도 존엄과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애쓰고 계신다”고 강조한 바 있다. 현 정부 출범 후 정부 당국자들은 2015년 12·28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피해자 중심적 접근이라는 원칙이 결여됐다’며 진정한 문제해결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보통국가화’에 속도를 내고 있는 일본 정부가 이를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당장 문 대통령의 기념사 내용을 놓고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2015년 한일 (정부 간) 합의에서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했다”며 “(문 대통령의 발언은) 한일합의에 반하는 것으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일본은 외교루트를 통해 우리 측에 즉각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문 대통령은 “(일본이) 평화공존과 번영의 길을 함께 걸어가길 바란다”며 과거사와 양국 간 미래지향 협력문제를 분리해 접근하겠다는 기존 원칙은 유지했다. 일본 측에 “진실한 반성과 화해 위에서 함께 미래로 나아가길 바랄 뿐”이라며 한일 위안부 합의 재협상 등을 거론하지 않은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지난 26일 강 장관의 발언에 대해 노규덕 외교부 대변인도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위안부 문제를 역사의 교훈으로 남기기 위해 노력한다는 정부의 원칙적인 입장을 표명한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한 상태다.
이날 연설에서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운동가들을 대거 언급했다. 1920년 부산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 박재혁 의사, 같은 해 밀양경찰서장이 훈시하는 틈을 이용해 폭탄을 던진 최수봉 의사 등이 그 주인공이다. 일부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이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 노력을 폄훼하는 가운데, 독립을 위해 노력한 각계각층의 노력을 보여주며 반박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광복은 결코 밖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며 “선조들이 ‘최후의 일각’까지 죽음을 무릅쓰고 함께 싸워 이뤄낸 결과”라고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3·1운동으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헌법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제이며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명백하게 새겨 넣었다”며 “그것이 지금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되었다”고 언급했다. 2019년 건국 100주년 기념사업의 정당성을 여기서 찾은 문 대통령은 임시정부 독립자금 마련을 도운 정정화 여사 등을 거론, 임시정부가 1940년 창설한 광복군을 ‘대한민국 최초의 정규 군대’로 칭하며 의미를 부여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기념사업추진위 민간위원장에 한완상 전 부총리가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향후 범정부 차원의 행사가 준비될 것으로 보인다.
독립운동 역사가 남북 공동의 것임을 언급하며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해 마련된 남북화해와 한반도 평화정착 노력으로 연결지으려는 시도도 엿보였다. 문 대통령은 3·1 운동과 관련해 “서울과 평양, 진남포, 안주, 의주, 정주, 선천, 원산 등에서 독립선언서가 낭독됐다”고 말했다. 서울 외에는 현재 북한에 속한 도시들을 나열하며 민족 동질성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3·1운동과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을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과 평화에 기반한 번영의 새로운 출발선으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피력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 99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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