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디지털 경제의 성장과 함께 인터넷 비즈니스의 대표주자인 네이버, 카카오가 자산가치 5조원을 넘어서면서 공정거래법에서 정한 준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공시대상 기업집단이 되면 계열사 간 거래, 총수 본인과 친인척의 간 거래 내역 등 기업집단에 대한 공시 의무가 적용된다. 경제개발 시기에 혈연적 관계의 인물들로 경영진을 꾸리고 족벌식 계열사 경영을 하며 이른바 ‘갑질’을 하는 재벌들을 개혁하기 위해 2017년 개정돼 강화된 공정거래법이 적용된 결과다. 그런데 네이버와 카카오와 같은 기술혁신 창업 기업들도 재벌이고 개혁의 대상이 돼야 할까?
재벌을 영어로 번역할 때 일상적으로 conglomerate(복합기업)으로 할 때도 있지만 요즘은 chaebol이라고 발음 그대로 번역하는 경우가 더 많은 듯하다. 이는 우리나라의 경제규모가 커져서 인식이 높아진 점도 있겠지만 재벌이 한국의 대기업으로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재벌은 동일한 자본계통 하에 재벌 총수 및 그 가족에 의해 폐쇄적으로 지배되는 기업집단으로 정의된다. 재벌의 기원은 일본의 ‘자이바쓰(財閥)’로, 1920년대부터 경제 패권을 잡은 독점적 가문 기업들이었다. 2차세계 대전 이후 맥아더 군정이 재벌을 해체했으나 ‘게이레쓰(系列)’라는 형태로 지금까지도 그 형태를 유지해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재벌은 1945년 해방 이후 적산 기업을 불하받는 등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부를 축적했다. 1960년대 경제개발 시대에는 수출을 촉진하고 전략산업을 육성하면서 재벌은 여러 금융 및 세제 지원을 받았다. 정부 중심의 경제성장에 대응하다보니 재벌 내에 비밀도 많아지게 돼 믿을 수 있는 가족과 친척들 중심으로 경영진을 임명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전체 경제 중 재벌 부문 집중은 더욱 심화됐고 문어발식 사업 확장과 선단식 경영 등 여러 가지 폐해가 나타났다. 이런 재벌의 폐해를 해소하기 위해 공정거래법이 도입됐다. 공정거래법은 기업들이 자유로운 경쟁을 해 시장활동이 잘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서 독점규제정책의 실현을 목적으로 한다.
네이버는 1999년에, 카카오와 합병한 다음은 1995년에 설립됐다. 카카오의 모바일 메신저 사업은 2010년에 만들어졌으니 10년도 되지 않았다. 두 회사 모두 갑자기 재벌로 불리는 게 어색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대기업 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공정거래법을 포함한 27개 법에 의해 60여건의 각종 규제를 받게 된다. 예를 들자면 계열사 간 상호 출자나 계열사끼리 꼬리를 물고 지분을 투자하는 순환 출자가 금지되며 계열사 간 채무 보증도 금지된다. 대기업 기업집단의 계열사들은 벤처캐피탈 투자 및 병역특례 등에서 여러 제한을 받는다.
불과 10년, 20년 전만 해도 스타트업이었던 네이버와 카카오는 인터넷 사업을 기반으로 급성장했다. FANG(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 시대의 인터넷 사업은 빠른 사업 결정과 기업 인수 등을 통해 새로운 사업을 계속 개척해야 글로벌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다. 하지만 신속한 의사결정이나 인수합병 진행 시 각종 규제가 따라 붙게 된다면 경영의 어려움이 예상된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경영은 재벌과는 양상이 다르다. 재벌의 오너 경영체계와는 달리 전문 경영인의 책임과 권한이 크다. 또 네이버와 카카오는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와 인수가 활발하다. 또한 이런 투자와 인수가 네이버 및 카카오와 관련된 소프트웨어, 콘텐츠, O2O(Online to Offline, 온-오프라인 연계사업), 게임사업 등에 이뤄진다. 은행법상 산업자본은 은산분리 원칙(산업자본의 은행 지배 금지)에 따라 여러 규제를 받는다.
하지만 동시에 이 회사들은 글로벌 IT회사들과 경쟁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단적인 예로 구글의 동영상서비스 유튜브가 국내 인터넷 및 모바일 시장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10 ~ 20대에서 유튜브가 새로운 검색엔진으로 부상하면서 압도적인 시장 선두를 달리고 있다. 또한 중국 최대 인터넷기업인 텐센트는 모바일 메신저 위챗을 통해 은행업에 진출해 편리한 송금, 결제 뿐 아니라 여신, 수신 업무를 할 수 있다.
기업의 지배구조와 관련된 연구를 검토해 보면 대부분의 연구가 재벌 지배구조에 집중돼 있다. 4차 산업혁명을 강조하는 지금, 미래세대를 이끌어갈 산업에 기존 재벌규제를 부과해야 할지, IT 혁신기업의 바람직한 지배구조는 어떻게 돼야 할지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절실하다.
전성민 가천대학교 경영대학 글로벌경영학트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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