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하늬 기자] 친구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한 윤모씨(34)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식장에 입장하고 있는 친구의 경제사정이 부러워서다. 친구는 1억원으로 갭투자에 성공해 결혼에 골인했다. 같은 대학을 나와 같은 회사 대리로 근무하고 있지만 혼자만 빈털털이인 것 같다. 윤씨는 "친구가 전세 끼고 6억원에 장만한 그 집은 지금 10억원에 달한다"며 "상대적 박탈감에 결혼은 커녕 지금 있는 여자친구와의 연애도 버거울 지경이 됐다"고 토로했다.
자고나면 '억'소리 나는 수도권 집값과 전·월세가 고공행진을 하면서 성혼기 청년들이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요즘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을 안 한다'는 어른들의 질책이 무색하게도, 청년들의 포기선언은 나름의 이유가 있어 보인다.
특히 주거문제는 청년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집값 급등 현상은 청년들의 결혼과 출산율을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주택시장의 전반적인 가격 상승과 월세화 경향은 청년들의 주거 상황을 더욱 열악하게 하는 문제로 꼽힌다. 최근 저출산 해소방안으로 마련된 정부 대책 중 신혼부부 등을 대상으로 한 특별 분양의 경우에도, 일부만 혜택을 볼 뿐 대다수 청년층에게는 먼나라 얘기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주거정책이 저출산 정책과 맞물리면서 과도하게 신혼부부 중심으로 흘러가는데 신혼부부보다는 저소득 가구의 열악한 주거문제가 더 심각하다"며 "저출산 문제의 핵심은 결혼을 이행 못하는 것인 만큼 가난한 청년들을 우선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집값급등 현상은 출산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육아정책연구소의 '경기변동에 따른 주택가격변동이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 논문을 보면, 주택가격 상승이 출산율 저하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연구진은 한국을 포함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9개국의 1985~2014년까지 30년 자료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 주택가격 상승이 출산율 하락과 관계가 있는 것을 밝혀냈다.
논문에 따르면 주택가격지수가 1%포인트 증가하면 출산율은 평균 0.072명 낮아졌다. 특히 집값 상승이 기대되는 호경기일수록 주택가격이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은 컸다. 호경기에는 주택가격지수가 1%포인트 증가할 때 출산율이 0.087명 감소하는 반면 불경기에는 0.062명만 감소했다. 소득 상승이 급격하게 이뤄지지 않는데 주택가격이 상승하게 되면 월세나 전세금, 주택 구입 자금에 대한 재정적 부담이 높아지게 돼 결혼이나 자녀 출산을 거부하는 의사결정을 내리게 된다는 것이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청년들은 여러 이유로 항변한다. 저출산고령사회원회가 최근 진행한 청년토크('해도 좋고, 안 해도 좋고')에서도 청년들은 '연애·결혼·출산'에 대해 거침없는 의견들을 쏟아냈다. 결혼하면 남자는 '책임'을, 여자는 '포기'를 강요받는 현실과 주거·일자리 등 불안정한 경제문제 때문에 '비자발적 비혼'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전문가들은 결혼·출산 같은 개개인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내집마련 등 주거 문턱을 낮춰주되, 내실도 함께 다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강미나 국토연구원 주택·토지연구본부장은 "청년들은 임대료부담이 과다한 경우가 많고, 최저주거기준 미달에 해당하는 경우가 높다"며 "단순히 임대료를 낮추는 것 뿐 아니라 주거안정성, 주거의 질을 담보할 수 있도록 주거기준을 만족하면서 저렴한 임대료로 임대할 때 집주인에게 세제감면을 주는식의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세종=김하늬 기자 hani4879@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