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4명인데…서럽기 짝이 없소"
대법원 지연으로 피해자 3명 사망…생존자 이춘식씨 홀로 재판에
2018-10-30 17:03:36 2018-10-30 17:03:50
[뉴스토마토 최영지 기자] “원래 4명인데 혼자 재판 받으러 와 대단히 눈물나고 서럽기 짝이 없소.”
 
강제징용 피해자인 이춘식씨는 이날 오후 2시께 대법원에서 ‘신일철주금(구 신일본제철)이 피해자들에게 각 1억원씩 배상하라’는 판결 선고를 직접 들었다. 아침 일찍 전라남도 광주에서 올라온 이씨가 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은 13년 전이다. 나머지 원고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대법원 선고 이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씨는 “목이 아파 말을 많이 못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어릴 때 신체검사를 해 가마이시 제철소에 뽑혀 갔다. 굴속에서 철근 실은 기차가 나오면 포크레인이 없으니 그걸 5명이서 홀딱 벗고 5-6번 옮기는 일을 했다”며 “훈련생처럼 강제로 일을 시켜서 월급 같은 건 바라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나고 서럽다”는 소회를 밝혔다.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이씨를 포함해 여운택·신천수·김규수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상고심 선고 공판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최종 확정했다.
 
대법원은 지난 2012년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받아들인 서울고법 환송판결이 정당하다고 봐 상고기각했다. 원고 측 손해배상 청구권의 청구권 협정 포함 여부를 두고 논란이 계속됐지만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결론났다. 민사 채무 해결을 위한 청구권 자체가 경제협력이라는 용어로 표현됐는데, 강제징용은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로 청구권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또 이미 일본 법원에서 원고 패소가 확정된 것이 한국 법원에 효력을 미쳐 패소판결해야 하느냐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국내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론났다. 또 구 신일본제철의 채무를 지금의 일본기업이 승계해야 한다고 판단됐다.
 
전범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옴으로써 또 다른 피해자들이 소송 제기를 할 수도 있게 됐다. 이씨 등의 소송을 맡은 법무법인 해마루의 김세은 변호사는 “청구권 소멸 여부가 오늘 확정돼 오늘부터 소멸시효를 계산해 특정 기간 안애 다른 피해자들이 소송을 제기해 권리구제를 받을 여지가 있다”며 “법원과 외교통상부의 입장이 다를 수 있지만 법률과 조약에 대한 해석에 대한 최고 권한은 외교부가 아닌 대법원이 갖고 있다”고 밝혔다.
 
또 “선고에 대해서는 만족스럽게 생각하지만 절차적인 문제에 대해선 사법부가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정의가 실현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 씨가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신일철주금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상고심 판결에 참석, 선고를 마친 후 법원을 나서고 있다. 대법원은 일본 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에 1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사진/뉴시스
 
최영지 기자 yj113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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