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지주사 전환을 추진 중인 우리은행(000030)에서 묘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아직 지주사 승인도 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출범 이후 자기자본비율 산출방법을 내부등급법으로 전환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현재 금융당국에서는 우리은행 지주사 전환 시 표준등급법을 적용할 방침이다. 하지만 추가 인수·합병(M&A)을 추진하고 있는 우리은행 입장에서는 원활한 자본 확보를 위해 상대적으로 위험가중치가 낮은 내부등급법이 유리하다 판단, 자기자본비율 산출방법 전환을 서두르는 모습이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최근 입찰공고를 내고 ‘지주사 내부등급법 승인 신청’을 위한 컨설팅 준비에 돌입하기로 했다. 그룹 자기자본비율 산출방법을 내부등급법으로 적용하기 위해 사전 준비에 나서는 것이다.
우리은행은 오는 11월12일까지 제안서를 받은 후 13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에서 프레젠테이션을 갖고 최종 입찰을 진행할 계획이다. 내부등급법 승인 작업을 위한 컨설팅은 내달부터 지주사 출범이 예정된 내년 3월까지 5개월 간 실시된다.
사진/백아란기자
금융당국은 현재 우리은행 지주사 전환 시 자회사 자산에 대해 내부등급법이 아닌 표준등급법을 적용하기로 가닥을 잡은 상태다. 우리은행의 경우 은행 자체 특성을 반영한 내부등급법을 활용하고 있지만, 우리금융지주는 새롭게 설립되는 금융회사인 만큼 표준등급법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내부등급법과 표준등급법은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을 산정하는 과정에서 위험가중 자산을 평가하는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내부등급법은 각 금융회사의 내부 데이터와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활용해 기업의 신용위험을 자체적으로 평가하는 반면 표준등급법은 금융회사 전체 표준모형을 기반으로 한다. 이 때문에 표준등급법을 적용할 경우 위험자산가중치가 높아지고 건전성을 판단하는 자본비율 지표는 하락한다.
우리은행 입장에서는 지주사 출범 목적인 비은행 계열사 강화 등 인수·합병(M&A)과 자본비율 방어를 위해 최대한 빨리 자체 신용모형을 활용한 내부등급법으로 전환하는 것이 유리한 셈이다. 은행 관계자는 "과거 국민은행과 하나은행 등이 지주사로 전환할 당시엔 특례 조항이 있어 지주회사가 표준등급법을 적용받더라도 해당 자회사 자산에 대해선 내부등급법을 적용했다"며 "현재 해당 조항이 일몰됐기 때문에 별도의 컨설팅을 거쳐 내부등급법으로 승인받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금융권에서는 우리은행이 표준등급법 적용을 받으면 위험가중 자산이 35~40%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BIS자본비율 하락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올해 상반기 말 기준 우리은행의 BIS 총자본비율은 15.26%지만, 신설 지주사가 표준등급법을 적용받게 되면 11% 내외 수준으로 감소할 수 있다.
최정욱 대신증권 연구원은 “우리은행은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의 자본비율 하락과 지배구조 우려를 극복해야 한다”면서 “올해 3분기 보통주자본비율은 11.33%로 직전 분기 대비 0.13%포인트 개선됐지만 지주사 전환 시 표준등급법 적용에 따라 8.4% 내외로 하락할 것으로 추정되는 점을 감안하면 우려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최 연구원은 또 “내년부터 가계부문 경기대응완충자본이 도입될 예정이기 때문에 8% 초중반의 비율은 우려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며 “대기업 여신을 축소하고, 또한 총대출성장률을 높게 가져가지 못하는 점도 위험가중자산 관리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진단했다.
결국 지주사 전환 이후에도 당분간 일정 규모 이상의 비은행 M&A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다. 이에 우리은행은 컨설팅을 기반으로 시범 운영 등을 거쳐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내부등급법을 승인받는다는 전략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내부등급법을 승인 받기 위해 사전적으로 준비하는 과정"이라며 "현재 내부적으로 전략 방향을 수립하고 있는 단계"라고 언급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그룹 통합 모형 등 승인 요건이 갖춰지면 이를 바탕으로 승인 심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승인신청을 한다고 해서 바로 내부등급법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통합된 그룹 차원의 모형을 마련하면 승인 심사 위원회 등을 통해 (리스크 우려 등을) 다각도로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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