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국내 5대 은행의 전세대출이 사상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어섰다. 전세대출은 올 들어 증가 추세를 이어갔지만, 특히 새 임대차보호법 시행 등의 영향으로 매물은 줄고 전셋값은 급등하면서 증가폭도 가팔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지난달 말 기준 전세대출 잔액은 101조6828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9월 잔액 99조1623억원보다 2.5%(2조5205조원) 증가하면서 100조원을 돌파했다. 올해 초(81조9157억원)와 비교하면 24.1%(19조7671조원)나 늘었다. 5대 은행 전세대출 잔액이 100조원을 넘어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전세대출은 올해 1월부터 10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전월 대비 증가폭도 역대 최대를 기록한 지난 2월(2조7034억원) 이후 다시 2조원대를 상회하는 모습이다. 5대 은행의 전세대출 월별 증가액은 2월을 정점으로 3월(2조2051억원)과 4월(2조135억원) 차츰 감소하면서 5월(1조4615억원), 6월(1조7363억원)에 2조원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다 7월(2조201억원)부터 8월(2조4천157억원), 9월(2조6911억원)로 증가폭을 다시 키웠다.
지난 7월 새 임대차보호법 시행 이후 전셋값이 상승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을 도입하면서 전세 매물은 급감했다. 국민은행이 발간한 월간 주택시장동향 자료를 보면 지난 10월 전국 전세수급지수는 191.1로 전월(187.0)보다 4.1포인트 상승했다. 전세수급지수는 0~200 내에서 100을 초과할수록 공급이 부족한 상황을 뜻한다. 지난 2015년 전세대란 당시 170~180대를 유지했던 점을 감안하면 전세 품귀현상이 그만큼 심화됐다는 의미다.
반면 전셋값은 지난 3개월 동안 큰 폭으로 올랐다. 국민은행의 부동산 리브온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5억3677만원으로, 관련 조사 이래 처음으로 5억원을 넘겼던 8월(5억1011만원) 대비 7.5%(3756만원) 상승했다. 2년 전인 지난 2018년 10월 4억6160만원과 비교하면 16.3%(7517만원) 뛰었다. 최근 3개월 간 전셋값 상승률이 직년 1년9개월 상승분과 맞먹는다.
결국 전세 거래가 늘면서 대출이 증가한 게 아니라 거래 절벽에도 전셋값 급등으로 전세대출이 크게 증가한 셈이다. 전세 보증금을 충당하기 위한 신용대출까지 포함하면 전세자금용 대출 수요는 보다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은행 관계자는 "고신용자들이 전세자금 마련을 위해 전세대출보다 금리도 낮고 신청도 더 간편한 신용대출을 이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이런 수요까지 감안하면 전세대출 규모는 더 커질 수 있고, 전세 보증금 증액 추세에 따라 당분간 전세대출은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세대출 수요는 늘고 있지만 은행권 대출 문턱이 높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실제 우리은행은 올해 말까지 조건부 전세대출 취급을 중단하기로 했다. 대출 실행일에 타은행 전세대출을 대환하거나 소유권 이전을 조건부로 하는 전세대출 등이 제한된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