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현 금융부 기자
지난 20여년간 유지돼 온 공인인증제도가 폐지됐지만 현장에서 별다른 혼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난 10일 전자서명법 개정안 시행으로 공인인증서의 독점적 지위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기존 공인인증서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공인인증서 명칭이 공동인증서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금융기관들은 전자금융거래 약관에 포함된 '공인인증서'와 '공인인증기관' 등의 표기에서 '공인' 문구를 삭제, 개정하느라 분주했다. 오랜 기간 사용된 탓에 약관뿐 아니라 각종 서류에 포함돼 있는 문구 수정작업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공인인증제도는 지난 1999년 전자상거래 활성화를 목적으로 전자서명법이 도입되면서 등장했다. 하지만 공인인증서의 호환성과 보안문제 등은 그동안 꾸준히 비판의 대상이 됐다. 천송이 코트 논란이 대표적인데, 당시 인기드라마였던 '별에서 온 그대'의 천송이(전지현)가 입었던 코트를 중국인들이 국내 공인인증서 때문에 구입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더구나 액티브 엑스(X)를 활용해 특정 플랫폼에서만 사용이 가능했고 외부 플러그인에 따른 보안성 문제도 불거졌다. 법으로 공인인증을 강제하면서 다양한 인증기술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당장은 혼란을 막기 위해 공인인증서 사용이 허용됐지만 다른 공공기관과 민간업체들이 내놓은 인증서들과 경쟁하며 점차 퇴출수순을 밟을 전망이다.
인증시장에는 이미 이동통신사를 포함한 네이버·카카오 등의 빅테크와 핀테크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하다. 금융지주들은 저마다 자체 인증방식을 선보이며 금융 계열사들과 함께 시장선점을 다투고 있다. 중소형 사설인증업체들도 다양한 인증서비스를 출시하며 인증서 각축전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디지털 금융환경에서 개별 인증서가 다양한 금융서비스들과 연계되면 이 같은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소비자 편익을 위해 인증서 경쟁이 촉진되는 점은 바람직하다. 당초 공인인증서를 도입한 전자서명법 취지를 살리고 공인인증제도를 폐지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무분별한 인증서 출시와 시장과열로 인한 위험과 불편은 짚어야 할 문제다. 특히 금융거래 안정성을 최우선 삼아 제도정비가 필요해 보인다. 아직까지 보안성 평가를 위한 업계 표준과 가이드라인은 미흡하다. 인증서로 인한 금융사고 시 불거질 책임 소재 등도 제도적 보완과제로 꼽힌다. 공인인증제도 폐지에 따른 부작용과 문제점을 면밀히 살펴봐야 할 시점이다.
안창현 금융부 기자 chah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