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선언한 '2050년 탄소중립' 목표는 지구를 온실처럼 둘러싸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이산화탄소, 메탄, 수소불화탄소, 육불화황, 아산화질소, 과불화탄소 등 온실가스를 최대한 줄이고 남은 온실가스는 산림·해양 등에서 흡수시켜 온실가스의 실질적인 배출량을 0(zero)으로 만드는 개념이다. 온실가스 배출량과 흡수량을 합산하여 0이 될 경우, 즉 순증량이 영이 되는 상태를 '순증영'(net-zero)이라고 부른다.
에너지전환은 탄소중립을 통하여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하여 전통적인 에너지원인 석탄과 원전 비중을 줄이고 친환경에너지원인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린다. 지난해 3월 정책브리핑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를 통하여 온실가스와 기후변화 등 지구의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17년 7.6%에서 2030년 20%로, 그리고 2040년 30~35%로 설정하였다.
한국판 뉴딜의 일환으로 발표된 '그린뉴딜'은 △도시·공간·생활 인프라 녹색 전환 △저탄소·분산형 에너지 확산 △녹색산업 혁신 생태계 구축 등 3대 분야를 망라한다. 재생에너지는 저탄소·분산형 에너지의 핵심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국무회의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규제에 이끌려 가기보다 능동적·적극적인 자세로 과감히 도전에 나설 필요가 있다"며 속도감 있는 추진을 강조하였다.
태양광 및 풍력 발전이 지열·수열 등을 물리치고 재생에너지 총아로 떠올랐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시설을 둘러싸고 '정부의 실패'를 본다. 자연혜택(생태계 서비스)을 지역공동체가 이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지 아니하고 시장에 주도권을 맡김으로써 입지를 둘러싼 환경갈등이 빚어지며, 은퇴자금을 털고 대출을 받아 월 1% 이하의 수익률을 보고 태양광발전 시설에 수억원씩 투자한 개미들이 곤경을 겪는다. 일각에서 "한국수력원자력이 송전선로를 연결해 주지 않아 태양광 전력 판매가 1년~2년씩 지체된다"고 말함은 시장상황을 감안하면, 온전한 진실이 아니다.
태양광 전력을 사주는 수요는 제한적인데, 공급이 폭증하자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현물가격이 폭락했다. 2017년에 11만원대였던 태양광 REC 평균거래가격(1MWh 기준)은 2020년 말 3만원대 중반까지 떨어졌다. 결과적으로 한 달 총수입이 2020년 말 현재 월 0.4%를 밑돈다. 설비교체에도 문제가 있다. 10년간 빚을 갚으면 땅과 설비가 남겠지만 수천만원 상당의 부품을 7년마다 교체하다 보면 감가상각비가 나오지 않는다.
소액 투자자측의 입장에도 문제가 있다. 타인자본(대출) 비중이 과도하다. 아울러 현실 시장은 불완전하며 수요공급의 법칙이 작동된다. 수익이 있으면 시장참가자는 늘고 수익률은 떨어진다. 공동체에서는 지역주민이 주역이지만 시장은 전문가를 요구한다. 그럼에도 수많은 소액 투자자들은 경제원론을 간과하고 건설업자의 말만 믿고 해당 공간이 생산하는 자연혜택의 조성에 조금도 기여하지 아니한 곳에 투자하면서 장기적인 비용투자분석에 소홀하다.
정부의 실패도 한 몫을 거든다. 지역주민들이 참여한다면 땅값을 줄이고 설비비를 대체하는 노력출자가 가능하며 일자리도 생긴다. 그럼에도 그린뉴딜을 서두르다 보니, 자연혜택의 이익공유(benefit sharing)에 눈길을 돌리지 못한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손쉽게 늘리고자 소규모 투자자들에 유리한 발전차액지원(FIT) 제도를 버리고 발전사업자들에게 공급량을 할당하는 공급의무화(RPS) 제도를 택했었다. 정부는 한시적으로 FIT를 복원했으나 RPS를 근간으로 한다.
그린뉴딜은 제레미 리프킨 교수의 말처럼, 불가피하지만 자연혜택의 이익을 공유한다는 관점에서 시장에만 맡기지 말고 제도와 시장 그리고 공동체가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전남 신안군은 2018년에 도시계획조례를 고쳐 "발전시설을 설치하려는 자는 해당 도서 주민들의 동의를 받거나 발전시설 사업에 필요한 자기자본의 30% 이상 군수와 주민들의 공동지분 참여가 있어야 한다"(제20조의2)고 정하였다.
생물다양성협약(CBD)등에서 강조하는 이익공유는 '공정과 공평'을 기반으로 삼는다. 공정(fairness)이 평등(equality)을 추구한다면, 공평(equity)은 다름을 인정하는 구체적 타당성을 지향한다. 이익공유 제도를 잘 운용하려면 주민과 지도자들의 창의력과 역량이 절실하다. 형평은 지식만으로 불가하고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 믿고 협동하는 역량", 즉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 축적되어야 실현이 가능하다.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doctorchu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