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상민 기자] 배우 염혜란은 2000년에 데뷔해 연극 무대에서 커리어를 차근차근 쌓아 올렸다. 그 결과 그는2019년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홍자영 역할로, 2020년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 추매혹 역할로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대중의 이러한 관심에도 염혜란은 독특한 장르보다는 작지만 의미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고 했다.
염혜란은 영화 ‘빛과 철’에서 2년 동안 의식불명인 남편을 간호하고 고등학생 딸을 키우면서 일도 하는 영남 역할을 연기했다. 염혜란은 처음 시나리오를 접하고 마치 고구마 줄기 같은 느낌을 받았단다. 그는 “너무 강렬했다. 사건을 따라가면서 이야기를 끄집어 냈더니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강렬한 내용들이 끌려 나왔다”고 밝혔다. 또한 “두 여성 캐릭터가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감독님을 만나봤는데 고민을 한 흔적이 너무 보여 믿음이 갔다”고 밝혔다.
자신이 연기한 영남이라는 인물에 대해 염혜란은 사는 게 급급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감정 표현을 못하는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남편의 교통사고를 계기로 마음이 다치고 벽이 생겨서 표현을 못하고 안으로만 삼키는 인물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극 중 등장하는 영남은 때로는 서늘한 표정으로 때로는 삶에 지쳐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표정을 보여준다. 이러한 모습 때문에 염혜란은 배종대 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단다.
염혜란은 그런 영남이기에 병원에서 다른 간병인들의 머리를 잘라주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마치 영남에게 숨구멍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태풍의 눈과 같은 느낌이었다. 태풍의 눈 안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눈을 벗어나면 너무 많은 바람이 휘몰아 친다”며 “영남은 그런 태풍의 눈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버티는 사람 같았다”고 설명했다. 염혜란은 감독과의 이야기를 통해 간병을 하는 이들이 항상 슬프거나 괴롭게만 그려내지 않기를 원했다. 그는 “그들 역시도 나름 즐겁게 삶을 살아간다. 감독님도 강인한 여성들을 많이 봤다고 했다”며 “결과적으로 많이 보여줄 수 없어서 아쉽다”고 했다.
빛과 철 염혜란. 사진/찬란
극 중 영남은 혼자 남편을 간호하다가 힘에 부치는 순간 의식이 없는 남편의 뺨을 때린다. 염혜란은 그런 영남의 행동에 대해 “1차적으로 삶이 힘들고 고단함이 폭발했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제발 좀 일어나서 뭐라고 말이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이 강했다”며 “남겨진 사람이 얼마나 힘이 든 지 폭발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염혜란은 “감독님은 그 장면에서 관객들이 이 여자가 가해자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다.
영화는 가해자 가족인 희주(김시은 분)과 피해자 가족인 영남이 어느 순간 상황이 바뀌어 버린다. 그러면서 누가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더구나 희주와 영남이 품고 있는 비밀로 인해 상황이 더욱 복잡해진다. 염혜란은 그런 영남을 연기함에 있어서 많은 고민을 했단다. 그는 “영남이 무언가를 감춘다고 생각하지 않고 끝까지 피해자의 부인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또한 영남이 희주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에 대해 “분명 영남은 희주를 알 고 있었을 것이다. 그냥 죄의식을 가지지 말고 삶을 살아냈으면 좋겠다는 좋은 의도로 다가갔을 것이다. 다른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극중 많은 감정을 주고 받았던 김시은과의 호흡에 대해 염혜란은 “되게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고 했다. 그는 “배우 대 배우로 교감이 일어날 때가 있다. 감히 이야기를 하지만 김시은의 영화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더불어 “처음 만났을 때 장면이 강렬했다. 칼날로 서로를 공격을 하는 느낌을 받았는데 영남으로서 의연하게 대처했지만 속으로 부들부들 떨었다”고 했다. 또한 박지후에 대해 나이와 다르게 성숙한 마스크에 눈길이 갔단다. 그는 “침착하고 집중력이 엄청나다. 잘하는 아역 배우 느낌보다는 함께 하는 동료 배우 느낌을 받았다”며 “여배우 세 명이 이끌어가는 이야기가 매력적이다”고 했다.
끝으로 염혜란은 소소한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세밀하고 작고 소중한 것을 좋아한다. 특별히 도전하고 싶은 장르보다 작지만 의미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또한 자신에게 변화가 생겼단다. 그는 “내가 가진 벽이 심했다. 다른 옷을 입어봐도 걱정했던 것보다 그 색이 잘 어울린다”며 “그러다 보니 다른 옷도 궁금해졌다. 이 옷도 입어 보고 싶은 변화가 생겼다”고 했다.
빛과 철 염혜란. 사진/찬란
신상민 기자 lmez081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