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힘을 부여해준다. 기술은 물질적인 힘을 만들어 낼 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하는 능력도 부여해준다. 인쇄술의 등장이 중세 종교 개혁으로 이어진 것은 바로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기술의 힘 덕분이었다. 총이 지배하던 사회가 선거제 민주제로 넘어가는 과정에선 미디어의 발전이 큰 역할을 했다. 총이 아니라 표를 움직이는 미디어가 권력이 된 셈이다
. 그리고 새로운 미디어
,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등장하면서 평형을 유지하던 힘의 관계에 계속해서 균열을 내고 있다
. 새로운 기술 인터넷의 등장은 새롭게 힘을 가진 세력의 등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
컴퓨터와 인터넷의 등장으로 시작된 3차 산업혁명은 정보혁명으로 불리며 미디어 환경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가장 큰 변화는 종이 매체(신문, 잡지)와 전파 매체(라디오, TV)와 같은 중앙집중화된 매스미디어만이 존재하던 미디어 환경에 새로운 진입자가 등장한 점이다. 특히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개인이 등장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기존의 중앙집중화된 미디어는 울타리가 쳐져 있고 문지기가 있는 미디어다. 문지기 역할을 자처한 언론인에 의해 통제되는 구조였다. 그러나 개인의 인터넷 미디어 참여가 확대되고, 소셜네트워크(SNS)의 여론 영향력이 증대되면서 미디어 환경이 중앙집중형에서 분산형으로 분화되고 있다. 중앙집중화된 미디어 환경에서는 엘리트가 대중 여론을 주도했는데,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네티즌의 여론 주도라는 새로운 현상이 등장했다.
2002년 대통령선거는 인터넷 여론이 선거에 영향을 미친 최초의 선거였다고 할 수 있다. 당시 보수적인 중·장년층은 상당수가 인터넷 이용이 서툰 상태에서 진보적인 성향의 젊은이들이 인터넷 여론을 장악할 수 있었다. 인터넷과 모바일은 진보성향을 보인 젊은 층에게 여론을 주도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해 주었다. 이후 인터넷은 보수와 진보, 장년과 청년들이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공론 또는 댓글 전쟁터가 됐다. 선거 때마다 댓글부대 운영으로 여론을 호도하는 위법이 반복됐다.
선거철이 다가오는 지금은 ‘댓글’ 동원이 더 이상 이슈가 되지 않고 있다. 젊은이에서부터 노년까지 유권자 대부분이 인터넷, SNS 이용자인 상황에서 댓글 동원은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까닭이다. 인터넷은 이제 물줄기를 바꿀 수 있는 강이 아닌,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바다가 됐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오히려 다른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인터넷이 다양한 의견을 접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바꾸거나 생각의 성숙도를 키우는 장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 생각에서 못 벗어나도록 보이지 않는 울타리 속에 가두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의 SNS 플랫폼 알고리즘은 이용자의 성향에 맞춰 정보를 큐레이션해 제공하게 되고, 이는 소비자들을 특정 성향의 정보 버블에 갇히게 하는 역효과를 발생시킨다. 이용자 맞춤형 정보는 자신의 목소리가 되돌아오는 에코 챔버 효과를 가져온다. 즉, 자신이 듣고, 보고 싶은 정보를 직접 찾거나 혹은 제공받으면서 모든 사람들이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플랫폼은 더 극단적, 음모적인 콘텐츠로 이끈다. 온라인 상에서 정치적 의견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는 것은 현실 세계의 정치적 갈등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온라인 플랫폼이 조장한 측면도 있다. 이용자의 관심을 끌어 광고 수익을 올리는 SNS 플랫폼은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방해하고, 공동체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에 위협적인 존재가 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 모바일이 보급되면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유럽 지역의 경우 모바일이 보급되면서 기존 정당, 정부에 대한 신뢰가 저하된 반면, 극우와 극좌적인 성향의 정당 지지도는 증가했다. 모바일 증가는 SNS 이용의 증가로 이어졌고, SNS는 정치적 성향의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다.
기술이 힘을 가져다 주었지만, 이제 그 힘이 우리 목을 조이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술의 위협을 알고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 기술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야 할 시대가 됐다. 반면 교사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보이지 않는 방에 갇힌 것이다. 기술의 노예에서 벗어나는 현명함이 개개인마다 요구되는 시대라는 점을 기억하자.
이명호 (재)여시재 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