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상민 기자] 창작의 영역은 ‘양날 검’이다. 그렇기에 상상력을 앞세우더라도 합리적인 선이 있다. 하지만 ‘조선구마사’ 상상력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어 대중의 포용력 범위를 넘어섰다. 퓨전 사극을 표방한 '조선구마사'는 단순한 역사 왜곡 문제를 넘어서 사극 드라마 시스템 전반의 재정비를 요구하게 만들었다.
SBS 월화 드라마 ‘조선구마사’는 인간의 욕망을 이용해 조선을 집어삼키려는 악령과 백성을 지키기 위해 이에 맞선 인간들의 혈투를 그린다. 북방 순찰을 돌던 태종이 인간 위에 군림하려는 기이한 존재와 맞닥뜨린단 상상력 위에 엑소시즘을 가미해 독창적 세계관을 구축했다.
하지만 첫 방송 이후 태종 등 실존인물의 왜곡된 묘사와 각종 중국풍 설정이 문제가 됐다. SBS 측은 “특별한 의도가 없었다”는 해명만 내놨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최근 중국의 문화 동북공정으로 인해 더욱 분노했다. 결국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방송 중단 요청 청원까지 등장했고, 제작 후원 및 광고 기업에 항의하는 전례 없는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이런 분위기에 광고 기업과 장소 협조 및 지원에 참여한 지자체가 ‘조선구마사’와 선긋기에 나섰다. 다시 한 번 제작사와 SBS 측은 사과와 해명으로 진화에 나섰다. 결방과 재정비를 선언했지만 분위기 진화에는 무리였다.
결국 SBS는 지난 26일 “이번 사태 심각성을 깊이 인식해 ‘조선구마사’ 방영권 구매 계약을 해지하고 방송 취소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조선구마사'는 국내 드라마 최초로 방송 2회 만에 방영 취소란 낙인이 찍혔다. 이번 결정으로 SBS와 제작사는 경제적 손실 및 편성 공백을 겪게 됐다. 제작사는 이미 ‘조선구마사’ 전체 분량 중 80% 가량 제작을 마쳤다. SBS는 ‘조선구마사’ 방영권료 대부분을 이미 선지급했다. 경제적 손실에도 불구하고 SBS는 지상파 방송사로서의 책임을 느끼며 방송 취소를 결정했다.
SBS의 사과와 방송 취소에도 시청자들 비난은 여전하다. SBS가 종합편성채널과 케이블채널이 아닌 지상파 방송사란 특수성 때문이다. ‘조선구마사’ 논란을 제작 단계와 방송 이전 단계에서 걸러내지 못한 책임을 면치 못하게 됐다. 더욱이 이번 사태는 어느 정도 예견된 방송 재난이란 지적도 있다. ‘조선구마사’를 쓴 박계옥 작가는 최근 종영한 드라마 ‘철인왕후’를 집필했다. ‘철인왕후’ 역시 역사왜곡 논란 질타를 받은 문제작이었다. 논란의 여지는 이미 충분했고, 사전모니터링 단계에서도 충분히 걸러낼 수 있었단 지적이다. ‘조선구마사’ 1회 방송 이후 논란 속에 2회 방송에 대한 재편집 과정도 충분히 가능했을 수 있단 게 시청자들의 지적이다. 결국 이번 사태 책임에서 결코 피할 수 없는 SBS에 대한 지상파 재허가 취소 청원까지 청와대 게시판에 등장했다.
하지만 드라마 제작 현장에 근무하는 일부 관계자들은 제작진과 SBS 측이 모니터링을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것일 수 있다’고 추측했다. ‘역사 왜곡’ 설정을 짚어줄 베테랑 제작진 부재가 현장에 극심하단 지적이다. 결국 논란 직전까지 ‘논란’ 자체를 몰랐을 가능성이 있단 주장이다. 특히 정통 사극 부재가 이번 ‘조선구마사’ 문제로 확대됐단 주장이 드라마 현장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 중견 드라마 제작진은 뉴스토마토와의 전화통화에서 “퓨전 사극은 사극 형태를 갖지만 그 안에 다양한 현대극 요소를 더해 젊은 시청자들 입맛에 맞춘 장르다”면서 “더구나 정통 사극 시청률이 하락을 하면서 그 자리를 시청률이 보장된 퓨전 사극이 차지했다. 공영방송사인 KBS 역시 2016년 ‘장영실’을 끝으로 정통 사극 제작을 멈췄다. 사실상 5년째 전통 사극 맥이 끊어진 상황이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런 분위기는 종합편성채널과 케이블채널이 선보이는 다양한 설정의 드라마 포맷과 맞물리면서 위기에 몰린 지상파 드라마의 허술함으로 이어졌다. 또 다른 제작진 역시 뉴스토마토와의 만남에서 “정통 사극이 중시하던 고증 중요성 보단 젊은 제작진 시각을 앞세운 분위기가 분명히 있다”면서 “역사 왜곡이란 현실도 상상력으로 포장이 된다. 결과적으로 이런 방식이 쌓이고 쌓이면서 극단적인 역사 왜곡 퓨전 사극이 탄생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드라마 현장 스태프들은 공통적으로 사극 드라마 제작 시스템 재정비가 필요하단 지적에 동의했다. 정통 사극을 이끌어온 베테랑 제작진 명맥이 유지 되지 않는다면 제2의, 제3의 ‘조선구마사’와 같은 일이 또 다시 발생할 수 있단 지적이 힘을 얻는 이유다.
조선구마사 역사 왜곡 논란. 사진/스튜디오플렉스, 크레이브웍스, 롯데컬처웍스
신상민 기자 lmez081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