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한님 기자] KBS가 숙의 민주주의 과정을 거쳐 수신료 인상안을 최종 결정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지난 1월 말 KBS이사회에 월 2500원 수신료를 3840원으로 인상하겠다는 안을 상정한 후 거센 반발에 부딪히자 국민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 정당성을 확보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임병걸 KBS 부사장이 28일 'TV 수신료 조정안을 위한 공청회'에서 발제하고 있다. 사진/유튜브 생중계 갈무리
임병걸 KBS 부사장은 2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아트홀에서 열린 'TV수신료 조정안을 위한 공청회'에서 "사회적 합의와 다양하고 충실한 사회적 소통의 결과물로 수신료 조정안을 도출하겠다"며 "다음 달 22~23일 숙의 민주주의적 공론화 과정을 거쳐 최종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KBS는 이를 위해 오는 5월 22일부터 이틀간 '온라인 숙의토론조사'를 마련한다. 온라인 숙의토론조사는 200명의 시민참여단을 통해 진행된다. 시민참여단은 한국리서치가 전국 성별·연령·지역 등 대표성을 가진 2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거쳐 선별될 예정이다. 온라인 숙의토론조사는 공론화위원회가 진행한다. KBS는 지난달 미디어 전문가 5명이 참여하는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한 바 있다.
KBS 임원들은 수신료 인상이 왜 필요한지 설명했다. 양승동 KBS 사장은 "지금이야말로 급격한 미디어 환경 변화에 맞는 KBS의 역할과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미래의 공영방송 모델을 찾아야 하는 시점이라고 판단했다"며 "어떤 의견이든 KBS가 제대로 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라는 격려와 채찍으로 여기고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겠다"고 전했다.
임 부사장도 "40년째 동결된 수신료는 영국의 8분의1 수준이고, 아프리카 국가들의 수신료와 비슷한 금액이다"며 "코로나 등 재난 위기와 미디어 상업화 시대에 국민의 안전과 생명, 공익적 가치를 보호하려면 수신료 현실화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TV 수신료 조정안을 위한 공청회. 사진/유튜브 생중계 갈무리
KBS는 시민의 목소리를 듣는 숙의토론조사에 앞서 이날 전문가 의견을 청취하는 'TV 수신료 조정안을 위한 공청회'를 열었다. 이날 공청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수신료 인상 필요성에 대해서는 큰 틀에서 공감했지만, 수신료 인상 방식이나 시기 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 겸 공익법센터 소장인 양홍석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는 왜 지금까지 수신료를 인상하지 못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 변호사는 "미디어 환경 변화는 10년, 15년 전에도 예상됐던 것인데 KBS는 왜 변화에 실패했는지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이 적절하다"며 "단순히 방송 제작비가 늘었다며 전체 금액을 뭉뚱그려 설명하면 상업 방송과의 경쟁에서 KBS가 뒤처진 책임을 마치 시청자와 국민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보일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양 변호사는 이어 "앞서 3번의 수신료 인상 시도가 있었는데, 과거에 실패한 방식을 2021년에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며 "2007년부터 세 차례나 설명이 부족해서, 설득이 안 돼서 수신료 인상에 대해 부정적 의견이 있었는데 너무 KBS의 시각에 갇혀 이 상황을 보는 것이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언론정보학회 총무이사인 박성우 우송대 교수도 수신료 논의를 정부나 국회와 같은 정치 세력이 아닌 '수신료 산정 위원회'를 중심으로 논쟁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박 교수는 "지금까지 수신료 인상은 '잘하면 올려줄게', '올려주면 잘할게' 같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소모적 논쟁의 반복이었다"며 "주류 정치 세력이 아닌 수신료 지불자, 사용자들만 참여하는 형태로 논의 구조가 변하는 것만으로도 수신료 인상의 조건으로 충분하다고 본다"고 제시했다.
이원 인천가톨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KBS가 구체적인 개혁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신료 인상안과 함께 KBS가 제시한 '공적책무 확대계획'에 변화를 어떻게 담을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중장기적이고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며 '공영방송 개혁안'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이 교수는 공영방송 개혁안의 예시로 '광고 축소'를 들었다. 그는 "산업차원에서도 수익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고 재원구조가 바뀌면 균형 잡을 수 있고, 공영 방송도 광고 없이 본연의 책무에 충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배한님 기자 bh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