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심을 따라 지푸라기라도 잡는 대통령선거 후보들의 공약은 바람처럼 떠돌고 신기루처럼 사라지기 쉽지만, 기대치가 생겨나고 또 당선 후에는 이행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유력 정치인들이나 이해당사자들의 환영을 받지 못할 수도 있겠으나, 훗날을 위하여 부화뇌동(附和雷同)이나 곡학아세(曲學阿世) 대신에 몇 가지 위험한 함정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
부동산 자산을 포기하고 가상자산 시장에 눈길을 돌린 2030 세대들을 겨냥한 정치인들과 그 소속 정당은, 아직 정식단계가 아니겠지만 "ⓐ전국민이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개발이익을 공유하는 시스템을 검토한다 ⓑ부동산 개발이익을 전국민에게 가상자산으로 지급하고 거래하게 한다 ⓒ국부 유출을 막기 위하여 전세계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가상자산과 이것이 유통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가상자산 투자수익에 대한 과세를 1년 유예하겠다"는 내용을 공약으로 발표하였다.
그러나 여기에는 우물가에서 숭늉을 구하는 성급함이 있다. ⓐ전국민이 블록체인으로 개발이익을 공유하려면 블록체인 기술을 쓰지 못하는 컴맹들은 낙오되거나 대행사기의 피해자가 된다. 가상자산 가격이 폭락하면 전국민이 공황에 빠진다. ⓑ전국민에게 부동산 개발이익을 나눠주려면 부동산 개발이익을 용인해야 한다. 전국민이 각각 자기계정을 운용해야 한다. 부동산 거품의 항상화는 인플레이션의 일상화를 초래한다. ⓒ가상자산은 이미 토대가 만들어져 전세계적으로 유통되고 있다. 블록체인의 채굴에 소요되는 시간과 전력 그리고 역량 차이를 고려한다면, 전국민화·전세계화는 불가능한 가설이다. ⓓ가상자산 투자수익에 대한 과세는 먼저 가상자산을 공인하여야 하고 또 투자자가 손실을 입을 경우 받은 세금을 되돌려주거나 정산하는 등의 상·하류 조치가 연동되어야 한다.
가상인물이 활동하는 메타버스에서는 가상자산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가상자산을 가치척도(화폐)로 공인할 경우 국가총생산(GDP) 산정과 예측 및 물가관리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유로화로 바꾼 변방의 일부 유럽연합(EU) 국가들이 자국의 실물경제를 잘 파악하지 못하여 거품을 이익으로 생각하고 분배에 바쁜 현상을 답습할 것이다. 지역화폐조차 거북스럽게 여기는 실물시장에는 가상자산으로 인한 무자료 거래가 넘칠 것이다.
가상자산은 각 계정(블록)들이 체인(분산형)을 이루어 운영되어 은행과 같은 중앙중개가 필요 없는 블록체인 시스템을 이용하지만, 전국민이 이를 부릴 역량을 구비하지 아니한 상태에서 분배와 과세를 논함은 무모하다. 블록체인을 부릴 줄 모르는 사람에게 가상자산은, 정부가 가상투자를 대행하지 않는 이상 이솝우화의 '신포도'가 될 수도 있다.
가상자산의 이익을 전국민이 공유하고 그 이익에 과세한다는 발상에 대하여 현상학적 논의를 넘어 심층적 난제를 논하자면, 정부(중앙은행)가 공인하지 아니한 가상자산은 아직 불법원인자산이다. 가상자산의 수수는 투기판이나 노름판에서 따거나 잃은 돈을 거래하는 것과 같다. 부동산 이익이라는 합법적 과실을 가상자산으로 공유함은 역시 '거품을 나눈다'는 측면에서 부적절하지만 그나마 적법한 자산을 불법원인급여로 만들고 이를 거래하는 셈이다.
가상자산을 분배하고 여기에 과세하려면 먼저 중앙은행(한국은행)이 가상자산을 법정화폐(지급과 결재수단)로 공인하여야 한다. 그러나 주식이나 외환 또는 선물과 달리 실물경제에 기반을 두지 아니한 가상자산은 투기수익 외에는 그 어느 곳에서도 정상적인 수익을 분배하거나 가치를 담보하지 아니한다. 화폐는 가치저장 수단이 될 수도 있는데, 가상자산은 불가능하다. 모험자본에 능한 큰 손들의 자산운용이나 조작으로 인한 피해나 손실은 고스란히 서투른 투자자의 몫으로 되돌아온다.
중앙은행이 가상자산을 법정화폐로 공인할 경우, 시중은행들이 가치등락을 이유로 가상자산에 대하여 원화와의 태환을 거부하거나 지체할 때에는 금융시장에 커다란 혼란이 생긴다. 이러한 가상은 중앙은행이나 시중은행의 책임이 아니겠지만 그 화살은 정책당국에게 돌아가고 금융시장에 대한 불신과 교란을 낳는다. 가상자산의 일반화는 실물경제의 불안정성을 증가시킨다. 여유자금이 많은 투자자나 투기 선수가 아니고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태에 직면한다.
나날이 절박한 청년들이 가상자산에 뛰어 든다고 하여 그들을 이러한 위험에 빠뜨림은 정의롭지 못하다. 자기책임에 기초한 기업가들이라면 가상자산을 부추길 수 있겠으나 국가경제를 책임지는 정치가들은 시중은행을 윽박지를 수단이 없다면 설익은 가상자산을 장려할 수 없다. 가상자산은 아직 갈 길이 멀고,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모험자산이다. 블록체인 기술이 화폐가치를 보장하지 아니한다.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doctorchu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