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을 비틀고 꼬집어 되도록 짜릿하게 가공하는 언론의 시각을 통해서 접하기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대통령 경선 후보들의 동정이 내게는 온통 모사와 시비로 느껴진다. 국정 최고 책임자가 되시겠다는 분들이 어쩌면 저렇게 폭로와 분칠, 상대방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일에 열을 올리시는가? 인식의 틀이 왜곡되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멋진 지도자상보다는 일그러진 초상들이 많다.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담대한 포부를 밝히는 지도자보다 무모한 대중영합자(포퓰리스트)이거나 '교묘한 회피'의 달인들이다. 평소 국정의 전당에서 선량들이 고성을 지르며 삿대질하는 모습이나 여야 정당간의 공방전에서 볼 수 있는 장면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이전투구가 대선가도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
모름지기 대통령 후보라면 서로 '도토리 키'를 잴 것이 아니라 국가를 경영하기에 족한 육도삼략을 펼쳐야 한다. 항간에 "누구는 어떻고 다른 누구는 어때서" 후보 자격이 있니 없니라고 시비하지만 전직이나 정치적 경험의 폭은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 청와대로 가는 길이 정해져 있지는 아니하다. 영화배우로 활동하다가 지사나 대통령이 되어 성공한 지도자들도 있지 아니한가. 남을 앞뒤로 조사하거나 호통만 치다가, 자선활동을 펼치다가, 또 아니면 기업가로 돈을 벌다가 대선가도에 뛰어들어도 좋을 것이다. 후보 자격은 경쟁자들이 아닌 유권자들이 가릴 일이다. 하릴없이 시비를 일삼을 것이 아니라 참신하고 설득력 있는 공약을 선보여야 한다.
풍전등화 앞에서 여야 지도자들과 국민이 합심하여 헤쳐나가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가치관에 따라 우선순위가 달라지겠으나, 치명적인 부동산 거품을 사그라들게 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외부세계와 고립된 아파트에서 나홀로 주거문화를 즐기는 1인가구의 행복지수가 다인가구의 그것보다 높아 주택 가수요를 부채질하고, 공급자의 이익을 우선하는 선분양제를 필두로 아파트 분양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시세차익은 부동산 세계의 부정의를 끊임없이 빚어낸다. 어떤 지도자들은 거시경제가 왜곡되어 있음에도 미시경제학의 수요·공급의 법칙에 얽매여 공급을 확대하여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는 신자유주의적 방향착오를 범한다. 부동산 대출규제 비율과 같은 금융장치를 통하여 부동산 값을 잡겠다는 접근은 코끼리 다리를 만지는 데 불과하다.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 위에 떠있어 실물자산의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기축 통화국들이 찍어내는 화폐는 교역국들로 넘어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 각국이 앞다투어 유지하는 적자재정 정책은 시중의 통화량을 넘치게 만들어 이자율 조작을 무색하게 만든다. 지도자라면 가만히 두어도 가격이 앙등할 수밖에 없는 시장구조와 역대 정부의 한계를 고백하면서 부동산 대책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 도심과 농산어촌의 재래주택들을 리모델링하고, 잘못 설계된 규제체계로 경직된 전세·월세 주택시장을 유연화시켜야 한다. "이익 있는 곳에 과세 있다"는 지극히 단순한 원리와 동떨어져 보유세와 거래세를 갈팡질팡하는 세제개선도 필수이다. 대통령 후보들은 공공 재개발과 재건축을 축소하되 공유지에 반값 주택을 짓고 종신 임대주택을 늘리자는 대안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나아가 국정 최고 책임자라면 남북문제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문재인 정부도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승하여 남북관계의 개선을 서둘렀으나 한국전쟁 후 UN군(미국군)·중국군·북한군이 당사국인 군사정전협정(1953년)에 여전히 기속되어 7.4남북공동성명(1972년)과 남북기본합의서(1991년)에도 불구하고 독자적 남북협력·통일행보가 불가하였다. 주변 강대국들의 지정학적, 군사적, 정치경제학적 전략과 남북 간 불신 등으로 말미암아 연평해전(2010년) 등 크고 작은 충돌이 지속되어 남북 긴장완화 및 교류확대에 걸림돌로 작용하였다. 북한은 주체사상의 영향을 받아 '선군사상'에 기반을 둔 핵개발을 지향함으로써 남북 화해와 상충되는 북미 갈등과 UN의 경제적 봉쇄에 당면하였다.
대통령 후보라면 이러한 질곡을 돌파하는 대안을 주창할 수 있다. 예컨대 군사정전협정을 전제로 하면서도 "남북 비핵화 합의를 필두로 남북 불가침협정을 체결하고 남북 군비축소 회담에 착수하자고 북측에 제안하겠다"는 공약을 내걸 수 있다. 훈련받은 병사가 쓸 만하면 제대하는 단기 징병제의 한계를 넘어 소수 정예화를 지향하는 모병제를 추진할 수도 있다. 민심은 조석으로 변한다. 지금의 높은 지지율에 안주할 일도 아니요 낮은 지지율에 낙담할 것도 아니다. 국면은 얼마든지 뒤집어질 수 있다. 지지율이 낮거나 아직 등판하지 아니한 인사들이 두각을 나타내 선두주자들과 각축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현 정부의 정책을 재탕함은 삼갈 일이다. 후보들이 빛나는 국정기량을 선보이면 언론은 당연히 옥석을 가려 보도할 것이다.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doctorchu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