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전세값이 집값을 웃도는 ‘깡통전세’가 판을 치면서 주거약자인 청년들이 보증금을 떼일 위기에 처해 있다.
28일 서울시청년주거상담센터에 따르면 깡통전세 보증금 관련 문의가 올 하반기 들어 상반기보다 두 배 이상 급증하고 있다.
깡통전세는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 전세난이 극심하면서 빌라나 오피스텔 등의 전세값이 집값에 육박하거나 오히려 더 비싼 주택을 말한다.
임대인의 경우 이미 기존 임차인의 전세 보증금으로 매매가격이 채워지기 때문에 싼 가격으로 주택을 매입 가능하지만, 집을 처분해도 보증금 마련이 어려워 임차인에 대한 보호가 허술해질 수밖에 없다.
주택도시보증공사에 따르면 악성 임대인의 보증금 미반환 사례는 올 8월 기준 2160건에 달하며, 피해액만도 4284억원이다. 이 중 2030 청년 임차인인 경우가 1459건으로 67.6%나 차지한다.
깡통전세 증가에 따른 보증금 피해를 가장 주거환경에 취약한 청년계층이 고스란히 떠안는 셈이다. 더욱이 최근엔 청년들이 목돈 마련을 위해 전세를 선호하는 상황을 악용해 악성 임대인들의 수법도 고도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표적인 게 계약 당일 임대인을 바꾸는 경우다. 이 경우 임차인은 기존 임대인과 전세 계약을 진행하지만, 전입신고 확정일자 당일에 해당 집을 새 임대인에게 판다. 임차인의 대항력은 전입신고 다음날 발생하고, 새 임대인의 권리는 당일 효력이 발생하는 임대차보호법의 맹점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A(29·여)씨는 작년 6월 관악구의 한 오피스텔을 대출까지 받아 전세로 계약했다. 이미 1년 반 가량 거주한 A씨는 최근에서야 잔금 치르고 입주한 당일 임대인이 바뀐 사실을 알았다. 불안한 A씨는 퇴거 의사를 밝히며 보증금 반환을 요구했지만, 돈 한 푼 안 들이고 매매한 새 임대인은 지금까지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깡통전세가 특히 많이 발생하는 신축건물의 경우 매매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건축업자가 임대인이 아닌 임차인부터 구하는 방법도 늘고 있다. 임차인은 실제 건물주가 아닌 건축업자와 전세계약을 체결하고, 확보한 보증금을 바탕으로 새 임대인은 거의 0원으로 집을 갖는 식이다.
지난 8월 B(31·남)씨는 강서구에 내달 완공되는 신축 빌라를 3억원 가까운 돈으로 전세 계약했다. 그런데 계약 당사자가 건물주도 관리인도 아닌 시공사였다. 시공사는 “임대인 곧 구할 거다”, “아무 문제 없다”고 B씨를 안심시켰지만, 당장 어떤 임대인이 올지도,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B씨는 입주를 앞두고 노심초사하고 있다.
서울시청년주거상담센터 관계자는 “어쩌다 임대인을 당일날 바꾸는 게 아니라 제도적 맹점을 고의로 이용한 것”이라며 “부동산 중개업소까지 나서서 ‘일단 계약하면 임대인을 구해주겠다’거나 ‘대출이자를 지원해주겠다’는 식으로 2030 청년들을 깡통전세에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도 청년들의 주거 안전망을 확보하고자 대책 마련에 나섰다. 서울시는 우선 청년들에게 보증보험료를 지원해 전월세 계약 과정에서 보증보험 가입을 유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보증보험 가입은 임차인을 보증금을 떼이는 상황에서 보상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적인 장치다.
서울시는 내년 무주택 청년 임차인 1000명에게 2억원 이하 주택의 보증금 반환 보증료를 지원한다. 보증료는 통상 보증금의 0.154~0.218%에 해당한다. 이는 서울시가 준비 중인 ‘2025 서울청년 종합계획’ 중 핵심사업 중 하나다. 주택도시보증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등 보증기관과도 협의해 실제 청년계층의 가입을 활성화해 사고 피해도 줄인다.
김철희 서울시 미래청년기획단장은 “청년들에게 전 재산과도 같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청년 전월세보증보험료 지원 사업을 기획했다”며, “전월세보증보험료 지원을 비롯해 청년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전세가가 매매가를 뛰어넘는 '깡통전세'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서울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앞을 한 여성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