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MZ세대’, ‘영끌’, ‘90년대생’ 등 정치권이나 미디어에서 2030 청년들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다. 이런 단어들을 접하다보면 주식·코인·부동산 등 재테크에 밝은 요즘 청년들은 이전 세대에는 없는 창의적 사고가 있을 것 같고, 야근·회식보단 ‘워라밸’을 중시하며 자신의 성장을 위해 언제든 훌쩍 떠날 이미지다.
그러나 <뉴스토마토>가 6일 만난 이한솔 국무총리실 청년정책조정위원회 민간위원은 “MZ세대, 90년대생이라고 청년들을 바라보는 시선이랑 실제 만나는 보통의 청년들은 차이가 있다. 우리의 청년담론은 너무 납작하다”라고 말했다.
‘납작하다’는 '단편적이다·풍부하지 않다·1차원적이다'라는 의미다. 이 위원은 “문화적 트렌드로는 일정 부분 공감할 수 있는데 정치·사회로 넘어와서까지 유용하다고 보기엔 애매하다”며 “10년 차이나는 M세대하고 Z세대하고도 엄청 다르며, 청소년기를 어떻게 보냈는가가 중요할텐데 바깥에서 이렇다 저렇다고 규정하니 당사자들은 황당한 얘기”라고 부연했다.
이어 “MZ세대니 영끌이니 90년대생이니 하는 것도 결국 청년 중 20%의 얘기”라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청년들은 영끌을 할 정도로 경제력을 갖지도 재테크에 신경쓸 겨를도 없는 처지다. 또 ’개인적인 90년대생’이란 시각도 사무직, 정규직에서나 가능하지 비정규직이나 계약직으로 있는 청년들은 갑을 관계에 놓여 위에 대들지도, 먼저 그만두지도 못한다.
이 위원은 청년담론을 얘기하며 20대 80의 개념을 가져왔다. 자가 소유가 가능한 청년과 그렇지 않은 청년의 비율, 서울에 사는 청년과 그렇지 않은 청년의 비율, 정규직 청년과 비정규직 청년 비율, 4년제 대학과 그렇지 않은 비율 모두 20%와 80% 언저리에서 갈린다.
이 위원은 “당시 대학교 친구들이 주거 문제를 같이 고민하다가 갑자기 부모한테 전세자금을 받아 전세집을 사는 걸 보고 괴리감을 느꼈다. 반면, 고교 친구들은 서울에 집을 산다는 건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영역인데, 미디어와 정치권은 청년들이 다 여기에만 관심있는 것처럼 비춘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들 20대 80이 각각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20에 속한 청년은 계속 다른 카테고리에서도 20을 차지한다. 한 번 80에 속한 청년은 80을 좀처럼 벗어나기 힘든 구조가 짜여 있다. 사회적 화두인 양극화와 불평등은 청년들에게 가장 가혹하게 적용된다.
20의 청년들에게 중대재해처벌법은 여의도에서 벌어지는 일 중 하나지만, 80의 청년들에게는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일 수 있다. 건설현장에서 사망한 한 청년의 유족은 이 위원에게 “아이 친구들아 농담처럼 ‘거기 가면 죽을 수도 있다’고 했지만, 모아놓은 것도 다른 갈 곳도 없는데 선택지 자체가 없었다. 사람이 죽으면 그제서야 관심을 가져주고 이야기가 나온다”고 하소연했다.
이 위원은 “청년정책은 청년은 20%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대표되는 것처럼 되면서 80%의 사람들이 삭제되는 느낌이 강하다”며 “80%에 대한 얘기라든지, 그들을 위한 정책과 담론이 더 풍부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한솔 국무총리실 청년정책조정위원회 민간위원이 6일 서울 중구의 한 골목길에서 청년담론에 대한 생각을 말하고 있다. 사진/박용준 기자
이 위원은 2010년 대학에 입학해 청년주거권단체 ‘민달팽이유니온’을 함께 만들었다. 두 살 터울의 형 덕분에 사회활동 참여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그리고 이 위원이 처한 현실의 청년주거 문제를 바꿔보자는 생각이었다. 초기 대학 연합동아리 성격이던 민달팽이유니온은 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나 청년 전체로 발을 넓힌다.
2016년 10월26일 방송계의 만행적인 노동착취 문제를 알라고 세상을 떠난 고 이한빛 PD는 이 위원의 하나뿐인 형이다. 이한빛 PD의 사망은 이 위원에게 많은 고민을 안겨줬다. 이 위원은 얼마 전 형의 5주기를 앞두고 형과 보통 청년들의 얘기를 담은 책 ‘허락되지 않은 내일’을 내놓았다.
이 위원은 “떠난 사람이 어떤 고민을 했고 어디서 좌절했고 어떤 일상을 바랐는지 이런 것들을 같이 구현해 나가는 게 형의 이름으로 그 사람을 잘 기억하고 잘 추모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며 “불평등의 현장을 조금씩 바꿔야겠다라는 것에 더 확신을 갖게 됐고 ‘제2의 이한빛을 만들지 말자’란 생각으로 제가 잘할 수 있는 청년, 주거, 노동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얘기했다.
MZ세대, 영끌, 90년대생말고 이 위원이 말하는 요즘 청년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이 위원의 설명에 따르면 불안과 불안정에 노출된 요즘 청년들은 자기의 일상이 존중받기를 되게 갈망하고 있다. 개인주의적인 부분을 지키면서도 나를 존중해주는 사람들과 연결돼 관계를 맺으면서 살고 싶다.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 현실도 청년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불안정한 근로환경과 낮은 수입 등으로 10년 뒤 20년 뒤가 안 그려지면서 청년들은 미래를 준비하거나 관계를 맺는 대신 오늘을 소비하기만을 강요받는다.
이 위원은 “내가 나를 먹고 살 만큼의 노동의 안정성과 임금과 같은 일터에서의 최소한의 조건이 보장받게 좀 사회가 나갈 필요는 있지 않나”라며 “부동산을 자가 소유하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사회주택을 더 많이 공급해 더 많은 청년들이 살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고 이한빛 PD의 동생인 이한솔 씨가 지난 1월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재정 촉구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