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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철로 위의 치킨게임
입력 : 2021-12-15 오전 6:00:00
‘철교의 교각은 모두 아홉 개였는데, 그들은 중앙 교각위에 서 있었다. 기차가 “때액~” 기적을 울리며 검은 괴물처럼 철교로 진입했다.’
 
소설 태백산맥 중 일부다. 소설 속 인물 염상구는 깡패 왕초인 땅벌과 기차가 달려오는 철교 위에 서서 오래 버티기 내기를 한다. 진 사람은 벌교를 떠나는 내기다. 염상구는 이 내기를 이겨 벌교의 깡패 왕초가 된다. 일명 치킨게임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서울시와 시의회가 평행선을 계속 달리면서 강 대 강으로 부딪히고 있다. 연일 독한 말들과 어구들이 서로를 향한다. 지나친 긴장감은 보는 이마저 피곤하게 한다. 며칠 코로나19 덕분에 시의회가 열리지 못한 상황이 오히려 다행이라 여겨질 정도다.
 
당초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4월 취임할 때만 해도 양 측은 협조적인 관계를 예고했다. 10년 전 껄끄러운 사이였던 양 측은 취임 당일 오 시장의 예방과 의장의 덕담으로 예전과는 다를 거란 기대를 안겼다. 오 시장도 조직개편과 추경을 앞두고 시의원들과 연이어 줄곧 조찬 회동을 가지며 관계 개선에 나서기도 했다.
 
이후 오 시장이 ‘서울시 바로 세우기’를 본격화하면서 양 측 사이는 조금씩 벌어졌다. 오 시장은 민주당 소속이던 전 시장의 주요 사업들에 대해 대립각을 세우며 감사를 진행했다. 시의회도 김현아 전 SH공사 사장 후보에 대한 부적격 판정으로 화답했다.
 
조직개편과 산하기관 인사가 전초전이었다면, 내년 예산은 하이라이트다. 무려 44조원에 달하는 예산에서 태양광, 사회주택, 노동, 마을재생, 주민자치, 청년공간, 주거복지, 사회적경제 등 전 시장 시절 핵심사업들은 삭감·축소·폐지 신세를 면치 못했다.
 
임기 초반만 해도 의회에 먼저 손을 내밀던 오 시장은 현재는 김현동 SH공사 사장을 임명 강행하며 강경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서울시 바로 세우기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시의회가 시민단체 편을 든다고 꼬집기도 했고, 시의회가 이들 사업을 지적했던 과거 발언목록을 공개하며 역공하기도 했다.
 
칼을 쥔 시의회는 예산 삭감분을 상당수준 복구하고 있다. 매일 시청과 시의회 앞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반영해, 적어도 폐지나 대폭 삭감 위기에 놓인 사업들이 명맥을 잇도록 해야 한다는 움직임이다. 여당이 다수인 시의회에서 역지사지로 서울런, 안심소득 등 공약사업을 흔들어야 한다는 강경파도 있다.
 
반대로 시의회 역할에 한계가 있을거란 여론도 있다. 새 시장을 맞은 서울시가 전체적인 기조를 잡고 편성한 예산을 시의회가 무작정 복구하는 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얘기다. 과거와 달리 야당 지지율이 낮지 않고, 오 시장이 높은 지지율로 당선된 상황에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심지어 양 측에서 선거에 대비한 보험용 카드도 마련한 거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서울시 측에선 서울런과 안심소득을 못하는 책임을, 시의원들은 1조5000억원의 소상공인·중기 손실보상금을 편성하지 않은 책임을 얘기한다.
 
준예산 얘기도 나온다. 지금처럼 1 아니면 0의 대립이 계속된다면 결국 내년 예산을 기한 내 편성하지 못하고 올해 예산을 ‘재활용’하는 초유의 사태다. 그야말로 강대강으로 치닫는 철로 위에 다가오는 기차다.
 
이 기차가 끝까지 다가온다면 결국 가장 큰 피해는 시민들이 입는다. 시장과 시의회의 관계는 승자 독식으로 누가 죽어야 끝나는게 아니라 서로가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어내는 과정이다. 강 대 강으로 싸우는 대신 서로가 서로를 설득하며 대화해야 한다.
 
서로 하나를 포기하고 하나를 얻어 어떤 결과에 도달한다면, 그 자체가 시장과 시의회의 진짜 동행이다. 괜히 철로 위에서 치킨게임할 때가 아니다.
 
박용준 공동체팀장
박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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