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헌법재판소가 영상물에 수록된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 진술을 증거로 인정할 수 있다는 법 조항을 위헌으로 판단한 것에 대해 수사와 재판 실무에서는 피해자 보호가 후퇴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법원 현대사회와 성범죄 연구회(회장 오경미 대법관)는 지난 10일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 영상녹화진술 관련 실무상 대책'이란 주제로 헌재가 선고한 결정의 파급 효과와 실무상 대책을 논의하는 긴급토론회를 개최했다.
오정희 서울고검 검사는 이날 토론회에서 "헌재가 수사 초기의 증거보전 절차를 심판 대상 조항의 주요 대안으로 제시했으나, 입증 계획 수립 전인 수사 초기 증거보전 절차를 시행하면 오히려 수사 진행 상황이 피의자에게 노출되어 증거인멸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본안 사건에서 피고인이 증거보전 절차에서 미처 행사하지 못한 방어권을 주장하면 재차 피해자 증인신문이 허가될 수 있으므로 피해자의 반복 진술 위험이 해소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상 결정으로 인해 미성년 피해자 보호에 후퇴가 발생했음을 수사기관과 법원에서 인식할 필요가 있다"며 "실무상 대책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기쁨 사법정책연구원 판사는 "대상 결정이 제시한 2차 피해 방지책이 현실적으로 충분하지 않고, 다수 의견이 미성년 피해자 진술의 진실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오선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회 소속 변호사는 "피고인의 반대신문권 보장과 미성년 피해자 보호를 조화시키기 위한 입법이 필요하다"며 "아동이 여러 기관을 돌아다니며 낯선 사람들 앞에서 피해 경험을 되풀이해 말할 필요가 없도록 하나의 기관에서 사법 절차 참여를 마칠 수 있도록 하는 '노르딕 모델'의 국내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헌재는 지난달 23일 성폭력처벌법 30조 6항 중 '1항에 따라 촬영한 영상물에 수록된 피해자의 진술은 공판준비기일 또는 공판기일에 조사 과정에 동석했던 신뢰 관계에 있는 사람 또는 진술 조력인의 진술에 의해 그 성립의 진정함이 인정된 경우에 증거로 할 수 있다' 부분 가운데 19세 미만 성폭력 범죄 피해자에 관한 부분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보장하면서도 미성년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조화적인 방법을 상정할 수 있음에도 영상물의 원진술자인 미성년 피해자에 대한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실질적으로 배제해 피고인의 방어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판단했다.
이번 헌재 결정과 관련해 법무부는 지난 5일 성폭력처벌법, 가정폭력처벌법, 스토킹처벌법 등 젠더 기반 폭력 범죄 관련 처벌법을 통칭한 젠더폭력처벌법 개정 특별분과위원회를 발족하고, 제1차 회의를 진행했다.
특위 1차 회의에서는 헌재의 결정 취지를 반영해 성폭력 범죄 피해 아동 보호와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성폭력처벌법 개정 방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외국 입법례로 재판 전 단계 전문조사관에 의한 반대신문 절차를 마련한 북유럽의 '노르딕 모델', 불출석 증인의 증거사용과 관련한 '유럽인권조약 제6조 지침' 등을 검토했으며, 특위 내 '성폭력처벌법 개정 소위'를 즉각 구성해 입법 개선 방안을 더 심도 있게 논의하기로 했다.
유남석 헌법재판소 소장과 재판관들이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자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