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세탁기에 대한 미국의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로 벌인 분쟁에서 우리나라가 승소한 가운데 국내 가전업계는 그동안 현지 생산으로 대응해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보면서도 잠재적 리스크가 해소됐다는 것에 기대를 걸고 있다.
9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세계무역기구(WTO)는 지난 8일 오후 5시(제네바 시간) 미국 세탁기 세이프가드 조치의 협정 합치 여부를 다툰 분쟁에서 우리 정부의 승소를 판정한 패널 보고서를 WTO 회원국에 회람했다.
미국 정부는 수입 세탁기로 피해를 보고 있다는 자국 업계의 주장을 받아들여 지난 2018년 2월부터 세탁기 세이프가드 조치를 발효했다. 이에 우리나라 정부는 같은 해 5월 WTO에 제소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10㎏ 이상 대형 가정용 세탁기 등 완제품에 대해 120만대, 캐비넷, 바스켓, 터브 등 부품에 대해 5만개의 할당 물량을 각각 설정한 후 이를 초과하면 50%의 관세를 부과하도록 하고, 3년간 매년 5%씩 관세를 낮췄다.
이러한 조치에 대응하기 위해
삼성전자(005930)는 2018년 1월부터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뉴베리에 있는 세탁기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LG전자(066570)도 애초 예정보다 6개월 앞당긴 2018년 12월부터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있는 세탁기 공장을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미국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있는 LG전자 세탁기 공장에서 직원들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사진/LG전자
두 업체는 차별화·고급화 전략을 내세워 현지 제조업체 월풀의 점유율을 앞서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트랙라인 등에 따르면 미국 세탁기 시장 점유율은 2020년 말 기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20%~21%, 월풀이 14%대를 차지했다.
이에 따라 이들 업체는 현지 생산 위주로 체계를 갖추고 있는 만큼 이번 WTO 결정으로 인한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시장 상황에 따라 현재보다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고, 앞으로 다른 제품에 대해서도 세이프가드가 남용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세이프가드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현지화를 많이 해 왔다"며 "이제 WTO에서 불공정한 무역이란 판단이 내려졌으므로 잠재적인 리스크를 해소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미 국내 기업들이 현지 생산 체제를 갖춘 후에 나온 조치여서 그동안 업계에서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판단해 왔다"며 "이번 불합치 판정은 한국의 위상을 제고하고, 세탁기 외에도 세이프가드 남용에 제동을 하는 의미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미국은 지난해 2월 세이프가드 조치를 연장해 올해 2월부터 내년 2월까지 완제품에 대해 120만대, 부품에 대해 13만개의 할당 물량을 넘기면 각각 30%의 관세를 부과한다.
만일 미국이 WTO 패널 판정 결과를 그대로 수용하면 분쟁은 종료되며, 상소하면 분쟁 상태가 계속된다. 상소할 시 약 15개월, 수용할 시에도 분쟁 해결 절차가 마무리되기까지 12개월 정도가 소요되므로 현 세이프가드 조치는 내년 2월까지는 유지된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