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시게, 봄이여. 어찌 이리 오시지 않으시는가. 어찌 그리 몸이 무거우신가. 임을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심경을 읊은 우리의 가사(歌辭) ‘수심가(愁心歌)’에 “우수 경칩에 대동강이 풀리더니 정든 님 말씀에 요 내 속 풀리누나.” 하는 대목도 있지 않은가. 어서 오시게. 봄이여. 봄이 쉬 오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유난히 봄을 허락하지 않는 2022년 임인년의 봄이여.
단지, 추운 날이 계속된다고 이런 원망을 풀어놓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봄이여, 그대는 알고 있으리라. ‘오미크론 대혼란’, ‘확진자 폭증 후폭풍’, ‘3월초 중환자 최대 2500명’과 같은 말들이 구슬픈 곡소리처럼 이 나라를 떠돌고 있지 않은가. 봄을 가로막고 있지 않은가. 아, 그리하여 지금은 사물이 사람에게, 사람이 사람에게, 계절이 사람에게, 계절이 계절에게, 우주가 우주에게, 올봄은 결코 쉽게 찾아오지 않겠다는 일방적 통보가 환청처럼 들려오는 시간. 그 우울한 경계를 건너가고 있다.
병술년 괴질 닥쳤구나 안팎 소실 삼십여 명이/ 함박 모두 병이 들어 사흘 만에 깨어나 보니/ 삼십 명 소슬 다 죽고서 살아난 이 몇 없다네./ 이 세상 천지간에 이런 일이 또 있는가./ 서방님 신체 틀어잡고 기절하여 엎드러져서/ 아조 죽을 줄 알았더니 게우 인사를 차리였네./ 애고 애고 어일거나 가이 없고 불쌍하다./ 서방님아 서방님아 아조 벌떡 일어나게./ 천유여리 타관객지 다만 내외 왔다가서/ 날만 하나 이 곳 두고 죽단 말이 웬 말인가.
지금의 경북 영주시 순흥 땅에 살던 어느 여인의 기구한 인생을 풀어놓은 조선 후기 때의 가사 '덴동어미 화전가'의 일부다. 창작 시기는 1910년경. 인용 글에서는 무엇보다 ‘병술년 괴질’이 닥쳐서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내용에 눈길이 간다. “이 세상 천지간에 이런 일이 또 있는가.”, “애고 애고 어일거나 가이 없고 불쌍하다.”에 이르면 슬픔이 극에 달한다. 코로나19를 겪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는 남다르게 읽히는 대목이다. ‘병술년 괴질’은 1886년 조선을 덮친 ‘콜레라’. 이 괴질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을 것이다. 물론, 이 ‘병술년 괴질’ 외에도 우리 조상들이 겪은 역병의 역사는 여러 기록과 작품에 등장한다.
한편, 역병 앞에서 한없이 나약하기만 했던 인간의 마음은 외국문학에서도 그려지는데, 영국의 소설가 겸 극작가였던 토머스 내시(Thomas Nashe, 1567-1601)의 「역병시대에 드리는 기도문」이 소환된다.
부유한 자여, 재물을 믿지 말라/ 금으로 건강을 살 수 없을지니,/ 의술은 색이 바래고/ 모든 것은 종말을 위해 만들어질 뿐/ 역병이 빠르게 지나간다/ 신이시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역병을 물리쳐달라는 기도는 참으로 간절하다.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는 그 절정의 문장이다. 역병 앞에 무너지는 인간의 나약함과 함께, 부유함도 의술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현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불변의 것으로 소통하고 있는지 모른다.
토머스 내시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셰익스피어(Shakespeare,1564- 1616)는 사실 전염병으로 자신의 전 생애가 괴로웠던 작가였다. 그가 살던 마을에 흑사병이 퍼져 마을 인구의 5분의 1이 사망하였지만, 신생아 셰익스피어는 다행스럽게도 그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잘 알려진 얘기. 그렇게 그는 살아남아 우리에게 많은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문학 작가나 작품을 통하여 지금의 우리는 무엇을 느껴야 할까. 역병을 극복하고, 삶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인간의 간절함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 옛날의 역병으로 인한 고통을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적잖은 위로가 되리라. 더불어 인간의 부족함이나 이기심으로 얼룩졌던 악습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것만으로도 그 몫은 충분하다.
전염병을 극복할 수 있는 보다 획기적인 의료 과학의 발달도 필요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역병의 발병이 인류 스스로의 이기심과 욕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교훈을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 자업자득의 결과물이라는 경고를 잊어서는 안 된다. 아, 봄이여, 이제 우리 인간 세계도 엄청난 대가를 치루고 있고, 뼈아픈 반성을 하고 있으니, 이제 그만 오시게, 봄이여, 아름답게 오시게.
오석륜 시인/인덕대학교 비즈니스일본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