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장윤서 기자] 민주당 서울지역 의원들이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강행한 송영길 전 대표 필패론을 다시 한 번 꺼내들면서, 당 지도부에 ‘새로운 인물을 검토해 달라’고 촉구했다. 광역단체장 후보 등록이 마감된 상황에서 이 같은 요청은 사실상 당 지도부에 전략공천을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 지도부 역시 ‘새 인물 필요성’에 대해 공감을 표해 제3의 카드가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다만 이 경우 송 전 대표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민주당 서울권 국회의원들을 포함한 서울 49개 당협위원장들은 11일 오전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비공개 회의를 가진 뒤 ‘6·1 지방선거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서울은 더 이상 민주당의 안정적 우세지역이 아니다”라며 “변화된 민심에 부응할 수 있는 인물과 정책을 통해 서울을 되찾아야 한다. 나아가 새로운 서울의 10년을 그릴 수 있는 후보를 통해 새로운 승리의 역사를 써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해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했다. 20대 대선에서도 서울을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에게 내줬다.
성명서 수위는 낮았으나 변화된 민심에 부응해 서울을 되찾을 새로운 인물과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이는 서울시장 출마를 공식화한 송 전 대표로에 대한 '불가론'이었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인천에서 5선의 국회의원과 인천시장까지 지낸 그가 서울로 지역을 옮기는 것에 대해 명분이 없다는 지적을 제기 중이다. 특히 20대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당대표 직에서 사퇴한 지 한 달도 안돼 지방선거에 출마한다는 자체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발이 강하다. 그럼에도 출마를 강행할 경우 서울시장은 물론 구청장과 광역의원 선거까지 참패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짙다.
게다가 대선과정에서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86(1980년대학번·1960년생) 그룹의 용퇴를 촉구, 이들과 척을 지게 됐으며 서울시장 출마를 전후해 이재명 상임고문의 지지를 받는다는 의심까지 더해지면서 계파 갈등 양상으로까지 비화됐다. 송 전 대표는 대선 경선에서 '이심송심'이라는 말까지 낳을 정도로 이재명 고문에게 우호적이었다는 게 타 후보 측의 공통된 시선이었다. 송 전 대표와 이 고문, 두 사람 모두 친문과는 거리가 먼 당내 대표적인 비주류 인사들이었다.
이날 열린 서울지역 의원들 간의 비공개 회의는 이런 위기의식을 담아 마련됐다. 비공개 회의에 참석한 한 중진 의원은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송 전 대표 출마에 대한 부정적 기류들이 많아서 지도부에 결단을 내려달라는 취지를 담아 성명서를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 전 대표의 ‘패배주의’ 발언도 도마 위에 올랐다. 송 전 대표는 지난 10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번 선거가 정말로 당선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냐”, "지금 오세훈 서울시장을 이기는 후보가 어디 있겠느냐" 등 서울시장 패배를 기정사실화하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또 “지금 그 책임(대선 패배)으로부터 자유로울 분들이 누가 있느냐”며 “다 공동선대위원장이 아닌가. 지금 당을 이끄는 분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어 “싸움을 회피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시골에 앉아 있는 것이 책임지는 것이냐. 아니면 누가 보더라도 질 것이라고 생각해 출마 선언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당을 위해 다시 한 번 희생하겠다는 자세로 나서는 것이 책임지는 것이냐”고 따졌다. 송 전 대표는 그러면서 “국회의장 도전 기회도 포기하고 현역 의원 임기 2년도 포기하고 당을 위해 싸워달라는 요청에 부응해 나오는 것이 오히려 당에 책임지는 자세”라고 자신의 헌신과 희생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재선의 한 의원은 “서울은 국민의힘과 붙어서 아슬아슬하게라도 승리해야 하는 중요한 지역이고, 서울을 이겨야 경기도도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 상황”이라며 “그런데 공당의 당대표를 지낸 사람이 ‘어차피 필패한다’고 하면 어떻게 하나. 간절함이 부족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당내에서는 새로운 인물에 대한 요구가 있는 상황”이라며 “당 지도부도 새 인물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어 전략공천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고 했다.
송영길 민주당 전 대표가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서울시장 출마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들은 성명서에서 “지금까지 여섯 분이 서울시장 후보 공모에 신청했지만 대선 패배와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하기 위해서는 더욱 풍부한 후보군이 필요하다”며 “서울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참신하고 파격적인 새 얼굴 발굴 등 민주당의 모든 자산과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서울시당은 비상대책위원회와 공천관리위원회에 요청한다”며 “민주당의 변화와 쇄신, 정치개혁이라는 국민적 열망에 부합하는 가장 경쟁력 있는 서울시장 후보가 선출될 수 있도록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해달라”고 촉구했다.
민주당 공관위는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광역단체장 후보 등록을 마친 결과, 송 전 대표를 비롯해 박주민 의원, 정봉주·김진애 전 의원, 김송일 전 전남행정부지사, 김주영 변호사 등이 서울시장 후보로 등록했다고 했다. 후보 등록을 마친 상황에서 ‘새 인물’을 등판시키기 위해서는 당 지도부가 전략공천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당 지도부도 긍정적 신호를 보냈다.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서울은 새로운 후보를 더 찾아야 하고, 비대위가 더 적극적으로 경쟁력 있는 의원들의 출마를 설득해야 한다”며 ‘새 인물론’에 힘을 보탰다. 조오섭 대변인도 “박 위원장 발언을 보면 ‘새로운 인물을 찾아야 한다’는 취지라, 전략공천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라며 “조만간 이 논쟁이 정리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문제는 대안으로 내세울 참신한 ‘새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재선 의원은 “정치는 고도의 훈련이 필요한 영역인데 트레이닝도 받지 않은 청년을 ‘참신함’을 이유로 전략공천한다는 것은 반대한다”며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만 하더라도 젊지만, 구시대적 혐오의 정치를 하고 있지 않냐”고 토로했다.
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