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처음으로 직접 기소한 일명 ‘스폰서 검사’로 알려진 김형준 전 부장검사가 첫 공판에서 “검수완박, 검찰개혁 이슈로 삼기 위한 정치적 의도로 (기소가) 이뤄졌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 김상일 부장판사는 22일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김 전 부장검사와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된 검사 출신 박모 변호사의 첫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직접 발언권을 얻은 김 전 부장검사는 “2016년부터 6년여 가까운 시간 동안 정말 어두운 암흑 속에서 고통과 회한의 시간을 보냈다”면서 “20여 년 간의 직업, 명예 등 모든 사회적 관계를 내려놓고 시간을 갖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검찰에서 이미 모든 혐의가 없다고 한 판단된 내용에 대해 앞에 계신 공수처 검사님들이 아시겠지만, (공수처가) 오히려 그 부분을 기소했다는 것이 굉장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며 공수처의 수사 과정과 기소 판단을 정면 비판했다.
함께 기소된 박 변호사도 발언권을 얻어 “이 사건은 제가 법조인으로 살면서 정말 어처구니없는 사건”이라며 “이미 검찰 수사에 의해 ‘사실무근’임이 밝혀졌는데 어떤 사기꾼(고교동찬 스폰서 김모씨)이 주장한 것을 진실로 둔갑시키려고 공수처가 기소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검찰에서 특별수사팀을 만들어 가혹하리만치 수사를 했는데도 김씨(스폰서)가 뇌물을 줬다고 한 것들이 다 무죄가 났다”며 “만약 이 사건이 정말 입증 가능하고, 죄가 되는 것이었다면 그 당시 그렇게 무죄 날 리 만무하다”고 설명했다.
또 “공수처는 제 카드내역만 보고 김 전 부장검사와 (술을) 마신 게 아니냐, 뇌물이 아니겠느냐는 추측에서 기소했는데 그 외엔 아무런 증거가 없다”며 “카드내역만으로 범죄사실을 입증할 수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이어 “공수처는 진짜 아마추어”라며 “증거법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과거 카드내역만 가지고 에둘러 기소한다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일갈했다.
김 전 부장검사 측 변호인도 공수처 수사에서 박 변호사가 결제한 카드내역 외에 뇌물수수 및 공여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그는 “2016년 3월과 4월경 카드결제 내역이 확인되는 것은 맞지만, 함께 마신 술값이 얼마인지 특정되지도 않았다”면서 “당시 김 전 부장검사는 외부로 파견을 나갔었다”고 강조했다. 외부 근무를 하던 때 이뤄진 술자리라는 점에서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 관계성이 없어 애초에 뇌물수수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김 전 부장검사는 재판 직후 입장문을 내고 “제가 퇴직하고 무려 6년이 지난 후에 (공수처는) 공소사실을 입증할 아무런 추가적 증거가 없음에도 형식적으로 재탕수사해 억지로 기소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공수처는 올해 2월 28일 공소심의위원회를 개최했는데 피고인이나 변호인을 참여시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어떤 절차나 자료에 기초해 회의가 진행됐는지 알지 못해 절차적인 참여권과 방어권을 보장받지 못했다”며 “공수처 내부 수사검사들 반대 의견에도 공소심의위 권고를 앞세워 대선 직후인 지난 3월11일 무리한 기소 결정을 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김 전 부장검사는 2015년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 단장 시절 옛 검찰 동료였던 박 변호사의 자본시장법 위반 사건이 합수단에 배당되자 사건 처리와 관련해 총 1093만5000원 상당의 뇌물·향응 접대를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대검찰청으로부터 박 변호사 사건을 배당받은 김 전 부장검사는 인사이동 직전인 2016년 1월 소속 검사로 하여금 박 변호사를 조사하도록 지시하고 인사이동 직후 자신의 스폰서로 알려진 고교동창 김모씨 횡령 등 사건을 박 변호사에게 부탁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 변호사는 당시 자신의 자본시장법 위반 사건(미공개정보 이용 혐의)에서 2017년 4월 ‘혐의 없음’ 처분을 받았다.
이후 대검찰청은 2016년 10월 김 전 부장검사를 스폰서 김씨로부터 금품·향응을 제공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했지만 당시 박 변호사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혐의는 금품의 대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그런데 스폰서 김씨가 2019년 11월 박 변호사 관련 뇌물 의혹 고발장을 경찰에 제출하며 수사가 재개되며 공수처가 이 사건을 맡게 됐다.
김 전 부장검사는 2016년 11월 단행된 인사이동으로 자신이 자리를 옮긴 뒤인 2017년 4월 박 변호사 사건이 수사 종결됐기 때문에 '직무관련성'과 '대가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공수처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직무’에는 과거 담당했던 직무나 장래 담당할 직무도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직무 관련성’은 공무원이 금전을 수수하는 것으로 인해 사회 일반으로부터 직무 집행의 공정성을 의심받게 되는지 여부도 판단 기준이 되고, ‘직무’는 법령에 정해진 직무뿐만 아니라 과거 담당했던 직무나 장래 담당할 직무도 포함된다.
다만 공수처는 김 전 부장검사와 박 변호사 사이에 3차례에 걸쳐 4500만원이 오간 정황에 대해선 피고인들의 관계와 돈을 융통한 동기, 변제 및 변제 시점 등을 고려해 뇌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 이 부분 불기소 처분했다.
이번 사건은 공수처 직접기소 첫 사례인 만큼 재판부가 김 전 부장검사 혐의를 유죄로 인정할지 주목된다. 김 전 부장검사에 대한 다음 공판은 6월 8일 열릴 예정이다.
뇌물수수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서 '1호'로 기소된 김형준 전 부장검사가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1심 첫 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빠져 나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