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공소사실 중 외국환거래법위반 부분에 대한 공소제기는 검사가 공소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한 것으로서 이로 인해 피고인이 실질적인 불이익을 받았음이 명백하므로 소추재량권을 현저히 일탈한 경우에 해당한다.”
지난해 10월14일 이른바 '서울시청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한 검찰의 보복기소 사건에서 대법원이 판결문에 적시한 내용이다. 대법원의 ‘검찰 공소권 남용’ 판결이 확정됐지만 그로부터 6개월여가 지나도록 검찰의 사과는 없었다. 이 사건의 발단이 됐던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담당 검사였던 이시원 변호사는 윤석열 대통령실 직원들의 기강을 감독하는 공직기강비서관으로 발탁됐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은 2013년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몰아 기소한 사건이다.
대법원 판결문 등에서 확인된 사실을 종합하면, 당시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가진 모든 권한은 유씨를 간첩으로 조작하는 데 동원됐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검찰의 증거 조작 등이 드러나며 유씨는 무죄를 확정 받았다. 2014년 항소심 무죄 판결 직후 검찰은 이른바 ‘캐비넷 사건’을 끄집어내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를 적용, 유씨를 법정에 다시 세웠다. 이 사건 역시 법원은 검찰의 공소권 남용을 지적하며 공소를 기각했다.
"목적 위해서라면 수단방법 안 가리던 검사"
지난 9일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유우성씨를 만나 윤석열 통령실 비서관 인선의 의미 등을 들어봤다. (사진=박효선 기자)
“어떻게 그 죄를 짓고도 중책을 맡을 수가 있죠. 대통령에게 묻고 싶어요. 이것이 후보 시절 말씀하신 공정과 상식에 맞는 것인지.”
10여년 전 서울시 공무원이던 자신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한 이 전 검사를 새 정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발탁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유씨는 이렇게 묻고 싶다고 했다. 그의 동생 유가려씨는 과거 자신에게 거짓 진술을 회유했던 이 전 검사의 공직기강비서관 임명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유씨는 “훌륭하고 좋은 검사도 많기 때문에 (대통령실을) 검사들로 채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공직기강을 바로잡는 중책에 그런 사람을 맡긴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심경을 밝혔다.
윤 대통령 비서실 비서관급 1차 인선에는 검찰 출신들이 전진 배치 됐다. 공직기강비서관에 지명된 이시원 전 검사를 비롯해 법률비서관에는 주진우 전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장이, 총무비서관에는 윤재순 전 대검 운영지원과장이 낙점됐다.
그는 “국민이 아닌 조직의 이익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거짓말에 증거 조작까지 서슴지 않던 자에게 중책을 맡긴 이번 대통령실 인선이 후배검사나 공직기관에 어떤 메시지를 주겠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유씨 남매에게 이 전 검사는 무서운 사람으로 기억된다. 유씨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검사, 중국에서 찍은 제 사진을 북한에서 찍었다고 거짓 주장하고 제 알리바이를 증명할 수 있던 통화기록, 증인 진술 등을 모두 누락하며 검사로서 하지 말아야 할 행위를 서슴지 않던 사람”이라고 했다.
유씨 설명에 따르면 동생 가려씨는 2012년 11월부터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 수용돼 6개월간 감금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처음으로 만난 검사가 이 전 검사였다. 당시 가려씨는 적어도 검찰은 국정원과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희망을 가진 가려씨는 이 전 검사에게 “오빠는 간첩이 아니다”며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이 같은 가려씨의 진술을 듣던 이 전 검사는 돌연 얼굴을 바꿔 그 자리에 있던 수사관을 지명하며 ‘나가라’고 지시했다. 수사관이 취조실을 나가자 이 전 검사는 가려씨에게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우리는 너희 가족을 도와줄 수 없다”며 기존 거짓 진술을 계속하도록 회유했다는 게 가려씨의 10년 전 기억이다.
또 재판 단계에서 검찰은 유씨가 중국에서 찍은 사진을 ‘북한에서 찍은 사진’이라며 법원에 냈고, 위조된 중국·북한 출입경(출입국) 기록도 함께 제출했다.
이 전 검사가 3년여 간 수사·기소를 모두 지휘한 이 사건은 2015년 10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이 내려졌다. 이로써 유씨는 ‘간첩’이란 누명을 완전히 벗었다.
하지만 고통은 계속됐다. 무죄 확정 판결에 앞서 2014년 4월 항소심 재판부가 유씨의 간첩혐의에 대해 무죄라고 선고하자 그로부터 2주 만에 검찰이 유씨를 추가 기소했기 때문이다. 이미 4년 전(2010년) 기소유예 처분한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를 들춰내 유씨를 또 다시 법정에 세운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검찰이 유씨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가 뒤늦게 다시 기소한 것에 대해 공소권 남용이라고 지적하며 검찰의 공소를 기각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검찰 공소기각 확정 후 유씨는 9년여 만에 피고인 신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이후 유씨는 2014년 5월 자신을 재판에 넘긴 안동완 서울동부지검 형사1부장(당시 서울중앙지검 검사), 사건을 지휘한 이두봉 인천지검장, 김수남 전 검찰총장, 신유철 전 서울서부지검 검사장 등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공수처에 고소했다.
유씨는 공수처 수사에 큰 기대를 걸지는 못한다고 했다. 유씨는 “이전(2019년)에도 이시원 전 검사와 이문성 전 검사(‘간첩조작 사건’ 담당검사)를 고소했었다”며 “하지만 검찰은 제대로된 수사도 하지 않고, 시간만 끌다가 언론의 관심이 사그라질 때쯤 공소시효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 슬그머니 이들을 모두 불기소 처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차고 넘치는 증거를 냈는데도 검찰은 이들 불기소 처분 이유로 증거 불충분이라고 했다. 제 식구 감싸는데 급급한 검찰의 그 같은 결론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며 “그 사건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서 (이시원, 이문성 전 검사에 대해) 고소·고발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보복기소’ 사건 공소기각 확정 후 유씨가 담당 검사 및 지휘라인 검사들에 대한 고소장을 검찰이 아닌 공수처에 낸 이유다.
유씨는 “솔직히 공수처에서도 제대로 된 수사를 할 수 있지 의문”이라며 “아무래도 공수처 검사들도 검찰 출신들로 구성돼 있고, 특히나 이두봉 지검장의 경우 대통령 측근으로 꼽히다 보니 (공수처 역시) 또 불기소 처분으로 결론을 낼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작년 고소 이후 6개월이 다 되도록 공수처에서 연락 한번 오지 않았고, 애초에 수사 의지가 있었다면 그간 이 사건을 묵히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이 사건 역시 공소시효가 임박한 상황이라 (공수처에서도) 불기소 처분이 나면 다시는 (잘못된 수사·기소를 한 검사들에 대해) 고소·고발조차 할 수 없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법원 판례는 남았지만 검찰에 이어 (공수처에서도) 불기소 처분을 한다면 또 다시 오명이 남게 될 것”이라며 “나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제대로 된 조사와 처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씨는 오는 17일 공수처에 참고인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지난 9일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유우성씨를 만나 윤석열 통령실 비서관 인선의 의미 등을 들어봤다. (사진=박효선 기자)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