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 지방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박지현 비대위원장은 지방선거에서 청년·여성을 30% 이상 공천하겠다는 원칙을 천명했다. 반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공직후보자 기초자격평가를 도입해 특정계층 할당 없이 능력주의대로 공천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그리고 두 달 후인 지금, 각 당의 지방선거 출마자 중에서 여성·청년은 찾기 힘들다. 민주당은 여성·청년을 배려하고, 국힘당은 배려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거대 양당이라 불리는 두 당의 공천 스코어는 거의 대동소이하다.
서울지역 시의원 출마자 명부를 열어보니 민주당은 98명의 후보 중 2030세대에서 단 9명이 출마했다. 국힘당의 101명 중 13명보다도 오히려 적은 수치다. 할당에 관심없는 이 대표나 시의회에 애먹었던 오 시장이 민주당보다 더 배려했을리는 만무하다. 앞서 박 위원장도 광역의원의 여성·청년 공천을 강조했다.
민주당의 17개 광역단체장 후보 중 여성은 험지에 나간 임미애 경북지사 후보 1명뿐이다. 국힘당은 그래도 경기·전북 2명이다. 사상 첫 여성 광역단체장의 타이틀은 현재까진 국힘당에서 가져갈 확률이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나마 청년 광역단체장 후보는 민주당이 험지인 대구에 1명, 국힘당은 0명이다.
전국 기초단체장으로 범위를 넓혀도 민주당은 13명, 국힘당은 10명만이 여성이다. 여성 청년은 단 한 명도 없다. 각 당에서 전국에 200여명의 기초단체장 후보자를 낸 것을 감안하면 5% 안팎에 불과하다. 모자란 %를 광역·기초의원에서 메워도 부족해 결국 박 위원장이 지난 11일 선대위 출범식에 앞서 사과부터 했다.
청년과 여성이 사라진 자리는 한국사회의 기득권이라 할 수 있는 5060, 그 중에서도 50대 남성(오대남)이 견고하게 차지하고 있다. 광역단체장 후보들의 평균 나이는 민주당 59.6세, 국민의힘 63세다. 광역의원 출마자 1543명 연령대 중 50대가 692명으로 가장 많고, 60대, 40대가 뒤를 잇는다. 기초의원도 50대, 60대, 40대 순이다.
50대 남성은 가장 경력이 화려하고 사회적 에너지도 충만할 시기다. 기득권의 계단을 착실히 밟은 게 잘못은 아니지만, 50대 남성만 모여 세상의 룰을 정하기엔 세상이 달라졌을 뿐이다. 지역·직업·계층별 대표자들이 모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논의하는 게 정치라면, 50대 남성은 한국사회를 과대대표하고 있다.
출산률이 감소하고, 일자리는 부족한데다 집값까지 뛰는 상황에서 능력과 인맥을 모두 갖춘 50대 남성들이 청년문제에 대해 어떤 사회적 대안을 제시했는가. 여성의 권익 신장 혹은 젠더이슈가 사회적 갈등으로 치닫는데 방관하거나 더 악화시키지는 않았나. 50대 남성만 모여 논의하는 정치환경이 정말 최선일까.
민주당이 진정으로 사과하고 여성·청년 30%를 차후에라도 지킬 생각이 있다면 당헌·당규부터 바꿔야 한다. 민주당 당헌에 30% 청년 공천은 권고조항이지 의무조항이 아니다. 민주당 당헌·당규 상에 청년 기준은 34세도, 39세도 아닌 45세다. 여성 공천 비율 30%는 당헌에 의무규정이지만, 지방선거엔 적용되지 않는다.
인권위는 얼마 전 여성의 과소대표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며 특정 성별이 60%를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정 계층·지역·직업·성별·나이의 사람들만 정치를 하는 일은 줄여야 한다. 최소한 여성이라는 성별이 정치를 하는 데에 걸림돌이 되지 않게, 그래야 장애인도, 이주노동자도, 다문화가족도 더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전달될 수 있다.
왜 떳떳하게 ‘정치가 밥 먹여준다’라고 말하지 못할까. 왜 광역·기초의원들은 해외로 놀러가고 동네 욕 먹이는 사람이 될까. 이는 실제 유권자들 생활에 끼치는 영향력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유권자들의 삶을 바꾸는 정치를 하려면, 더 다양한 정치인이 등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