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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6.1 지방선거 이후의 협치
입력 : 2022-06-03 오전 6:00:00
투표율로 보면 이번 지방선거는 대통령선거보다 관심도가 떨어졌지만 경기지사 선거나 안산시장 선거에서처럼 야구를 보는 것과 같은 상황들이 전개되어 많은 사람들은 밤잠을 설쳤을 것이다. 대선도 끝났고 이제 지방선거도 끝났으니 차기 총선을 향한 경주가 시작될 전망이다. 국회만을 기준으로 보면 여소야대 정국이겠으나 대통령과 지방자치단체장을 기준으로 보면 여대야소 정국이다. 이러한 권력의 교차는 향후 정국에서 고도의 협치 역량이 발휘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그러나 정작 협치에 관해서는 오해와 왜곡이 많다.
 
그리스 시대에 개념이 싹텄던 협치(governance)는 ‘조종하다’(steer)는 뜻을 담고 있었으나 다른 형이상학적 개념들처럼 오랜 세월 지속적으로 발달하지 아니하였다.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그 유례를 찾자면, 신라시대 부족 간의 화백 제도나 고려 태조 왕건과 지방세력들과의 치세가 협치에 해당한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협치는 1990년대 이후 국제사회에서 비롯되었다. 1992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환경 및 개발에 관한 UN회의’(UNCED)에 참가한 각국 정상들은 1987년 안출된 브룬트란트의 ‘지속가능발전’이라는 개념을 기반으로 지구헌장(리우선언), 환경보전행동계획(의제21), 기후변화협약 및 생물다양성협약을 성사시켜 놓고 환호하였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미래세대의 수요를 해치지 아니하면서 현재세대의 수요를 충족시킨다”는 지속가능발전 개념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만큼이나 어렵다. UN이 2016년부터 추진한 지속가능발전 목표는 “뜻을 같이 하거나 달리 하는” 모든 행위주체 내지 이해당사자들의 협치가 없이는 달성이 불가능하다. 국제기구들은 새천년발전 목표 및 지속가능발전 목표를 전후하여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에서 인식증진과 역량강화라는 경로를 통하여 협치정신과 요령을 전파시켰다. 녹색금융의 영향으로 최근에 기업들이 전념하는 ESG의 마지막 약어(G)는 바로 협치를 뜻한다. 그러나 기업들은 이를 협치가 아닌 ‘지배구조’로 새겨 그 의미를 축소·왜곡시킨다.
 
협치란 행정에서 즐겨 썼던 ‘참여적 의사결정’을 포함하지만, 결코 이에 국한되지 아니한다. 참여적 의사결정은 행정기관이 펼쳐놓은 마당에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여 의견을 개진하지만 결정은 행정기관이 내리고 책임도 행정기관이 진다. 모든 참여자들이 사전에 마련된 준칙과 시나리오에 따라 역할을 분담하고 이를 이행할 책임을 분담하지 아니하면 진정한 협치가 아니다. 협치란 미리 쓰여진 대본에 따라 감독과 배우들이 합심하여 무대 위에서 연출하는 연극과 같다. 음악으로 치자면 오케스트라와 같다. 서로 다른 음색을 가진 악기와 연주자들이 모여 화음을 이루는 기제가 협치이다. 정치나 공공영역에서의 협치는 원탁회의(round table)에서 이뤄지는 합의와 이행을 전제로 한다.
 
중앙이나 지방의 권력자나 지도자들이 이해당사자들을 불러놓고 안건을 설명하거나 협조를 부탁하는 정도는 정책 홍보로서는 좋겠지만 결코 협치가 될 수 없다. 야당이 다수당인 정국에서 정부 여당이 야당에게 자리를 일부 내어준다고 하여 협치가 달성되지 아니한다. 본래 국회나 각종 위원회 또는 협의회는 협치를 추진하고 실현하는 무대임에도 여전히 대립과 정쟁만을 일삼음은 협치에 뜻이 없거나 협치의 취지나 요령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여당(중앙정부)이 지방정부의 다수를 차지하고 야당이 국회 다수당인 상황에서 “모두에게 바람직스러운” 지속가능발전을 이룩하려면 진정한 의미의 협치를 세련되게 실행하여야 한다.
 
공공부문에서의 협치는 지휘봉을 잡은 주체가 참여자들에게 적절한 역할을 맡겨야 한다. 그러자면 공정하고 공평한 이익 공유나 교환이 수반되어야 한다. 선거에서 이겼다고 하여 승자가 모든 기회와 이익을 독점하면 공정하지도 공평하지도 아니하다. 협치에 뜻이 있는 지도자라면 각자의 이익이 구체화되거나 대립하기 이전에 ‘무지의 장막’ 속에서 세대·계층·지역간 “타인의 수요를 해치지 아니하면서 각자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호혜와 분배의 시나리오를 수립하여야 한다. 국회 다수당이라고 하여 임의적인 입법을 일삼거나, 여당이라고 하여 상위법률의 취지를 벗어나는 하위법규를 만들어 권력을 집중함은 협치를 외면하는 행동이다.
 
행정부에서 열세에 처한 야당은 지난 시절의 권능과 영광을 회고하면서 대립구도를 짜고 권토중래를 노릴 수도 있겠으나 그때까지 활용가능한 수단은 입법뿐이다. 야당이 유권자들의 신뢰를 얻어 차기 총선에서 좋은 성적을 얻으려면 입법권을 과신·과용하지 말고 유연한 자세로 행정부와 협력하여야 한다. 정부·여당으로서도 국회를 통하지 아니하고서는 정책과 법률 및 예산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어렵다. 여와 야는 무엇이 국민을 위한 정치이며 서로에게 공정하고 공평한 이익공유인가를 골똘하게 따져야 한다. 지방정부들은 중앙정부보다 훨씬 더 많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교육과 복지 그리고 일자리와 환경은 지역의 몫이다.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지도자들은 이해관계자들의 사슬에 얽매이기 전에, 중앙정부의 풍향을 살피지 말고 원탁회의를 열어 “각자에게 그의 것을” 주는 협치 시나리오를 짜야 할 것이다.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doctorchun@naver.com)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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