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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대통령선거후 중위권 대선후보들의 책임
입력 : 2022-02-28 오전 6:00:00
제20대 대통령 후보들의 합종연횡과 투표일이 목전으로 다가왔다. 여당과 제1야당 후보들은 국민을 상대로 비전과 경로를 경쟁하기보다 서로 약점을 치고받기에 바쁘다. 어느 후보가 당선되건 간에 강자의 미덕이 발휘되고 탕평책이 시행되지 않는 한 우리 정국은 브라질 모형처럼 비운의 질곡을 빠질 수 있다. 이러한 우울한 전망에 대하여서는 양당 후보외의 12인 후보들이 균형자 역할을 완수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 당사자들은 선거전으로 고생했는데 대선후 정국에 대하여 책임을 지라니 어리둥절할 수도 있겠다.
 
모름지기 대선에 나설 정도의 지도자라면 떨어지는 것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양당의 독주를 견제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 민주주의는 권력분립에 기반을 둔 견제와 균형에 의하여 보장되어야 하는데 12인 후보들은 거대양당의 권력을 견제하여 힘의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였다. 견제와 균형의 실패는 대선후 정국에도 이어지고 12인 후보들은 현재와 같은 리더십이라면 대선후 정국에서 국정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다.
 
12인 후보들에게 견제와 균형의 실패를 책임지라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번 대선은 이례적으로 “누가 더 훌륭한가”를 가려서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더 약점이 적은가”를 따져 투표하려는 경향이 커졌다. 투표일이 가까워지면서 유권자들은 심증을 굳혀가겠지만, “누가 더 좋아서”가 아니라 “어느 편에라도 서야 하기” 때문에 청군이 되거나 백군이 되었다. 이럴 때 여당도 제1야당도 아닌 다른 진영에서 참신한 후보가 나와 주면 제 격이다. 그러나 12인 후보들은 충분한 대안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물론 이들은 본인들을 몰라주거나 지지해 주지 않는 유권자들이 야속할 것이다.
 
12인 후보들은 두드러진 공약을 개발하지 못했고 널리 인재를 구하지 못했다. 후보들은 대부분 국민들을 ‘잘 먹고 잘 살게 해 주겠다’고 말하지만 내심을 들여다 보면, 남북관계나 국방개혁과 같은 통 큰 전략은 고사하고, 강자에게 붙겠다거나 특정계층에게 얽매여 있거나 무조건 퍼주겠다거나 아니면 실천경로가 보이지 않는 공허한 구호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주변에는 국정수행을 책임질 만한 인사들도 충분하지 않다. 그나마 포도송이처럼 조직을 확대하기는커녕 순혈주의를 강조하거나 배타적 울타리를 쳐 인재들이 모일 수 없게 만든다.
 
유권자들에게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청군후보나 백군후보를 견제하고 싶은데, 12인의 후보들이 뿔뿔이 흩어져 있고 독자적으로는 약해서 “찍어줘 봐야” 자기 표가 사표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느니 청군이나 백군이 되어 한판 승부를 벌이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12인 후보들이 방황하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알았거나 진정으로 정권쟁취에 뜻을 둘 만큼 통이 컸더라면 정당간 설득과 연대를 통하여 후보 단일화를 시도하였을 것이다. 이념이나 노선이 달라도 문제될 것이 없다. 이론에는 타협의 여지가 없으나 정책은 타협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중대선거구를 기반으로 하는 총선도 아닌 대선에서 10%도 되지 않는 득표를 올려서 다음 지방선거나 총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견제역량이 있는 제3당이 되지 못할 바에야 여러 정당들이 연대하여, 12인 후보들이 단일화를 도모하여 제1당과 제2당에 맞설 수 있는 대항마를 육성하였어야 한다. 예수는 12인의 사도로 로마제국을 평정하였다. 이순신 장군은 12척의 전함으로 왜병을 궤멸시켰다. 12인이 연대하였더라면 1등도 넘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12인 후보들은 서로 상대방의 진정성을 믿지도 못하고 책임 있는 측근들을 특사로 파견하지도 못하고 시간을 보낸 결과 지리멸렬해졌다.
 
특히 지지율 3위부터 6위를 오르내리던 후보들은 대선에서 이름을 얻어 자기 정당이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겠다는 부질없는 기대에 매달려, 다당제를 꿈꾸면서도,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통합전략을 구사하지 못했다. 개미군단 전략에 따라, 각 정당을 유지하면서 정책을 연대하고 후보를 단일화한 다음에 “정권을 획득한 이후 연립정부를 구성한다”는 담대한 전략을 세우고 누군가 전도사가 되어 유세하였더라면 판세가 달라졌을 것이다.
 
거여거야의 전략에 따라, 선거관리위원회나 언론들이 총선도 아닌 대선에서 정의롭지 못한 기준들을 내세워 기득권자들을 중심으로 홍보마당을 열고 또 엄청난 국고를 쏟아 부으면서 신진기예들이나 약소후보들이 빛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지 아니하는 상황에서는, “유권자들이 나를 몰라준다”고 화를 내거나 강자들이 보쌈해 가기를 기다릴 일이 아니었다. 중위권 후보들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격언을 몰랐거나 실천하지 못했다. 대선후 정치적 책임의 근원이다.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doctorchun@naver.com)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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